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역 천지개벽처럼… 종묘 맞은편에 최고 142m 빌딩숲 만든다

서울시가 종로구 종묘(宗廟) 앞 재개발 지구의 건물 높이 규제를 완화하자 국가유산청이 반발하고 나섰다. “낙후한 도심 재개발을 위해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과 “세계유산인 종묘 주변에 고층 건물을 지어선 안 된다”는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30일 ‘세운4구역 재정비 촉진 계획 결정 및 지형 도면’을 고시했다. 재개발 사업이 장기 표류하고 있는 세운4구역의 높이 규제를 완화한다는 내용이다. 세운4구역은 종묘 앞에 있는 재개발 지구다. 종묘 담장과는 173~199m 떨어져 있다. 서울시는 세운4구역의 높이 기준을 종묘 쪽은 55m에서 98.7m로, 청계천 쪽은 71.9m에서 141.9m로 완화했다. 그러면 25~35층 빌딩을 지을 수 있게 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높이 규제 때문에 사업성이 나오지 않아 재개발이 표류하고 도심이 슬럼화하고 있다”며 “앞으로 세운지구 개발에 속도를 낼 계획”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지은 지 58년 된 세운상가를 허물고 그 일대를 재개발한다는 계획이다. 남북으로 이어진 세운상가 자리에는 공원을 조성해 종묘에서 남산까지 녹지 축을 만들고 그 주변에 30~40층 마천루를 세워 글로벌 기업 등을 유치한다는 것이다.
서울시가 고시를 바꾸자 문화재를 관리하는 국가유산청이 반발하고 나섰다. 국가유산청은 3일 보도자료를 내고 “유네스코가 ‘세계유산 영향 평가’를 받을 것을 권고했는데 서울시가 고시 개정을 강행했다”며 “앞으로 문화유산위원회, 유네스코 등과 국내외적으로 필요한 조치를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높이 규제를 완화하기 전에 규제 완화가 종묘에 미칠 영향을 분석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종묘는 조선 왕과 왕비 등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국가 사당이다. 1995년 한국 최초로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서울시는 2006년 이 일대를 ‘세운 재정비 촉진지구’로 지정하고 재개발을 추진했으나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박원순 전 시장 시절인 2014년 서울시는 재개발을 포기하고 도시 재생으로 방향을 틀었다. 국가유산청은 2018년 ‘앙각(仰角) 규정’ 등을 들어 종묘 앞 세운4구역의 높이를 55~71.9m로 낮췄다. 앙각 규정은 문화재 반경 100m 안에 있는 건물은 높게 지을 수 없다는 규정이다. 당시 앙각 규정은 예외적으로 100m 밖에 있는 건물도 규제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갖고 있어 세운4구역도 규제 대상이 됐다. 서울시와 국가유산청은 앙각 규정의 기준을 두고도 다퉜다. 국가유산청은 종묘의 핵심 건물인 정전을 기준으로 건물 높이를 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서울시는 그러면 높이가 너무 낮아진다고 주장했다.
오세훈 시장이 2021년 서울시장으로 복귀하면서 세운지구 재개발은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오 시장은 그해 시정질문에서 세운지구 재개발과 관련해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다. 세운상가 옥상에 올라 종로·청계천·을지로를 보면서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서울시는 2022년 ‘서울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을 발표했고, 2023년 앙각 규정의 단서 조항을 삭제했다. 이번에 높이 규제까지 완화한 것이다.
일각에선 세계유산인 경기 김포 장릉(章陵) 주변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국가유산청과 시공사가 소송전을 벌인 이른바 ‘왕릉 뷰 아파트’ 사태가 재현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가유산청이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왕릉 뷰 아파트 사태 당시 법원은 아파트 손을 들어줬다. 장릉과 500m 이상 떨어져 있어 장릉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이후 국가유산청은 세계유산법에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대한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고 인정되면 영향 평가를 거쳐야 한다”는 내용을 넣었다. 국가유산청은 이를 근거로 서울시가 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종묘 담장을 기준으로 잡더라도 세운4구역까지 거리가 173~199m이기 때문에 세계유산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세계유산법 적용 대상은 세계유산에서 100m 이내라는 것이다.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100m)’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서울시 관계자는 “앞으로 국가유산청을 계속 설득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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