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나이가 들어야만 보이는 것이 있지” 화순으로 떠나는 가을 여행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 이제 아무것도 안 할 때가 많다. 책도 안 읽고 휴대전화도 안 본다. 작업실에서 삼십 분 정도 걸어가면 내가 좋아하는 카페가 있는데, 저녁 무렵 거기에 가서 커피만 마시며 창밖을 바라본다. 가을 햇빛이 창가에 놓인 화분을 지나 거리 쪽으로 서서히 물러나는 걸 지켜보며, 그렇게 이십 분 정도 앉아 있다가 다시 걸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올 무렵에는 상점들의 네온사인이 켜지고 전철역에서 퇴근한 사람들이 몰려나온다. 천변을 따라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루 중 이 시간이 제일 좋다. 집에 와서 양치질을 하고 『금강경』이나 옛날 작가들의 글을 읽다가 잔다. 최근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다시 읽었는데, 삼분의 일 정도 읽다가 덮었다. 내 나이에 읽을 만한 책은 아닌 것 같아서였다.

여행은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별 죄책감 없이 외면할 수 있어 좋다. 뭔가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일은 안경을 쓰고 안경을 찾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도 이제는 알고 있다. 내가 찾고 싶은 뭔가는 내 주위에 있다. 그것들은 책상 앞이나 사무실 주변, 혹은 자주 가는 카페에 떨어져 있을 수도 있다. 잘 살펴 본다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행을 가면 즐기려고 하고, 마음껏 놀려고 한다. 그것이 여행하는 최선의 방법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화순 운주사에 와 있는데, 운주사 곳곳에 자리한 석불들을 보며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고 있다. 남은 인생, 저 석불들의 표정처럼 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질적인 이 탑들이 묘하게 조화로운 모양으로 어울려 서 있다. 1,000년이 넘는 세월을 지켜온 석불과 석탑은 누가, 왜 세웠는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다. 부처의 얼굴은 더 흥미롭다. 보통 절의 부처님처럼 단정하거나 위엄 어린는 모습이 아니다. 눈매는 희미하고, 코는 닳아 없어졌으며, 입가엔 가느다란 미소가 번진 채다. 홀쭉한 얼굴, 둥근 얼굴, 짧은 목, 두꺼운 눈꺼풀. 근엄함은 없고 대신 사람 냄새가 난다. 어쩌면 그게 이곳 부처들의 진짜 매력인지도 모른다. 몸의 비율도 들쭉날쭉하다. 어쩌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운주사에는 도선국사의 전설이 얽혀 있다. 신라 말의 고승 도선국사가 천불천탑을 세우려 했다는 이야기다. 국사는 나라의 운명이 기울어가던 시기에, 국운을 다시 일으킬 비밀스러운 도량을 찾았다. 그가 점지한 곳이 바로 화순의 깊은 골짜기였다. 산세가 마치 구름이 머무는 듯하여 ‘운주(雲住)’라 이름 붙였다.
도선국사는 이곳에 천 개의 불상과 천 개의 탑을 세우면 나라가 다시 태어날 것이라 믿었다. 그는 하룻밤 사이에 그 일을 완성하기 위해 도력을 펼쳤다. 하지만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절에서 함께 일하던 동자승이 장난삼아 닭 울음소리를 냈다. 날이 새는 줄 착각한 국사는 일을 멈췄고, 그 결과 석불 두 구를 결국 세우지 못했다고 한다.

운주사 뒤편 산 중턱에는 ‘공사바위’라 불리는 거대한 바위가 있다. 운주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도선국사가 천불천탑을 세울 때 이 바위 위에서 도면을 펴고 탑의 위치와 형태를 설계했다고 한다. 그가 손으로 짚은 자리마다 불상과 탑이 솟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도 이곳을 ‘공사(工事)의 현장’이라 부른다. 바위에 서면 절의 중심인 구층석탑이 정면으로 보이고, 주변의 석탑과 석불들이 계단식으로 늘어선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연화탑으로도 불리는 원형다층석탑(보물 제198호)도 보인다. 탑신이 둥그런 탓에 ‘도넛탑’, ‘호떡탑’이라는 재미있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맑은 날엔 무등산의 능선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바위 표면에는 세월의 흔적이 깊게 새겨져 있고, 일부에는 인위적으로 다듬은 흔적도 남아 있다.
공사바위는 운주사 일대의 다른 석탑과 마찬가지로 응회암(화산재가 굳어 형성된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운주사의 석불과 석탑이 납작하고 형태가 뚜렷하지 않은 까닭은 응회암을 그대로 떼어 조각했기 때문이다. 응회암은 부드럽게 쪼개지고 깎기 쉬워 조각에 적합하다.

