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값은 어른들이 낼 테니 마음껏 읽어요”···작은서점이 일으킨 선한 기적

“‘책 사줄게 프로젝트’를 통해 청소년들이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믿어주는 어른들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충북 청주시 서원구 산남동의 독립서점 ‘책방, 앤’의 문 앞에는 매달 1일마다 ‘어른들이 선결제 했으니 책 받아가요’라는 안내문이 붙는다. 남은 책 수량도 매일 포스트잇으로 표시한다. ||||
책방지기 이지영 대표(51)가 운영하는 ‘책방, 앤’은 700여 권의 장서가 있는 작은 서점이다. 이 서점에서 시작된 나눔이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어른들이 책을 선결제하면 청소년들은 선결제 금액 내에서 책을 한권씩 가져갈 수 있다. 일명 ‘청소년 책 사줄게’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이 대표와 단골고객의 대화에서 시작됐다. 이 대표가 고객에게 “청소년들이 학업 등으로 책읽을 기회가 없다. 다른 책방에서는 일회성으로 선결제 나눔도 하던데 부러웠다”는 이야기를 건네자 고객이 선뜻 나선 게 시작이었다. 그는 “내가 먼저 시작하겠다”며 매달 책 3권값에 해당하는 금액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난 2월 1일 처음으로 책 3권 무료나눔을 시작했다. 하지만 책 3권이 소진되는 데는 보름이나 걸렸다. 이 대표는 3일 “서점 밖에 안내문을 붙여놔도 청소년들이 선뜻 들어오지 못했다”며 “책을 받아 든 학생들은 ‘진짜 공짜예요’라고 몇 번이나 되물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해당 프로젝트를 공유했다. 정보가 알음알음 퍼져나갔다. 지역 주민과 손님들의 동참이 이어졌다. 서점을 찾는 학생들도 부쩍 늘었다.

5만 원을 선결제한 김하나씨(39)는 “더 많은 청소년이 책을 받아 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선결제에 동참했다”며 “크리스마스나 특별한 날 있을 때 청소년들에게 선물하는 마음으로 선결제를 하려 한다”고 말했다.
3권으로 시작한 나눔은 어느새 매달 30권으로 늘었다. 14~19세 청소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이 프로젝트의 규칙은 단 하나다. ‘보호자 없이 서점을 찾아와 자유롭게 고를 것’이다. 청소년에게 ‘스스로 선택하는 경험’을 주기 위해서다.
이 대표는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의 개입 없이 오롯이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고, 때로는 실패도 해보는 경험을 선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의 반응도 좋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을 가져간 오상우군(15·산남중 2년)은 “SNS에서 동네 책방이 책을 무료로 나눠준다는 소식을 보고 ‘정말 좋은 기회’라는 생각에 한달음에 달려갔다”며 “부모님 없이 스스로 책을 고르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책 사줄게 프로젝트’는 청주를 넘어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책방, 앤’의 사연을 접한 다른 지역의 책방들이 이 대표에게 벤치마킹을 문의해오고 있다.
이 대표는 “현재 부산, 인천, 화순, 천안 등 전국 15곳 이상의 독립서점에서 이와 유사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며 “작가들이 자신의 단골 책방에 후원하며 프로젝트의 시작을 돕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는 경영난을 겪는 동네 책방에도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평소 책방을 잘 찾지 않던 청소년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책방의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이 대표는 “이곳에서 책을 선물 받은 아이들이 자라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선순환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이삭 기자 isak8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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