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인가 도박인가] (중) 대출하는 학생까지⋯뽑기방 사행성 심각

최준희 기자 2025. 11. 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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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 부족’ 중학생, 카드로 단기 대출까지⋯ 부모도 모르게 빠져드는 ‘작은 도박장’
청소년 사행성 노출 방치한 현금거래 구조, 관리 사각지대 여전
▲ATM기에서 조회한 단기카드대출 금액. / 추정현 기자 chu3636@incheonilbo.com

"처음엔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어요. 알고 보니 제 아이가 인형뽑기방 ATM 기계에서 제 카드로 단기대출을 받았더라고요."

4일 오전 9시20분쯤 수원역 근처 카페에서 만난 김모(35) 씨는 중학생 자녀가 인형뽑기방 ATM에서 신용카드로 현금을 인출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카드사에서 받은 단기대출 명세서에 찍힌 금액은 약 30만 원이었다.

김씨는 "아이에게 용돈이 부족할 때 쓰라고 신용카드를 줬는데, 인형뽑기방에 ATM이 있으니 거기서 그냥 돈을 뽑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며 "카드를 바로 뺏고 아이와 크게 다퉜다"고 말했다.

김씨는 "SNS를 보고 단기대출 방법을 배웠다는 말에 더 놀랐다"며 "아이가 위험하다는 생각도 못 한 채 그대로 따라 했다는 게 무서웠다"고 했다. 김씨는 즉시 카드를 회수하고 비밀번호를 변경했지만 이미 일부 금액은 인출된 상태였다.

이날 수원역 로데오거리에 빽빽이 들어서 있는 인형뽑기방 중 한 곳에 들어서자 입구에 ATM기가 놓여 있었다.

인형뽑기방에 놓인 ATM기를 통해 성인이 아니어도 경제적 감각이 부족한 청소년들도 손쉽게 대출받을 수 있었다. ATM기에 카드를 넣고 단기카드대출 항목을 누른 후,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신용카드 한도의 40%까지 현금으로 대출받을 수 있었다. 

ATM기 설치는 일반적으로 증축이나 용도변경에 해당하지 않아 특정 장소에 설치하더라도 제약이 없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 공용 부분에 설치할 경우 공동주택관리법 상 절차를 따라야 한다는 규정만 있다.

점포 수 급증과 함께 ATM기를 이용한 무단 대출 등 청소년들의 무분별한 이용이 우려되는 상황임에도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주체가 없는 상황이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이 진행하는 청소년 도박문제 실태조사에서 인형뽑기방 항목은 지난해부터 삭제 돼 실태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청소년 도박문제 실태조사는 베팅게임, 불법 스포츠토토 등 각 유형의 경험률과 예방 교육 실효성 등을 파악해 청소년 도박 중독에 대한 대응을 마련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게임제공업에 포함돼 '오락기구 운영법'이라는 업종 코드로 분류되는 인형뽑기방에 ATM기를 설치하는 것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전문가들은 중독 행동 우려가 있는 사업장에 ATM기가 설치돼있는 건 심각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최삼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인형뽑기방에 ATM기가 설치돼 있고 이를 통해 청소년들이 단기 대출까지 받을 수 있다면 심각한 상황"이라며 "합법 도박장인 강원랜드조차 ATM기 설치 대수와 위치가 법으로 제한돼 있을 정도로, 금전 접근성이 중독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또한 "청소년의 충동적 소비와 도박 성향을 막기 위해서는 이런 환경에 대한 관리와 제도적 통제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추정현·최준희 기자wsx3025@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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