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로맷 아카이브: 히든 스토리’ (Diplomat’s Archives: Hidden Stories) 한국-페루 민간 외교 선구자 박만복

3일 아리랑TV ‘디플로맷 아카이브: 히든 스토리’(Diplomat‘s Archives: Hidden Stories)에는 한국-페루 민간 외교 선구자인 배구 영웅 故 박만복 감독을 조명했다.
파울 페르난도 두클로스(Paul Fernando Duclos Parodi) 주한 페루 대사, 김완중 前 주호주 한국 대사(故 박만복 감독 사위), 가비 페레즈(Gaby Perez) 88서울올림픽 여자 배구 은메달리스트, 나탈리아 말라가(Natalia Malaga) 88서울올림픽 여자 배구 은메달리스트가 출연해 고인에 대해 이야기를 전했다.
한국 여자 배구의 전설이자 세계 배구계의 스타인 김연경 선수가 감독으로 변신한 예능 프로그램이 화제를 끌면서, 여자 배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김연경 감독보다 앞서 해외에서 더 놀라운 성공 신화를 이룩한 여자 배구 감독이 있었다.
바로 故 박만복 감독(2019년 작고)이다. 박 감독은 1974년부터 페루 여자 배구 국가 대표팀 감독에 선임돼 2000년까지 총 5번의 올림픽을 이끌었으며,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박만복 감독이 페루 스포츠계에 세운 놀라운 신화를 파울 페르난도 두클로스가 주한 페루 대사가 아리랑TV “디플로맷 아카이브: 히든 스토리(Diplomat‘s Archives: Hidden Stories) – 페루 편”에 출연해 직접 소개에 나섰다.

두클로스 대사는 88 서울 올림픽이 페루 국민들에게 얼마나 특별한 순간이었는지 지금도 생생하다며 회고했다. “정말 나라 전체가 멈춘 것 같았다.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씩 올림픽 결승이라는 큰 꿈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매 경기마다 감정과 열정이 점점 더 고조됐다. 한국에서 열리는 경기를 보기 위해 새벽 4시나 5시에 일어나 온 가족이 함께 모여 경기를 시청하곤 했다. 페루는 그 전까지 올림픽 결승에 진출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여자 배구팀의 결승전은 정말 흥분과 놀라움이 뒤섞인 특별한 경험이었다. 아쉽게 소련팀에 패배했지만 국민들은 대표팀과 그 성과에 대해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박 감독은 대체 어떻게 서울 올림픽을 준비했던 걸까? 그의 리더십을 선수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서울 올림픽 당시 페루 여자 배구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한 가비 페레즈는 화상 인터뷰에서 “1982년에 박 감독님을 처음 알게 됐는데, 당시엔 배구를 할 줄도 몰랐다. 박 감독님은 195cm라는 내 키에서 선수로서의 잠재력을 봤고, 대표팀으로 불러서 훈련을 시켜주셨다.
사실 농구와 배구 사이에서 고민하기도 했지만, 그 때 이미 박 감독님은 페루에서 매우 유명했기 때문에 신뢰가 갔고 그래서 배구를 선택했다.”며 본인을 배구계로 이끈 박 감독과의 특별한 인연을 밝혔다. 이어서 페레즈는 “하루 하루 서울 올림픽이란 목표를 위해 긴 전지훈련을 했기 때문에 대비는 돼 있었지만, 정말 결승에 오를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페루는 여러 문제로 매우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기에 우리의 메달 획득이 나라의 큰 기쁨이었다.”며 최고의 성적을 낸 선수로서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버지 같았던 박 감독을 떠올리며 벅찬 감정을 드러낸 이는 페레즈 뿐이 아니었는데, 함께 서울 올림픽에 출전했던 선수이며 훗날 박 감독의 뒤를 이어 페루 청소년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한 나탈리아 말라가 역시 박 감독의 가르침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박 감독님은 ’네 유니폼에는 나탈리아 말라가라고 쓰여있지 않다. 페루라고 쓰여 있다.‘고 얘기하곤 했다. 그건 단순히 질책 아니라 국가대표 선수로서의 가치관과 책임감에 대한 가르침이었다” 서울 올림픽을 위해 박 감독은 오랜 시간을 투자해 어린 선수들을 발굴하고, 키워냈으며 페루 선수들과 함께 다양한 국가로 훈련을 다니며 다양한 팀과 경기를 주선해 경험을 쌓도록 했다.
