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경주선언’ 채택…‘자유·다자무역’ 간접 지지

김창길·정희완 기자 2025. 11. 2.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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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적 표현은 빠져…21개 회원국 정상회의 합의문, 곡절 끝에 도출
한복 소재 목도리 두르고 기념 촬영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일 경북 경주 화백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과 한복 소재로 만든 목도리를 두르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이 대통령,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 크리스토퍼 럭슨 뉴질랜드 총리,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 뒷줄 왼쪽부터 존 리 홍콩 행정장관, 존 로쏘 파푸아뉴기니 부총리, 알렉세이 오베르추크 러시아 국제부총리, 로런스 웡 싱가포르 총리, 아누틴 찬위라꾼 태국 총리, 르엉끄엉 베트남 국가주석,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 테레사 메라 페루 통상관광부 장관,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멕시코 경제부 장관, 린신이 대만 총통 선임고문. 경주 | 김창길 기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결과물인 ‘경주선언’이 우여곡절 끝에 채택됐다. APEC 역사상 두 번째로 합의문 작성이 불발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지만 의장국인 한국의 중재로 미국과 중국 등 회원국이 모두 동의하는 성과물이 나왔다. 다만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아래 자유·다자무역을 지지한다는 명시적인 내용은 빠지고 이를 간접적으로 확인하는 데 그쳤다.

이재명 대통령 등 21개 APEC 회원국 정상은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1일 경주 화백컨벤션센터에서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경주선언을 채택했다. 올해 APEC의 3대 중점 과제인 ‘연결·혁신·번영’을 기본 틀로 무역·투자, 디지털·혁신, 포용적 성장 등 핵심 현안에 관한 논의 결과가 담겼다. 또 인공지능(AI) 협력 및 인구구조 변화 대응에 대한 회원국 공동 협력 의지를 담은 문서도 채택됐다.

정상들은 선언에서 “우리는 글로벌 무역체제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음을 인식한다”며 “견고한 무역 및 투자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성장과 번영에 필수적이라는 공동 인식을 재확인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정상회의 당일까지 문안 타결을 위해 밤샘 협상을 진행하며 미·중·일·러 등 APEC 회원국 간 입장 차이를 중재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 끝에 경주선언을 비롯한 주요 성과문서 3건 모두 합의를 도출했다”고 설명했다.

경주선언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다자무역 질서가 흔들리는 현실이 반영됐다. 보통 정상선언에 담기는 자유·다자무역과 WTO를 지지하는 직접적인 표현이 빠지면서 문안 수준이 기존보다 후퇴했다.

트럼프발 다자무역 균열 현실
“무역·투자 환경 중요성 인식”
문안에는 ‘모호한 표현’ 그쳐
각료선언으로만 “WTO 지지”
문화창조산업·AI 이니셔티브
정상선언에 최초로 명시 ‘성과’

지난해 페루 APEC 정상선언은 자유·개방·공정·비차별·투명·포용·예측 가능 등 가치에 준거한 무역·투자 환경의 중요성을 언급했고, WTO 기반 다자무역 체제의 지지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경주선언은 “모두에게 회복력을 촉진하고 혜택을 제공하는 무역 및 투자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한다” “글로벌 무역의 현황과 미래에 관한 다양한 논의를 주목하며 이와 관련한 회원국 간 협력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등 모호한 표현으로 대체됐다.

다만 2020년 채택된 ‘APEC 푸트라자야 비전 2040’의 추진 의지를 나타낸 내용은 예년처럼 담겼다. 이 비전은 APEC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한 문서로 자유·다자무역과 WTO에 대한 지지를 확인하는 문구가 들어 있다. 경주선언과 함께 채택된 APEC 외교·통상 합동각료회의 공동성명에도 “WTO에서 합의된 규범이 글로벌 무역 촉진의 핵심임을 인식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정상들은 경주선언에서 이런 합동각료회의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 정상선언에서 WTO 지지를 에둘러 나타내고, 한 단계 낮은 각료선언에 직접 명시한 것이다.

이번 APEC 결과물은 미·중 입장이 절충된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 대표단은 다른 회원국들을 상대로 APEC이 폐막하는 지난 1일 오전까지 문안 조율을 이어갔다. APEC의 의사결정은 컨센서스(표결 없는 전원 동의)로 이뤄지기 때문에 한 회원국이라도 끝까지 반대하면 무산된다. 1989년 APEC이 출범한 이후 정상선언이 도출되지 않은 건 트럼프 행정부 1기 때인 2018년 파푸아뉴기니 APEC이 유일하다. 대통령실은 “미·중 간 강경 대치 흐름을 극복하고 리더십을 발휘해 양측이 모두 동의하는 문안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경주선언은 문화창조산업을 아·태 지역의 신성장 동력으로 인정하고 협력 필요성을 명문화한 게 특징이다. 문화창조산업이 정상선언에 명시된 건 처음이다. 대통령실은 “향후 우리 ‘K컬처’가 아·태 지역 내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마련된 것으로 평가된다”고 했다.

정상들은 ‘APEC AI 이니셔티브’도 채택했다. APEC 정상들이 AI 협력과 관련한 공동비전을 마련한 건 최초다. 또 미·중이 모두 참여한 AI 관련 정상급 합의문이 나온 건 처음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최초로 ‘APEC 인구구조 변화 대응 공동 프레임워크’도 채택됐다. 저출생·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가 공동의 과제라는 인식에 따른 것으로 5대 중점 분야별 정책 방향과 협력 방안이 담겼다.

대통령실은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APEC은 포용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 혁신을 통한 번영, 인류 공동의 미래 대응력 강화라는 공동 목표를 향한 협력의 새 이정표를 세운 것으로 평가된다”고 했다.

경주 | 정희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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