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범죄자 송환쇼?” 시민 자격 나누는 ‘극우쇼’

캄보디아에서 사기 조직과 연관된 청년들을 한국으로 송환하는 정부의 정책이 비판에 부딪혔다. 처음에는 왜 피해자들을 구출하려 노력하지 않느냐며 무능과 무관심을 질타하더니, 정작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돼 있던 사람들을 송환해오자 이번에는 피해자가 아니라 범죄자를 구출해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송환된 사람들이 “자의든 타의든 피싱에 가담한 범죄자”라며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범죄자 송환쇼”라고 비판했다.
소장파라고 다르지 않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며 국민의힘이 극우와 선을 그어야 한다고 연일 목소리를 높이던 김재섭 의원 역시 “피해자를 구하랬지 누가 범죄자를 구해오라고 했냐”며 이번 일을 “범죄자 대통령의 범죄자 우대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캄보디아 송환 문제에서는 마치 국민의힘에 일치된 당론이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물론 캄보디아 교민들의 지적처럼 지나치게 ‘구출’로 ‘전시’한 것은 비판받을 만하다.
누구도 시민권을 박탈할 수 없다
김재섭 의원은 부정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정부 정책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극우의 관점이다.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국민의 ‘자격’을 묻는 말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저 말은 보호뿐만 아니라 ‘처벌’받을 자격까지 따진다. 설령 송환된 사람들이 김재섭 의원의 말처럼 ‘순수한’ 피해자가 아니라 ‘완전한’ 범죄자라면 더욱더 그들은 한국으로 송환돼야 한다. 그 ‘범죄’에 무수히 많은 한국 시민이 피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세금을 들여 한국으로 송환해 처벌할 가치도 없는 존재로 치부해버리는 순간, 국가가 시민권자를 버리는 것이 된다. 시민은 어떤 자격이 있어서 시민이 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자격이 없더라도 시민권자로 태어나면 시민권자가 되어 시민권자로서의 모든 권리를 가지며 누구도 시민권을 박탈할 수 없다. 중간에 시민권을 취득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시민권자에게 ‘추방’이란 처벌은 존재하지 않는다.
추방은 어쩌면 사형보다 더 무서운 형벌이다. 추방은 육체적 목숨만 뺏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생명을 삭제해버리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는 자기 눈을 찌른 뒤 테베를 물려받아 통치하게 된 자기 아들에 의해 테베 밖으로 추방당한다. 추방당한 오이디푸스가 향하는 곳은 다른 도시가 아니라 ‘광야’다. 인간적 관점에서 보면 삶과 죽음에 그 어떤 형식도 주어지지 않는 무법의 세계다. 여기서는 ‘범죄자’로 죽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동물의 ‘밥’이 될 뿐이다.
국가는 어떤 경우에도 시민권자를 동물의 ‘밥’으로 던질 수 없다. 그 삶과 죽음에 형식을 부여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다른 말로 하면 정치공동체에 의해 사람은 그 삶과 죽음에 형식이 갖춰진다. 살더라도 법의 세계에서 살아야 하고 죽더라도 법의 이름으로 죽어야 한다. 국민의힘과 김재섭 의원이 범죄자이니 데려올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그들은 범죄자로 죽는 것이 아니라 동물의 ‘밥’이 될 뿐이다. 저 범죄조직이 사람을 처리하는 방식에 대해 이미 널리 퍼져 있는 괴담이 바로 그런 이야기가 아닌가? 장기까지 다 적출해서 팔고 그냥 버린다는 괴담 말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추방하다’라는 말의 기원이 되는 ‘도편추방제’는 영원히 쫓아내는 형벌이 아니었다. 10년 동안 추방한 뒤 돌아올 수 있었다. 추방하더라도 그가 가진 재산은 그대로 보존됐다. 10년이 지나 돌아오면 다시 자기의 자리, 직업과 생활을 되찾아 시민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삶의 형식을 빼앗았지만 죽음의 형식은 빼앗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소크라테스는 추방당했을 때 도주를 권유받았지만 그것을 거부하고 정치공동체에서의(에 의한) 죽음을 택했다.
혈세를 낭비하는 국민의 ‘짐’?
송환된 이들이 범죄자이기 때문에 송환할 필요가 없고 세금 낭비라는 말은 저들을 ‘동물의 밥’으로 던져주자는 말과 다름없다. 보호할 가치가 있는 시민들에게만 세금을 쓰고 그렇지 않은 시민은 처벌하는 것조차 세금을 낭비하는 일이니 광야에 벌거벗은 생명으로 던져버리자는 말이다. 보호와 처벌, 모두의 바깥에 두는 것, 그래도 되는 존재를 시민들 내에서 선별하는 것, 즉 시민을 국민과 비국민으로 나눠 통치하는 것이 바로 극우 정치의 핵심이다.
역사는 이미 국민의 자격을 심사해 선별한 사례를 알고 있다. 나치 독일과 일본 군국주의다. 비국민이라는 말 자체가 일본 군국주의의 산물이다. 일본은 군국주의로 치닫던 1930년 후반부터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비국민으로 몰아갔다. 군국주의를 반대하는 자, 사회주의자 그리고 국가 종교인 신도를 거부한 기독교인…. 그뿐이 아니다. 장애인, 직업이 없는 ‘게으른’ 사람 등 많은 사람이 비국민으로 취급돼 집단 따돌림과 가혹한 폭력을 당했다. 학교나 경찰 등 그 어떤 제도도 이런 폭력을 제지하지 않았다. 국가로부터 처벌받을 자격조차 없는 존재로 여겼다.
