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580만' JSA 말고 다른 영화였다면… 박찬욱 운명 가른 일주일

라제기 2025. 11. 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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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은 세 번째 연출작 '공동경비구역 JSA'(2000)로 영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박 감독에게는 성공의 단맛을 보게 한 영화였으나 '공동경비구역'은 애초 다른 감독 손에 의해 연출될 예정이었다.

이 감독은 영화 개봉관인 명보극장을 지나다 박 감독을 우연히 마주쳤다.

'키드캅'(1993)처럼 어린이 관객을 겨냥한 대중적인 영화를 제작 연출하면서도 칠레 감독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의 기괴한 영화 '성스러운 피'(1989)를 수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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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과 배우 이영애가 '공동경비구역 JSA' 촬영장에서 촬영 장면을 모니터로 확인하고 있다. CJ ENM 제공

박찬욱 감독은 세 번째 연출작 ‘공동경비구역 JSA’(2000)로 영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남북한 병사들의 우정을 통해 분단의 비극을 그린 이 영화는 전국 관객 580만 명을 모았다. 당시 한국 영화 역사상 최고 흥행 기록이었다. 박 감독은 흥행 감독으로 도약했다. 관객 마음만 사로잡은 게 아니다. 평단의 호평도 이끌어냈다.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며 주요 영화제의 레드카펫을 처음 밟기도 했다. 박 감독은 국내외 영화계가 주목하는 영화인이 됐다. 배우 이병헌은 박 감독 덕분에 네 번째 영화에서 처음 흥행에 성공하며 ‘TV탤런트’라는 이미지를 벗을 수 있었다.

박 감독에게는 성공의 단맛을 보게 한 영화였으나 ‘공동경비구역’은 애초 다른 감독 손에 의해 연출될 예정이었다. 게다가 박 감독은 다른 영화를 연출하기로 돼 있었다. ‘공동경비구역’이 박 감독과 인연을 맺지 못할 뻔한 변수가 많았던 거다. 박 감독은 어떻게 ‘공동경비구역’의 메가폰을 잡게 됐을까. 그가 만약 ‘공동경비구역’과 연이 닿지 않았다면 누구와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했을까.


음악평론가 이무영을 만나다

이무영 감독은 박찬욱 감독과 '박리다매'라는 브랜드를 결성한 후 시나리오 공동작업을 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공동경비구역’을 이야기하기 전 박 감독과 이무영 감독의 인연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감독은 박 감독 초기 연출 이력에 많은 영향을 줬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미국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박 감독과 접점은 전혀 없었다. 두 사람을 이어준 이는 ‘달은… 해가 꾸는 꿈’(1992)에 출연한 배우 송승환이다. 이 감독은 귀국 후 1990년대 초반 라디오 DJ와 음악평론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미국 거주 당시 알고 친하게 지내던 송승환이 1991년 이 감독을 ‘달은… 해가 꾸는 꿈’ 촬영장에 초대했다. “‘콜롬보 형사 코트’를 입은 어리게 생긴 사람이 감독이었던 게 인상적이었다”고 이 감독은 첫 만남을 기억한다.

두 사람은 ‘달은… 해가 꾸는 꿈’ 개봉 이틀 뒤 다시 만났다. 이 감독은 영화 개봉관인 명보극장을 지나다 박 감독을 우연히 마주쳤다. 주연배우 이승철의 인기에 힘입어 개봉일에만 ‘반짝 관객’이 든 이후 극장 안은 빈자리가 넘쳐났다. 이 감독은 박 감독의 우울한 얼굴을 보며 무심코 “밥 한번 사겠다”고 제안했다. 이후 두 사람은 영화와 음악이라는 공통분모 위에 절친한 사이가 됐다.

박 감독은 ‘3인조’(1997)를 준비하며 이 감독에게 시나리오를 함께 써보자고 제안했다. 둘은 사흘이면 시나리오 한 편을 완성할 정도로 호흡이 잘 맞았다. ‘3인조’가 흥행 실패한 후 박 감독이 다시 낭인 같은 생활을 하며 시나리오를 쓸 때 이 감독이 늘 함께했다. 둘은 반포(박 감독)와 여의도(이 감독) 서로의 집을 오가며 작업을 이어갔다. 두 사람의 성을 따서 '박리다매'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영화계 영업에 나서기도 했다. 박찬욱과 이무영이 시나리오를 써서 싸게 팔겠다는 의미였다.

데뷔작을 포함해 영화 2편이 잇달아 흥행 쓴잔을 마셨으나 박 감독 이름은 조금씩 충무로에 퍼져나갔다. “연출은 못하지만 시나리오는 잘 쓴다”는 칭찬인지 욕인지 구분이 안 가는 평가가 따르기도 했다. 박 감독과 이 감독이 함께 쓴 시나리오를 읽고 마음에 들어 한 제작자가 나타났다. 당시 영화사 씨네월드 대표였던 이준익 감독이었다.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과 함께 일하다

코미디 영화 '간첩 리철진'은 당초 박찬욱 감독이 메가폰을 잡을 예정이었다. 씨네월드 제공

당시 이준익 감독은 한국 영화 제작과 외화 수입을 병행하고 있었다. ‘키드캅’(1993)처럼 어린이 관객을 겨냥한 대중적인 영화를 제작 연출하면서도 칠레 감독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의 기괴한 영화 ‘성스러운 피’(1989)를 수입하기도 했다. 그는 예술영화 전용관이 없던 시절 개성 넘치는 해외 예술영화를 들여오며 여느 충무로 영화인과 사뭇 다른 행보를 보였다. 기이하고 개성 넘치는 영화를 좋아하던 이준익 감독 눈에 박 감독의 한 시나리오가 포착됐다.

이준익 감독은 씨네월드에서 기획 중이던 영화 연출을 박 감독에게 제안했다. ‘간첩 리철진’(1999)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를 거쳐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가 막 출범했다고 하나 간첩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소재였다. 남파 간첩을 코미디 영화의 중심에 세운다는 것 자체가 반감을 부를 시기였다. 이준익 감독은 박 감독의 창의성과 개성을 시대의 경직성을 뚫어낼 돌파구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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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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