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농촌] (5) 양평 설매재 억새밭서 마주한 영화 ‘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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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농촌은 도시의 배후지에 가깝다. 지방 소멸이 현실이 된 지금,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농촌의 가치를 영화 장면 속에서 다시 발견하고자 '영화 속 농촌' 연재를 시작한다. 이번 작품은 2013년 개봉해 관객 900만명을 불러온 흥행 영화 '관상', 촬영지는 경기 양평 설매재다.
경기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에 있는 설매재는 관상을 비롯해 수많은 사극의 배경이 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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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에선 주인공 김내경이 살던 집
가을마다 은빛 억새밭이 ‘절경’ 이뤄
인근 용문사 은행나무도 추천 명소

설매재는 ‘눈이 많이 내려도 매화가 피어나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다. 영화 ‘관상’에서는 연홍이 초야에 숨어 지내는 김내경을 찾아가는 장소로 등장한다. 아스라한 고갯길에 자리한 탓일까. 경기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에 있는 설매재는 관상을 비롯해 수많은 사극의 배경이 되어왔다. 관상을 비롯해 영화 ‘왕의 남자’, 드라마 ‘왕과 나’ ‘주몽’ ‘최강칠우’ 등이 바로 이곳에서 촬영됐다.

사람의 얼굴만 봐도 성품과 운명을 읽는 내경은 본래 평범하게 살고자 했으나, 동생 팽헌(조정석)과 연홍(김혜수)을 만나 권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김종서(백윤식)의 신임을 얻어 세자를 지키는 임무를 맡지만, 수양대군(이정재)의 야망을 막을 수는 없다. 내경은 끝내 가족을 잃고 한명회에겐 “목이 잘려 죽을 상”이라 예언한다. 훗날 역사에서 한명회는 사후 파묘돼 목이 잘리는 형벌을 받는다.
관상은 얼굴에 드리운 ‘상’이 운명을 정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인간의 선택이 그 길을 만든다는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내경의 비극은 운명 앞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모습과 선택의 무게를 강하게 각인시킨다.
등산을 위해 설매재를 찾은 한상원씨(64·경기 수원)는 “능선이 아름답고 길목마다 억새를 볼 수 있어 초보 등산객에게도 좋은 코스”라며 “멀리서도 일부러 찾아올 만큼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설매재는 입구서 꼬박 30분은 부지런히 올라야 닿을 수 있다. 길가에는 붉게 물든 단풍과 은빛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며 길손을 반긴다. 갈림길에서 가운데 길로 들어서면 시야가 탁 트이는 공터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다시 좁은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면 억새밭 사이로 너와집 한 채가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영화 속 ‘내경의 집’이다. 집터에 서면 양평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영화 속 연홍의 감탄처럼 절로 “공기 좋네, 경치 좋고”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곳에서 내경과 동생 팽헌은 아들 진형(이종석)과 함께 살림을 꾸린다. 없는 살림에도 닭을 삶아 어떻게든 진형에게 잘 먹이려는 장면은 훗날 맞닥뜨릴 비극적인 결말과 대비돼 더욱 따뜻하고 행복하게 다가온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얼굴에 새겨진 ‘상’에 얽매인 듯 살아가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들의 삶은 결코 정해진 길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내경 역시 수많은 얼굴을 읽어내는 관상가였지만, 정작 자신의 운명 앞에서는 언제나 고민하고 망설인다.

설매재 억새는 바람이 불면 그 방향대로 흔들린다. 온화한 산들바람이 스쳐 가든, 세찬 칼바람이 몰아치든 한결같다. 어떤 바람에도 억새는 꺾이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킨다. 지금은 폐허로 남은 내경의 집을 사람들이 굳이 찾아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흔들리면서도 그 자리에 꿋꿋이, 그리고 묵묵하게 남아 있는 억새가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괜찮다’는 듯 조용한 위로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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