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한국에 'GPU 26만장' 꽂는 이유

정성현 기자 2025. 11. 5.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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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K·현대차 각 5만장, 네이버 6만장 등
'한국 선택' 공급망·잠재력·시장안정성 고려
"광주·전남 AI 상생 투트랙 기대감도 커져"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지난 10월31일 경북 경주 예술의전당 원화홀에서 열린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APEC) 경주 엔비디아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AI 대전환'내년도 예산의 핵심 과제로 제시한 가운데, 엔비디아가 한국 정부와 주요 기업에 최신 GPU(그래픽처리장치) '블랙웰' 26만장을 공급하기로 하면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단순한 장비 거래를 넘어, 한국이 '피지컬 AI'(로봇·자율주행·스마트팩토리 등 실제 움직이는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거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엔비디아 GPU 26만장, 왜?
이번 공급 물량은 정부 5만장, 삼성전자·SK그룹·현대차그룹 각 5만장, 네이버클라우드 6만장으로 나뉜다. 현재 국내 GPU 보유량이 약 6만5000개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이번 계약으로 한국의 AI 연산력은 30만개 이상으로 늘어난다. GPU 한 장당 가격이 3만~4만 달러에 이르는 만큼, 전체 규모는 최대 14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엔비디아의 '한국 픽'에는 세 가지 배경이 있다. 첫째, 공급망 협력이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GPU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인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공급하고 있다.

둘째, 피지컬 AI 테스트베드로서의 잠재력이다. 한국은 제조 로봇 밀도가 세계 1위(근로자 1만명당 1012대)에 달하며, 자율주행과 스마트팩토리 기술 경쟁력도 높다.

셋째, 시장 안정성이다. 미·중 갈등으로 중국 시장이 막히고,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자체 AI 칩 개발에 나서면서 엔비디아는 새로운 신뢰 파트너가 필요했다. 기술력과 산업 구조를 모두 갖춘 한국은 최적의 선택지였다.

엔비디아의 26만장 공급은 한국을 'AI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AI를 만드는 나라'로 끌어올릴 기폭제로 평가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월31일 APEC 정상회의장인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접견에 앞서 국내 기업 대표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젠슨 황, 이재명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연합뉴스

각 기업이 그리는 'AI 팩토리' 구상
삼성전자는 5만장의 GPU를 투입해 '반도체 AI 팩토리'를 구축하고, 공정 전반을 디지털 트윈 기술로 혁신한다.

SK그룹은 반도체 생산과 클라우드 인프라를 결합한 '제조 AI 플랫폼'을 설계해 생산 효율을 높인다.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로봇·스마트팩토리용 대규모 AI 모델을 학습하고, 정부와 함께 30억 달러(약 4조3000억원)를 투자해 피지컬 AI 연구소를 설립한다.

네이버클라우드는 6만장의 GPU로 국산 초거대언어모델(LLM)을 학습하며, 산업용 피지컬 AI 플랫폼을 확장한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AI 고속도로' 구상이 산업 현장에서 현실화되는 셈이다.

이번 빅딜은 한국의 '소버린 AI(주권형 AI)' 전략에도 속도를 낸다. 데이터를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국내 인프라와 인력을 기반으로 AI를 학습·운영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GPU 확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2026년 1월 시행 예정인 'AI 기본법'은 국가AI전략위원회 설치와 기업별 최고AI책임자(CAIO) 제도를 포함하고 있다. 정부는 규제보다는 진흥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방침이지만, 현장 적용을 위해서는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데이터, 전력, 인허가 등 산업 인프라 병목을 해소해야 GPU 투자가 실질적인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국회는 728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심사 중이다. 여야 대립 속에서도 'AI 대전환' 예산이 얼마나 실질적으로 반영될지가 관건이다. 이재명 정부가 강조한 'AI 고속도로'가 실제 산업 현장에서 얼마나 빨리 깔릴지가 향후 성패를 좌우할 전망이다.

특히 광주는 정부로부터 AI데이터센터, 모빌리티 자율주행 실증랩 등 관련 예산을 확보했다. 전남은 RE100 기반 산업단지 조성과 전력망 혁신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준호 의원(북구갑)은 "예산 심사 과정에서 광주와 전남이 역할을 나눌 수 있는 방안이 구체화되길 기대한다"며 "재생에너지와 냉각수, 저렴한 토지 등 전남 해남의 강점과 연구·실증이 가능한 광주의 역량이 만나면 분명 시너지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GPU가 뭐냐면
Graphics Processing Unit는 그래픽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개발된 반도체다. 원래는 게임이나 영상에 쓰이던 장치지만, 핵심 능력인 '병렬 연산' 즉 수많은 계산을 동시에 처리하는 기능 덕분에 AI 시대의 필수 자원이 됐다. 생성형 AI처럼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야 하는 기술에는 GPU가 반드시 필요하다. 업계에서는 GPU를 'AI의 쌀'이라 부르기도 한다. AI 모델이 커질수록 더 많은 GPU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역 인근 깐부치킨 매장에서 진행된 회동에서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