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갖고 온 ‘비자금’ 300억원, 이혼할 땐 남편 소유?

김다은 기자 2025. 11. 4. 06:49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이 노소영 관장의 재산 형성 기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불법원인급여’를 언급했다. 이번 판결이 ‘보편의 이혼 재산분할 판례’가 될 가능성은 낮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혼소송 대법원 판결 전날인 10월15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사회적대화 공동 선언식에 참석한 SK 최태원 회장. ⓒ시사IN 이명익

이번에도 300억원이 승패를 갈랐다. 10월16일,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에서 과거 SK(선경) 측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300억원 비자금이 유입되었더라도 그 돈은 불법 자금이므로 재산분할 대상으로 볼 수 없다고 보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2심에서 이 300억원은 노소영 관장이 최태원 회장 명의 재산의 35%인 1조3808억원을 분할받는 결정적 근거가 됐다. 비자금 300억원이 대한텔레콤 주식을 매수하는 데 사용되는 등 추후 SK 주식의 형성과 가치 증가에 발판이 됐다고 본 것이다. 이 판단이 뒤집혔다.

대법원은 ‘불법원인급여’의 입법 취지를 이유로 들었다. 민법 제746조는 불법의 원인으로 인하여 재산을 급여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재산의 형성 및 유지에 대한 기여가 (···)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고, 반사회성·반윤리성·반도덕성이 현저함에도 불구하고 재산분할에 참작할 기여로 평가하는 것은” 불법원인급여 법리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노 관장의 부친 노태우가 불법으로 조성한 자금을 사돈(최종현 SK 선대회장)에게 건넸다 하더라도, 이 민법 조항에 따라 노소영·최태원 이혼 시 분할 재산 대상에 해당 자금을 포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로 인해, 불법 자금으로 형성한 수익, 즉 2심 재판부가 노소영 관장의 기여를 인정해 분할한 1조원이 넘는 ‘불법 결과물’은 결과적으로 최태원 회장이 독식하게 된 셈이다.

이것은 우리 법이 추구하는 ‘공평의 이념’에 부합하는가? 이러한 논란으로,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이혼 재산분할 소송 일반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의 판례’가 될 가능성이 낮다는 주장도 나온다. 동시에 실질적 정의 구현을 위해 범죄수익을 환수하는 독립몰수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대법원이 불법원인급여 법리를 과도하게 적용했다는 비판을 살펴보자. 불법원인급여 조항을 쉽게 풀이하면, 불법적 행위에 쓰인 금전 혹은 노무는 그것을 제공한 사람이 되돌려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A가 B에게 도박 자금을 빌려줬다고 해보자. (만약 A가 그 돈이 도박 자금으로 사용될 것을 알고 있었다면) B가 돈을 갚지 않아도 A는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 애초 돈의 급여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만약 A가 B에게 뇌물을 줬다면 어떨까. 뇌물을 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해도 A는 B에게 돈을 되돌려받을 수 없다. 뇌물을 운반하던 C가 이 돈을 가로채도 A는 C에게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 뇌물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즉, 불법원인급여는 법이 허락하지 않은 불법적 행위를 이익을 되찾는 근거로 원용하는 것을 차단한다.

2024년 6월12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앞에서 SK그룹 ‘노태우 비자금’ 조성 과정 실체 규명 촉구 및 입장 요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연합뉴스

이번 이혼소송에 등장한 300억원 비자금으로 돌아가면, 노태우에게 뇌물을 제공한 사람이 자신이 급여한 불법 자금을 되돌려받을 수 없다는 것이 ‘불법원인급여’다. 물론 노태우가 불법 행위를 목적으로 SK 측에 자금을 지원했다면 해당 법리를 적용해서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세간에서 종종 이 돈을 ‘혼수품’이라 부르듯, 노태우의 SK로의 자금 지원이 딸 노소영의 결혼 지원 이외의 불법행위를 목적 삼았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아직까지 딱히 나오지 않았다. 돈의 원천이 불법일 수는 있어도(뇌물), 돈의 소유권을 이전하는 행위(증여를 통한 자금 지원) 자체는 불법이 아닌 것이다. 장물을 판매해 벌어들인 수익은 불법이지만, 그 돈으로 밥을 사먹는 것은 불법이 아닌 것과 같은 원리다.

“부부 일방이 우연히 횡재하게 될지도”

또 다른 노태우 비자금 사건에서 같은 취지의 선행 판결(대법원 2001년 4월10일 선고 2000다49343 판결)을 확인할 수도 있다. 해당 판결에서는 “이미 반사회적 행위에 의하여 조성된 재산을 소극적으로 은닉하기 위하여 임치(보관)에 이른 것만으로는 그것이 곧바로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라고 하여 불법원인급여가 아니라고 한 원심의 판단을 인용했다.

