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40년 만에 첫 저서 낸 박중훈 "다시 연기하고 싶어요"

고경석 2025. 11. 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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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초엔 청춘영화 때문에 청춘스타로 부르더니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찍고 나선 의식 있는 민중배우라고 하더군요. 코미디 영화가 히트한 뒤론 코미디 배우가 됐고 안성기 선배와 영화를 찍은 뒤엔 국민배우라고 부르더군요. 시대와 함께 지내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재수 끝에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뒤 배우 데뷔를 꿈꿨던 그는 당시 영화 산업의 중심지였던 충무로에 직접 만든 명함을 들고 다녔던 극성 끝에 1985년 영화 '깜보'에 캐스팅되는 행운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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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영화 '깜보'로 데뷔한 박중훈
차인표 권유로... 에세이 '후회하지마'
"스승 같은 안성기 건강 악화해 슬퍼"
배우 박중훈이 4일 서울 중구 정동1928 아트센터에서 열린 '후회하지마'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데뷔 초엔 청춘영화 때문에 청춘스타로 부르더니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찍고 나선 의식 있는 민중배우라고 하더군요. 코미디 영화가 히트한 뒤론 코미디 배우가 됐고 안성기 선배와 영화를 찍은 뒤엔 국민배우라고 부르더군요. 시대와 함께 지내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데뷔 40주년을 맞아 첫 저서 ‘후회하지마’를 펴낸 배우 박중훈은 4일 서울 중구 정동 1928 아트센터에서 열린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배우 인생을 이렇게 돌아봤다. “작가라는 표현이 아직도 어색하다”는 그는 “2000년 한 일간지에 글을 연재한 뒤 책 출간 제의를 많이 받았지만 당시엔 ‘나 같은 사람이 무슨 책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거절했던 적이 있는데 후배 배우 차인표가 출간을 강력하게 권유해 쓰게 됐다”고 말했다.

‘후회하지마’에는 학창 시절부터 연기자 데뷔 후 스타로 살아온 40년 인생을 35편의 글에 담았다. 어릴 때 그의 별명은 ‘박극성’ ‘박지랄’이었다고 한다. 목표가 생기면 극성맞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재수 끝에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뒤 배우 데뷔를 꿈꿨던 그는 당시 영화 산업의 중심지였던 충무로에 직접 만든 명함을 들고 다녔던 극성 끝에 1985년 영화 ‘깜보’에 캐스팅되는 행운을 얻었다.

박중훈이 처음 영화 촬영 현장에서 연기했던 때가 그해 11월 11일이다. 데뷔작으로 주목받은 그는 한국영화계의 ‘흥행보증수표’가 됐다. ‘칠수와 만수’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마누라 죽이기’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라디오 스타’ 등 숱한 히트작을 남겼다.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할리우드에도 진출해 조너슨 드미 감독의 ‘찰리의 진실’에 출연했다. 1980~199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책 제목과 달리 후회스러운 일도 담았다. 그는 “피가 펄펄 끓던 20대 때는 화가 나거나 감정이 올라왔을 때 수위를 잘 조절하지 못한 것, 아이가 어릴 때 가족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했다. 책에선 1990년대 인기 절정의 시기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됐던 사건을 회상하면서는 “뼈저리게 후회했다”고 적기도 했다. “용비어천가를 쓰면 믿음이 생기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잘했든, 잘못했든 나의 과거라고 생각합니다. 시멘트에 자갈과 모래가 섞여야 더 단단해지듯 과거의 실수와 잘못이 자갈과 모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혈액암 투병 중인 오랜 단짝 안성기에 대해선 “콤비를 이뤄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게 배우로서 행운이지만 더 큰 복은 그 훌륭한 성품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라고 썼다. 그와 찍은 네 편은 모두 자신의 대표작으로 남았다. “내겐 선배이자 스승이고 친구이며 아버지 같은 존재입니다. 배우로서나 인격적으로 존경하는 분이죠. 사실 지금 건강이 상당히 좋지 않으셔서 굉장히 슬픕니다. 얼굴 뵌 지가 1년이 넘었어요. 문자나 통화로도 소통할 수 없을 정도여서 가족을 통해 여쭤보는 상황입니다.”

오랫동안 감독으로 지내며 연기를 멀리 했던 그는 다시 카메라 앞에 설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40년 중 30년은 배우로 살았고 10년은 감독으로 살았습니다. 1편밖에 찍지 못했지만 제 스스로 진정성은 표현한 것 같습니다. 이젠 다시 연기를 하고 싶어요. 배우란 직업은 멋있게 인생을 표현하는 근사한 일이잖아요.”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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