차별받는 시각·청각 약자들...민주주의전당 내년 예산안서 장애인 전시 관람 지원 빠졌다
장애인 관람 보조 예산도 일절 없어

창원시가 내년도 '대한민국민주주의전당' 예산안에 전면 개편 예산을 한 푼도 반영하지 않은 데 이어, 장애인 전시 관람 지원 예산도 전혀 편성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역사 왜곡과 부실 전시 논란이 5개월째 이어지고 있지만, 시각·청각 장애인 등은 해당 전시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조차 현장에서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4일 자 11면 보도
창원시 문화시설사업소가 시 예산담당관실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은 10억 원 규모다. 예산담당관실은 기본 운영비, 인건비, 도서 구매비, 행사비 등이 포함된 내역을 바탕으로 현재 비용 조정 막바지 단계에 있다.
그러나 시가 마련한 예산안 초안과 조정안 어디에도 장애인 전시 관람을 지원하는 보조 인력이나 보조 기기, 점자 리플렛, 음성안내, 수어 해설 영상 제작 등에 필요한 예산은 '1원'도 편성되지 않았다.
전시 개선을 위한 용역비 1억 원이 포함됐지만, 이는 향후 전시 방향을 검토하는 기초조사 수준에 그친다. 장애인 전시 관람권 보장과는 전혀 거리가 먼 예산이다.
현재 민주주의전당 전시관 내부에는 시각·청각 장애인을 위한 지원 체계가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촉각 지도나 점자 안내문·리플렛,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 영상, 오디오 가이드, 전시 해설 유튜브 영상 등 기본적인 관람 보조 장치도 설치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도내 장애인 당사자들 사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전시라 해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장상호 경남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장은 "어떤 내용이 잘못되었는지 여건상 민주주의전당 내부에서는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건 큰 문제"라며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공간이 정작 장애인에게는 닫힌 공간이나 다름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점자 리플렛이나 점자 홍보물, 음성 지원, 전시 해설 안내 인력 배치가 필요하다"며 "공공사업으로 지어진 시설이라면 장애인 지원에 충실해야 한다.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장애인 관람을 지원할 방법은 많은데, 이런 식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민주주의전당이 진정한 시민의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시민이 동등하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장치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미정 경남농아인협회 창원시창원지회장은 "내년 예산에 장애인 전시 보조 지원이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며, "수어 통역과 영상 보조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창원시는 전시관 전면 개편 또는 부분 개편을 거친 뒤 장애인 지원을 추진하는 것이 순서라는 판단에 따라 관련 예산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내년에도 장애인들은 민주주의전당 전시가 어떤 내용으로 구성돼 있는지, 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직접 확인조차 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시 관계자는 "전시 내용이 개편되면 전시 해설 자체도 새로 바뀌어야 한다"며 "기존 전시에 추가 비용을 들이는 것은 순서에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애인 지원 부분은 개편이 이뤄진 후 반영돼야 한다는 생각해 내년 예산에 포함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또한 "전시 내용을 토대로 해설 지원이 이뤄지면, 문제 있는 전시에 예산을 투입한다는 비판이나 예산 낭비 지적이 나올 수 있다"며, "당장은 점자 리플릿을 만들 예산도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전당의 새해 운영 예산은 창원시의회에서 최종 심의될 예정이다. 시는 오는 21일까지 시의회에 예산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예산담당관실 관계자는 "예산안을 우리가 조정하긴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시의회 심의를 거쳐야 확정된다"며 "아직 예산 검토 단계라 구체적인 예산 내역을 공개하기는 어렵고, 이 역시 의회에서 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최석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