이번 이혼 사건에서 대법원은 이 같은 선행 판결을 파기하지 않았고, 판결이 요구하는 요건(노태우 비자금이 불법적 목적으로 SK 측에 전달됐다는 것)이 충족되었다는 판단을 하지도 않은 채, 노소영 측의 자금 지원을 불법원인급여라고 전제했다. 이동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자금의 반환을 청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이 무엇이든) ‘기여를 청산에 고려해달라는 요구’라는 점에서, 이혼 후 재산분할을 주장하는 데 기여의 ‘불법성’을 문제 삼은 대법원 판단이 타당한지, 법리 적용의 적절성에 의문이 든다”라고 말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사법적 보호가치가 없는 행위로 형성된 이익 전반에 ‘불법원인급여’ 법리가 적용되도록 하는 기점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혼인 재산분할 시에도 합법적으로 형성한 재산의 결과물만 보호한다는 점을 적시한 유의미한 판례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재산 형성의 ‘밑천’이 되는 자금의 성격을 판별하는 과정에서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가사사건을 다수 맡아온 엄경천 법무법인가족 대표변호사는 “부모가 증여한 재산으로 부부 공동재산을 형성한 경우, 부모가 증여한 돈을 형성한 과정까지 가정법원에서 심리해야 한다는 것은 기존 실무례와 맞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라고 짚었다. 게다가 “‘배우자가 탈세로 아낀 돈으로 재산을 형성했다, 뒷돈을 주고 교수로 채용되어 벌어들인 수입으로 생활비를 줬다’는 등 상대가 불법적인 방식으로 재산 형성을 했다고 공격함으로써 배우자의 재산 형성 기여도를 줄이려는 전략을 펼 수도 있다. 이 같은 법적 다툼에서 재산 명의가 누구로 되어 있느냐는 우연한 사정 때문에 부부 일방이 재산을 독식하며 횡재하게 될 수도 있는데, 이는 형평에 맞지 않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가사사건을 담당하는 법원은 무엇이 부부의 공동재산인지 구분하고, 기여도를 반영해 합당한 분할 비율을 법리적으로 판단하는 역할을 해왔다(〈시사IN〉 제874호 ‘세기의 이혼 판결, 세상 무용한 게 재벌 걱정이라지만’ 기사 참조). 그런데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혼 재산분할 소송에서 ‘재산 형성 과정의 불법성 심사’라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역할을 법원에 부여한 셈이다. 한편에선 저마다 복잡한 사연을 가진 ‘헤어질 결심’이 온전히 정의로울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독립몰수제 도입된다면?

그런 이유로 재산 형성 과정의 불법성은 이혼소송과는 별도의 경로로 판단할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 재산분할 소송처럼 범죄수익이 관여된 경우, 유죄판결 없이 범죄수익을 환수할 수 있는 독립몰수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독립몰수제 도입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으며,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청문회 당시 독립몰수제의 필요성에 적극 공감했다. 법무부는 이르면 올해 안에 독립몰수제를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7월16일 국회에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청문회에서 정성호 후보자는 독립몰수제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형법개정안을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사IN 조남진

현행 형법은 ‘몰수’를 사형·징역·벌금 등 독립해서 과할 수 있는 형벌인 ‘주형’에 덧붙여 과하는 형벌인 ‘부가형’으로 규정하고 있어서 피고인에게 유죄판결이 있어야만 범죄수익을 환수할 수 있다. 하지만 범죄자가 사망하거나 해외로 도피한 경우, 또는 범인의 신원을 특정할 수 없는 경우 수사를 통해 범죄수익을 확인하더라도 공소를 제기할 수 없어서 몰수가 불가능하다. 범죄수익이 상속인이나 공범자 등 제3자에게 귀속돼도 막을 길이 없다.

이에 지난해 6월, 윤종오 진보당 의원은 몰수를 형벌의 종류로 규정한 형법 조문을 삭제하고, 몰수를 형벌에 종속된 부가적 처분이 아닌 독립적 제재 수단으로 전환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올해 7월에는 박균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형법 일반이 아닌 범죄수익은닉법이라는 특별법에 독립몰수제를 도입하되, 몰수의 필요성이 강하게 요청되는 반인권적 국가범죄로 주체와 몰수 대상을 한정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현재 해당 법안들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계류 중이다.

검사 출신 박재평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독립몰수제 도입에 대한 논의가 “단순한 정책적 구호를 넘어 실질적인 입법 절차에 돌입한 상태로, 국회 심의와 사회적 공론화를 거쳐 도입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라고 평가했다(2025년 8월11일 개최된 ‘국가폭력범죄를 통한 범죄수익 비자금 환수를 위한 간담회’ 기조 발제문). 미국·독일·영국 등은 이미 민사몰수 혹은 독립몰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박재평 교수는 〈시사IN〉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독립몰수제는 형사기소를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에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망했어도 해당 제도를 적용해 법적 판단(범죄수익 몰수 및 추징)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럴 경우, 불법 자금이라는 씨앗이 낳은 거액의 수익은 국가의 것이 될 수도, 두 사람의 것이 될 수도, 최태원 회장만의 것이 될 수도 있다. 가능성은 더 넓어진다.

불법 자금을 지원받아 형성한 부부의 재산은 다시 ‘정의롭게’ 분배될 수 있을까? 대법원의 파기환송으로 공은 일단 서울고법으로 돌아갔다.

김다은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