말라가는 “거의 매년 아시아와 유럽 등 세계 각지로 전지훈련을 다녔는데, 특히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에도 많이 다녔다. 한국과 일본에서 박 감독님이 유명했기 때문에 페루 선수들을 매우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선수들이 이태원 부근을 다니거나 버스를 탈 때, 유니폼에 ’페루‘라고 적힌 걸 보고 한국 사람들은 ’배구, 박만복‘이라고 외치며 반가워 했었다.”며 박 감독을 통해 한국의 문화를 배웠다고 한다. 훗날 말라가 역시 감독에 선임됐을 때, 스승인 박 감독의 가르침인 ’예절과 헌신‘을 청소년 선수들에게도 알려주기 위해 노력했다. 박 감독 역시 말라가를 위해 직접 방문해 선수 지도를 돕기도 했다.
서울 올림픽 은메달이란 성과 외에도 페루 여자 배구는 박 감독과 함께한 기간 동안 1977년부터 1993년 사이에 남미 선수권 대회에서 무려 7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이는 곧 페루에서 배구가 국민적 인기의 스포츠가 된 계기가 됐다.
두클로스 대사는 “박 감독과 함께한 페루 배구의 뛰어난 성과는 새로운 세대의 소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우상을 따라 배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금은 배구가 페루에서 축구 다음으로 인기 있는 스포츠라고 말할 수 있다” 고 설명했다. 또, “박 감독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페루에서 깊은 사랑을 받고 있다. 페루 사람들의 박 감독에 대한 애정은 단순히 개인을 넘어, 한국 전체에 대한 존경과 감탄으로 확장되었다. 실용적이고 균형 잡힌, 그리고 철저한 규율 중심인 그의 지도 스타일은 하나의 모범이 되었고, 점차 한국인 전체의 이미지와 연결되기도 했다.”며 그가 곧 두 나라를 연결하는 상징적인 존재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박 감독은 양국에서 인정받는 민간 외교관이었다. 그는 페루의 한국 교민 1호였으며 1979년 한인회를 조직해 7번이나 한인회장을 맡기도 했다.
또 한국과 페루 양국 정부에서 각각 3번, 총 6번의 훈장을 받은 바 있다. 그의 존재감은 실제로 한국-페루 양국 외교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박 감독의 사위이자, 2009년에서 2012년 주페루 대사관 참사관을 지냈던 김완중 전 주호주 대사는 장인을 ’선구자‘ 라고 표현했다. “주페루 대사관 참사관으로 근무할 때, 페루 사람들의 99%가 장인 ’맘보 박‘(페루인들이 박만복 감독을 부르던 애칭)을 알았다. 외교관은 주재국에 가서 그 나라 사람처럼 그 나라와 사랑에 빠지고 문화도 익히고 언어도 익혀야 한다. 그래야 좋은 외교관이 되듯이 장인어른께서도 항상 페루를 좋아하셨고, 페루란 나라를 높이 평가하셨다. 또 한인회를 결성해서 한인들의 권리를 대변하고, 사건 사고가 생기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하곤 하셨다.”고 회고했다.
김 전 대사는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을 앞두고, 외교 경쟁이 치열하던 때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1961년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극 중심의 이분법적 질서를 거부하고,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자 한 제3세계 국가들은 중립 노선인 비동맹운동을 결성한다. 이후 1975년 페루 리마에서 열린 비동맹운동 외교장관회의에서 북한은 비동맹운동의 정식 회원국 가입에 성공하나, 한국은 가입에 실패한다. 이는 당시 한국에 큰 충격을 주게 된다. 이에 1977년 3월 김종필 대통령 특사가 중남미 7개국 순방을 했고, 페루 대통령에도 접견을 요청한다. 그러나 응답이 없었다. 김 전 대사는 “페루 측에서 답이 오지 않아서 3-4일째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 때 장인어른이 나서서 협조를 받아 대통령실에 연락을 하고 중재자가 돼서 4일 만에 페루 대통령 접견이 가능했다. 그 계기로 그 해에 수교훈장 숭례장을 받기도 하셨다. 민간 외교관으로서 공공 외교 역할을 톡톡히 하시며 한국과 페루의 가교 역할을 하셨다.”며 외교관으로서 박 감독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만복 감독은 2019년 페루 리마에서 양국 팬들의 애도 속에서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의 존재감은 여전히 뚜렷하다. 페루 국립경기장에는 ’Man Bok Park’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고, 88 서울 올림픽 여자 배구 결승전 경기장이었던 한양대학교 올림픽 체육관에도 그를 기리는 동판이 설치돼 있다. 두클로스 대사는 “박 감독은 배구계의 아이콘이었다. 그의 업적과 헌신은 페루 스포츠 역사에 깊이 새겨져 있으며, 양국의 우정과 협력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페루 사람들에게 그는 항상 기억될 것.”이라고 진심 어린 목소리로 강조했다.
페루의 배구 영웅이자 한국-페루를 잇는 민간 외교관 1호 故 박만복 감독의 놀라운 인생사를 담은 “디플로맷 아카이브: 히든 스토리 – 페루 편”는 11월 3일 아리랑 TV를 통해 전 세계에 방송됐다.
손봉석 기자 paulso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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