나치 독일 역시 마찬가지다.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된 사람은 유대인뿐만이 아니다. 공산주의자, 장애인, 동성애자, 집시(로마인)가 유대인보다 먼저 희생됐다. 군국주의 일본과 다른 점이 있다면 ‘법’이라는 제도를 갖춰 희생시켰다는 점이다. 독일은 독일 민족의 순혈성을 지키고 우수성을 보존한다는 명목으로 유전병후손예방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라 장애인들은 체계적으로 학살당했다. ‘법’에 따른다고 하여 모두가 체계적인 것은 아니었다. 장애 유아 안락사의 첫 번째 방법은 방치였다. 병원에 강제 수용한 뒤 질병과 굶주림으로 방치했다. 죽음에 어떤 형식도 부여하지 않으려는 국가에 의한 적극적인 방치였다.
독일이 이런 ‘학살’에 갖다대는 명분 가운데 하나가 세금이었다. 장애인은 혈세를 낭비하게 하는 국민의 ‘짐’이라는 것이다. 포스터도 만들었다. ‘건장한’ 남성이 등에 장애인을 지고 있는 그림이었다. 저들을 ‘단종’시키는 것이 ‘보통’ 시민의 짐을 더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선동했다. 대신 그 세금은 국가를 위해 일하는 더 건강한 사람들에게 ‘효율’적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금은 나라를 위해 일하는 애국자에게만 써야 했다. 유대인과 집시를 희생시킨 인종주의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애국이었고, 그 애국의 심장은 다름 아닌 세금이었다.

누구를 추방하고 누구를 뺄 것인가
물론 세금은 중요하다. 세금은 무한대가 아니며 제한된 자원이기 때문에 우선순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국가 정책이란 세금 사용 순서를 잘 설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통치 권력의 이념은 세금을 우선해서 쓸 곳을 어디에 두는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세금 사용의 우선순위를 보면 좌파와 우파, 복지국가와 신자유주의 국가가 선명하게 구분된다. 선거는 그저 이념을 겨루는 게 아니라 세금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를 겨루는 정치적 과정이다.
여기에 극단주의 정치로서 극우의 특징이 있다. 극우를 포함해 극단주의 정치는 세금을 어디에 먼저 쓸지가 아니라, 세금 사용에서 누구를 먼저 뺄지를 정한다. 극우에는 효율성에 기초해 세금 사용의 우선순위를 잘 설정하라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어느 시민을 세금 바깥으로 추방할지를 정하는 일이 최우선이다. 추방해 방치할 국민을 선별하는 것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는 일이 바로 극우로 대표되는 극단주의 정치의 핵심이다.
지금까지 극우 정체성의 핵심에 이주민 혐오와 외국인 차별이 있다고 여겨졌다. 맞는 말이다. 추방의 첫 번째 대상은 물론 이주민이다. 추방을 전면에 내세우는 데 가장 ‘손쉬운’ 상대이기 때문이다. 전세계 극우들은 이주민이 무분별하게 늘어나면서 자국민의 조세 부담이 커지고, 안전이 위협받고, 문화적 정체성이 흔들린다고 비판하며 세력을 키웠다.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일본 총리 역시 강경한 외국인/이주민 배제 정책을 예고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모두에서 강경한 이주민 추방 정책을 주장하는 정당이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추방을 중심에 둔 극우 이념의 핵심은 이주민과 시민을 가리지 않고 인간의 삶과 죽음에서 법이란 형식을 박탈하는 것이다. 단적으로 범죄자에게는 세금으로 운영하는 감옥도 아까우니 그냥 죽여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다음으로 ‘빨갱이’는 국가의 반역자이니 그냥 죽여도 된다고 말한다. 법에 따라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라 법의 바깥으로 추방하자는 주장이다. 시민을 둘로 갈라 한쪽은 국민으로, 다른 한쪽은 법 밖의 존재인 비국민으로 선별하는 것이 극우 정치의 핵심이다.
국민과 비국민을 가르는 칼날은 이주민으로 시작해 세금을 중심으로 시민의 일부를 국가와 사회의 ‘짐’으로 분류한 다음 최종적으로 자신을 지지하는가 아닌가를 향한다. 선별 기준이 자신의 이념에 대한 동의 여부가 되는 것이다. 정책 효과를 지지 여부에 따라 일부만 배타적으로 누리게 한다면 이는 파벌적인 것에 불과하다. 극우는 사회를 파벌화하고 파벌화된 사회는 필연적으로 내전으로 치닫는다. 이런 점에서 극우는 내전을 선동하는 내란의 이념이다.
극우의 논리가 내란으로 치닫는 이유
이에 대해서는 미국 하원 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가 자신과 극우 도널드 트럼프 지지 세력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정치 구호)의 정치적 차이를 정확하게 지적했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마가 세력이 지지 세력에만 정책의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고 나머지는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달리, 모든 정책의 혜택은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 여부와 무관하게 모두가 같이 누려야 한다고 말했다. 마가 세력이 사회의 파벌화를 획책한다면, 오카시오코르테스를 비롯한 민주당의 정치세력은 그것에 반대하고 미국을 ‘공화국’으로 유지하려 필사적으로 노력한다는 말이다.
오카시오코르테스의 말처럼, 극우에 맞서는 것은 이주민이나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만 반대하는 일이 아니다. 시민 자격을 심사해 선별하고 최종적으로는 사회를 파벌화해 내전에까지 이르게 하는 것에 맞서는 싸움이다. 극우에 맞서는 것은 그런 본질적인 차원의 싸움이어야 한다.
엄기호 사회학자·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생겨나는 시대와 사회에 대한 고민을 같이 나눕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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