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대기업 부장… 드라마 속 4050 '아저씨'들의 귀환
건물주부터 대기업 부장까지… 현실적 소재와 이야기 보편성이 '무기'

한국 드라마들이 다시금 '아저씨'들을 소환하고 있다. 한동안 2030대 청춘 남녀가 로맨스와 성장 서사의 중심에 있었다면, 이제는 4050대 남성들이 전면에 나서는 작품들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류승룡 소지섭 하정우 등 4050대 남성 배우들이 잇따라 드라마로 복귀하며 '아저씨 서사'의 전성시대를 꾀하는 중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순히 나이를 먹은 남성이라는 점이 아니라 각자의 인생 서사를 가진 중년 남자의 무게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는 데 있다.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은 것은 류승룡이다. 지난달 25일 첫 방송된 JTBC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이하 '김 부장 이야기')는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한 중년 남성이 긴 여정 끝에 마침내 대기업 부장이 아닌 진정한 본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극중 류승룡이 분한 김낙수는 ACT 기업 입사 후 발바닥에 땀 나게 뛰어다니며 열심히 살아온 끝에 서울 자가에 대기업 부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인물이다.
소지섭 주연의 SBS '김부장'은 평범한 가장이자 소시민으로 살아가던 김부장이 사랑하는 딸을 찾기 위해 절대 알려져서는 안 될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고 딸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거는 내용의 드라마다. 내년 방송 예정이며 소지섭은 평범한 중소저축은행 직원으로 근무 중이지만 알고 보면 남북파공작원 출신인 김부장 역을 소화한다. 부성애를 주안점으로 둔 이야기다.
역시 내년에 방송되는 tvN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이하 '건물주')는 빚에 허덕이는 생계형 건물주가 목숨보다 소중한 가족과 건물을 지키기 위해 범죄에 가담하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하정우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로 건물주가 되지만 어마어마한 빚더미에 앉은 가장 기수종 역으로 분했다.
특히 세 배우 모두 오랜만의 안방극장 복귀다. 류승룡은 드라마 '개인의 취향' 이후 15년 만, 소지섭은 '닥터로이더' 이후 3년 만, 하정우는 '히트' 이후 19년 만에 TV드라마로 시청자들을 만난다.
이런 흐름은 단순한 캐스팅 변화가 아니라 시청자 정서 변화를 반영한다. 팬덤 중심의 서사에서 벗어나 가족·직장·사회 속 개인의 현실을 담아내는 작품들이 늘어나면서 중년 남성 캐릭터가 새로운 주인공으로 부상한 것이다.
한때는 아버지, 직장 상사, 악역 등 조연의 자리에 머물렀던 인물이 이제는 서사의 중심이 되어 극을 이끈다. 아울러 세 작품 각기 다른 장르이지만 중년 남성들의 현실적 고충이 공감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가령 '김 부장 이야기'는 이 시대의 소시민을 표방하는 김 부장을 내세우면서 가장의 책임감, 직장 내 후배에게 밀리고 상사에게 치이는 소시민의 특징을 고스란히 묘사했다. 앞서 진행된 '김 부장 이야기' 제작발표회에서 류승룡은 "제가 전면에 내세워졌지만 우리의 미래, 누군가의 과거, 나의 이야기일 수 있다. 전 세대가 '나'를 투영해 아우를 수 있는 이야기다. 특정 세대에 국한되지 않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현실적인 공감대를 예고했다.
이처럼 한국 드라마의 아저씨들이 현대판 인간상으로 등극한 것이다. 이는 OTT 플랫폼이 늘어나며 타깃 시청층이 넓어진 것도 이런 변화의 원인으로 꼽힌다. 전 세대를 포용할 수 있는 중년 배우들의 존재감은 콘텐츠 경쟁 속에서 중요한 무기가 된다. 자극적 설정이나 청춘 배우들의 서사보다 삶의 깊이를 다루는 이야기들이 시청자들을 만날 것으로 보인다.
중년 남성 배우들의 강점은 바로 현실감이다. 이들은 비주얼보다는 무게와 내공이 담긴 연기력으로 극을 아우른다. 중년 배우들이 중심에 서며 가족의 해체, 중년의 외로움 등 보편적인 주제가 자연스럽게 드라마의 주요 서사로 녹아든다. 흥미로운 점은 중년 캐릭터가 단순히 성공한 남자의 상징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부장 이야기'는 실직 이후의 재기, '김부장'은 딸을 구하기 위한 추적, '건물주'는 건물과 가족을 지키기 위한 생계형 건물주가 주 키워드다. 건물주, 대기업 임원, 형사, 가장 등 사회적 지위를 가진 인물들이지만 위기를 마주하며 불안과 후회, 책임감 등을 기반으로 보다 다양한 서사를 꾀한다.
특히 40~50대 시청층이 OTT 구독의 주력 세대로 부상,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가 필요해진 시점이다. 앞서 다양한 작품들이 청춘 중심의 서사만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세대와 문화의 벽을 넘는 보편성을 인정받았다. 류승룡 소지섭 하정우 등은 이미 영화와 OTT 콘텐츠로 세계적 인지도를 쌓은 만큼 그들이 주연으로 나서는 드라마는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결국 아저씨 드라마의 등장은 세대 교체가 아니라 서사 확장의 일환으로 여겨진다. 인생의 중반에 선 남성들이 주인공으로서 가족, 일, 인간관계를 다시 돌아보는 이야기들은 청춘의 서사와는 다른 여운을 기대하게 만든다.
우다빈 기자 ekqls064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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