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미국 헌법 아버지의 우려가 현실화된 한국

최원규 논설위원 2025. 11. 4.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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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도 ‘지갑’도 없는 사법부
李 정권 총공세에 속수무책
사법부 장악되면 민주주의 위기
국민 눈 부릅뜨고, 판사는 버텨야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장과 위원들이 지난달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 사법개혁 관련 법안을 제출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우리나라 대법원장과 대법관 임기는 6년이지만 미국은 종신제다. 연방지방법원과 항소법원 등 연방 판사 임기도 종신제다. 미국 헌법 아버지들이 그렇게 정했다. 그중 한 명인 알렉산더 해밀턴은 미국 헌법 주석서로 불리는 ‘페더럴리스트 페이퍼(Federalist Papers)’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행정부는 사회를 지키는 칼, 즉 강제력이라는 수단을 갖고 있다. 입법부는 돈 지갑을 쥐고 있고 시민들의 의무와 권리를 규제하는 규칙을 정할 수 있다. 반면 사법부는 칼도 돈도 갖고 있지 않고 단지 판단을 내릴 뿐인 존재다.” ‘법관에겐 칼도 지갑도 없다’는 유명한 표현이 여기서 나왔다. 사법부는 행정부와 입법부에 비해 힘이 약하기 때문에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고, 법관 종신제가 그 장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법관 종신제는 군주의 전제에 대한 뛰어난 방벽이고, 공화정에서도 의회의 권력 찬탈과 압제에 대한 방벽의 역할을 한다”며 “그것만큼 사법부 독립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했다. 언제든 괴물로 바뀔 수 있는 국가 권력의 폭주를 막기 위해 삼권분립이 필요하고, 그것이 깨지지 않게 하는 안전장치의 하나로 법관 종신제를 고안한 것이다.

해밀턴이 이 글을 쓴 게 1788년이다. 새삼스럽게 이를 떠올린 것은 237년 전 그가 우려했던 일이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지난 5월 이재명 대통령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후 민주당은 대법원을 향해 총공세를 취하고 있다. 대법원이 잘못을 한 것도 아니다. 신속한 재판을 규정한 선거법 취지대로 판결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 후보에게 불리한 판결을 했다고 조희대 대법원장을 향해 “내란” “사법 쿠데타”라는 막말을 퍼붓더니 최근엔 사퇴 요구까지 하고 나섰다. 이 대통령도 ‘선출 권력이 사법부보다 위에 있다’는 취지의 말로 거들었다. 군사 정권 시절에도 없던 일이다.

각종 압박 법안도 쏟아내고 있다. 민주당은 14명인 대법관을 26명으로 늘리고, 대법원 판결에 대해 헌법소원을 낼 수 있는 재판소원도 추진키로 했다. 이렇게 되면 이 대통령이 지금의 대법원 구성을 완전히 바꿀 수 있게 되고, 대법원 판결도 헌법재판소에서 뒤집을 수 있게 된다. 대법원 장악 의도이자 이 대통령 재판 뒤집기 시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삼권분립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지만 ‘칼’도 ‘지갑’도 없는 사법부는 속수무책이다.

이를 보면서 우리 대법원장이나 대법관 임기가 미국처럼 종신제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종신제는 극단적인 임기제다. 100% 찬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중간쯤 되는 안전장치라도 있었다면 민주당이 지금처럼 폭주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점에서 해밀턴의 통찰은 정확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우리 현실은 어떤가. 조 대법원장은 대법원장 정년(70세) 규정에도 걸려 임기(6년)를 절반 남짓만 채우고 2027년 6월 퇴임해야 한다. 그러니 민주당이 별 부담 없이 마구 흔드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제부터다. 사법부가 정치권력에 장악된 나라들은 거의 예외 없이 독재의 길로 갔다. 해밀턴도 “사법부가 다른 2부 중 하나와 결합한다면 모든 면에서 두려운 존재가 된다”고 했다. 민주당은 이미 입법·행정 권력을 손에 쥐었다. 조 대법원장을 끌어내리고 사법부까지 장악하면 아무 견제 없이 독재로 갈 수 있는 구조가 완성된다. 그러면 우리 민주주의는 중대한 위기에 처한다. 어떻게든 그것은 막아야 한다. 방어 수단이 없다면 국민들이라도 눈을 부릅떠야 하고, 판사들은 단단히 버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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