완성되지 못한 천불천탑은 미완의 역사,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정의로운 세상을 은유한다. 이 고요한 절은 한국인의 기억 속에서 ‘깨어나지 않은 와불의 땅’, 다시 말해 ‘언젠가 깨어날 희망의 땅’으로 남게 되었다. 이후 많은 이들이 운주사를 찾으며, 그곳을 단순한 불교 사찰이 아닌 민중의 희망과 변혁의 상징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아직도 등을 땅에 대고 누운 두 분 부처는 / 일어날 날을 기다리신다 / 그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거란다. 운주사에 내리는 가랑비는 / 가을의 단풍잎으로 구르고 / 길게 바다로 흘러 / 시원의 원천으로 돌아간다. / 두 와불의 얼굴은 이 비로 씻겨 / 눈은 하늘을 응시한다 / 한 세기가 지나는 것은 구름 하나가 지나는 것 / 부처님들은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을 꿈꾼다.”
르 클레지오는 이후에도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그는 이후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으며, 한국 문학과 문화에 높은 관심을 보였는데 2001년의 운주사 방문은 그가 한국을 잘 이해하는 ‘지한(知韓)파 작가’로 불리게 된 계기 중 하나로 언급되곤 한다.
절은 아담하다. 대웅전, 극락전, 요사채, 해탈문 등 달랑 4채로 이루어져 있다. 쌍봉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웅전인데, 3층 목조탑 양식으로 조선 중기에 세워졌다. 법주사 팔상전(국보 제55호)과 함께 국내에 두 개밖에 없다고 한다. 지금의 것은 1984년 불엔 탄 것을 복원한 것이다.
철감선사탑과 탑비(국보 제57호, 제58호)도 눈여겨볼 것. 철감선사는 신라 말기의 고승으로, 탑은 그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868년에 세워졌다. 이 탑은 통일신라 후기 석탑 양식을 대표하며, 단정한 비례와 균형감이 뛰어나다. 특히 석사자상(石獅子像)이 네 모서리를 떠받치고 있는 모습은 장엄하면서도 생동감이 있다. 옆에 서 있는 철감선사탑비는 신라 명필 김생의 필체를 잇는 유려한 서체로 유명하다. 탑비의 거북받침은 웅장하고 사실적인 조각미를 보여주며, 머릿돌의 용 문양 또한 정교하다.

야사리 느티나무도 찾아보자. 이서 커뮤니티센터 앞에 자리하고 있다. 화순군 기념물 제235호로 높이가 35m에 달한다. 마을과 함께 500년 세월을 간직한 노거수다. 지금은 폐교가 된 이서분교가 들어서 운동장을 만들 때도 이 나무로 보호했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한 그루로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두 그루가 사이 좋게 서 있다. 100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 조선 성종 때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있다. 나라에 화가 있을 때는 우는 소리를 냈다고 한다. 지금도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이면 당산제를 지낸다.

쌍봉사의 탑도, 숲정이의 나무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제자리를 지키며 계절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견뎌낸다. 그 단순함이야말로 삶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다 이룩하지 못해도 그 나름대로 빛난다.
나는 가을의 화순에서 즐겁고 아름다운 가을을 보냈다. 그럼 됐다. 그러고 보면 나이가 든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나는 요즘 자주 ‘서른 살 남자는 이해하지 못하는, 나이가 들어야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란 게 분명 있다’라는 생각을 한다.

화순전통시장 근처에 위치한 ‘봉순이팥죽칼국수’에서는 전라도식 팥 칼국수를 맛볼 수 있다. 걸쭉한 팥죽 속에 쫄깃한 칼국수가 듬뿍 담겨 있다. ‘화성식육식당’은 생고기와 머릿고기로 만든 편육이 유명한 집이다. 두툼하게 썬 생 소고기를 마늘로 양념한 참기름장에 찍어 먹는다. ‘오케이사슴목장가든’에서는 참숯을 이용해 산닭을 구워 먹을 수 있다. 산닭은 모두 농장에서 직접 키운 것으로, 노릇노릇 구워낸 닭고기는 담백하면서도 쫄깃하다.
[글과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02호 기사입니다]
Copyright © 시티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