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현의 1주 1컷] 시정연설 보이콧·APEC 성과 평가절하… 품격 실종된 野

안소현 2025. 11. 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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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李대통령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 불참
한미·한중정상회담 ‘문서화’ 강조
당내 쇄신·노선정립 못한 상황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5일 오전 대전시 서구 둔산동 대전시청에서 열린 국민의힘 충청권 지역민생 예산정책협의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권은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한 장면, 한 장면이 기억돼야 합니다. 논란이 되거나 질문을 남긴 사건의 이면, 때로는 가려졌던 의미를 되짚으며 뉴스의 흐름 속에서 '놓치기 아까운 한 장면'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들여다봅니다. 매주, 정치권의 가장 생생한 순간을 다시 꺼내보며 지금의 대한민국을 기록합니다. [편집자 주]

야당의 품격이 실종됐다.

검은 넥타이와 어두운 정장, 영정을 본 딴 '근조 자유민주주의'라고 적힌 피켓이 국회 로텐더홀을 뒤덮었다. 국민의힘이 이재명 대통령의 첫 예산안 시정연설을 전면 보이콧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성과도 인정하지 않고 정쟁에만 몰두하는 모습이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도부는 지난 3일 대구·경북을 시작으로 4일에는 부산·울산·경남, 이날은 충청을 찾아 '지역민생 예산정책협의회'를 열고 정부·여당을 향한 공세를 펼쳤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이날 협의회에서 "추가경정예산으로 풀린 14조원 소비쿠폰과 관세협상 실패 여파로 지속되고 있는 고환율이 물가 상승 악재로 작용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경제학자는 없을 것"이라며 "이재명 정부는 여전히 물가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근본 해결책 제시하지 않고 내년도 24조원 규모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등 재정 살포 포퓰리즘 예산 투입에 몰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의 대여 공세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일 이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예정된 국회 본청에서는 국민의힘 의원 100여 명이 검은 마스크를 끼고 '침묵 시위'를 진행했다. 조용했지만 우원식 국회의장이 이 대통령 마중을 위해 정문 앞으로 이동하자 곳곳에서 "범죄자", "꺼져라", "재판을 속개하라"는 등의 고성이 터졌다. 일부 의원은 국회의장에게 "쪽팔리지도 않나"라며 언성을 높였다.

이 대통령은 이에 별다른 반응 없이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에게 인사했지만 장 대표는 반응하지 않았다. 3년 전 윤석열 전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민주당 의원들이 거부할 때와 비슷한 모습이다. 야당이 된 정당은 바뀌었지만, 야당의 속성은 변하지 않았다.

이날 국민의힘은 시정연설을 전면 보이콧했다. 이유는 추경호 원내대표에 대한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였다. 국민의힘은 이를 "야당탄압, 정치보복"으로 규정하고, 본회의 대신 규탄대회를 선택했다.

대통령의 예산안 시정연설은 내년도 국정 방향을 국민 앞에서 설명하고, 국회와 협치를 모색하는 헌법적 절차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의사당 밖에서 야유를 보내며 정쟁의 무대 위에 섰다.

이날의 '보이콧 퍼포먼스'는 단순한 항의의 수준을 넘어선다. 정당이 최소한의 정치적 품격과 절차적 예의를 잃은 장면이었다. 대통령 연설에 대한 비판은 정당할 수 있다. 그러나 "재판받아라", "범죄자 꺼져라"는 고성은 제1야당의 언어로 보기 어렵다.

문제는 이러한 '반대를 위한 반대'가 최근 야당의 기조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힘은 최근 경주 APEC 정상회의를 두고서도 외교 성과를 평가절하하는 데 집중했다. 장 대표는 "아직 팩트시트도, 합의문도 공개되지 않았는데, 대통령은 손에 잡히지도 않는 신기루 같은 성과와 장밋빛 미래만 늘어놓았다"라며 정부를 비난했다.

국민의힘은 핵추진 잠수함 도입 등 민감 사안에 대해서는 "중국을 자극한다"고 주장했다. 모순된 점은 국민의힘이 그동안 이 대통령을 '친중' 이미지로 공격해왔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실질적 한미·한중 공조, 인공지능(AI)·조선·핵추진잠수함 등 국방·기술동맹을 강화한 것에 대한 칭찬은 없었다.

국민의힘의 태도는 논리보다 '반대 그 자체'로 귀결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정책이니 무조건 틀렸다는 프레임은 야당의 비판 기능을 공허하게 만들 뿐 아니라, 오히려 정부의 실용외교·국방정책의 정당성을 부각시키는 역효과를 낳는다.

국민의힘은 지금도 "정상회담 결과는 문서로 남지 않았다"며 정부를 공격한다. 그러나 제1야당이 국정 감시자로서 제기해야 할 '합리적 비판'과, 무조건적 '부정의 정치'는 구분돼야 한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국민의힘은 '윤어게인' 세력과의 관계정립에도 실패한 채, 당내 쇄신과 노선정립의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안 없는 반대, 품격 없는 항의는 결국 스스로의 정당성도 없앤다. 야당의 품격을 되살릴 방안을 찾아야 할 때다.

안소현 기자 ashright@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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