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럼] 다학제(협진)의 이상과 현실, 통합치료 시대로

황성환 부산제2항운병원장 2025. 11. 2.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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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환 부산제2항운병원장

최근 의료계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개념 중 하나가 ‘다학제(協診) 진료’다. 이는 여러 진료과의 전문의가 한 환자를 함께 진단하고, 치료 방침을 논의하는 협력 진료 체계를 말한다. 기저 질환이 동반된 고령의 암이나 심혈관, 뇌혈관 질환 환자가 그 대상이다. 수술과 약물, 재활, 행동 치료 등이 병행되어야 하는 경우 여러 과의 협진이 필수적이다.

다학제 진료는 복잡한 질환을 환자 중심으로 치료하기 위한 이상적인 모델이지만, 현실에서는 한계에 부딪힌다. 특히 골반장기탈출증처럼 해부학적 구조와 기능의 복합적 이상에서 비롯되는 질환은 다학제의 필요성이 크면서도 그 혜택을 받기 어렵다. 골반장기를 지지하는 주요 인대(자궁천골, 치골요도인대 등)가 약해지고 골반저 근육판이 하강하면서 전방에는 방광류와 요실금이, 중간에는 자궁탈출과 골반통이, 후방에는 직장류·직장탈출, 변비, 변실금이 함께 나타난다. 자궁과 직장이 동시 탈출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고, 요실금 환자의 약 20%에서는 변실금이 동반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자궁탈출은 산부인과, 요실금은 비뇨의학과, 직장탈출과 변실금은 대장항문외과에서 따로 진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제는 이런 구분이 인체의 실제 구조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방광과 자궁, 직장은 서로 인접해 있으며, 모두 골반저 근육과 인대라는 동일한 지지 구조물로 유지된다.

그렇다면 이 세 장기의 기능 장애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치료할 수 있는 ‘초전문가’가 있다면 환자는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골반저 질환은 결국 하나의 해부학적 단위를 공유하는 기능적 장애로 보아야 하며, 분절된 진료보다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러한 복합 질환을 해부학적으로 설명한 것이 호주의 부인과 의사 페트로스가 제시한 ‘통합이론’이다. 그는 요실금 변비 변실금 직장통 골반장기탈출 등은 각각의 장기 질환이 아니라 골반저를 이루는 인대·근육·신경의 균형이 무너지며 생기는 하나의 구조적 질환군이라고 보았다. 이후, MRI와 초음파 연구에서도 이러한 인대 약화와 근육 하강이 실제로 확인되면서 통합이론은 현대 골반저의학의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질환을 여러 과가 나누어 협의하는 전통적 다학제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환자는 여러 병원을 옮겨 다니며 중복된 검사를 받기 쉽고, 의사들의 의견도 달라 진료의 일관성이 떨어진다. 반면 암이나 심혈관 질환처럼 수익성이 높은 질환은 다학제 체계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상급종합병원에 집중된다. 결국 환자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골반저 질환은 대학병원에서도 밀려난다.

이제는 다학제를 단순한 회의체로만 볼 것이 아니라, 통합적 이해를 갖춘 초전문가가 주도하는 새로운 다학제 모델로 발전시켜야 한다. 한 명의 의사가 해부학 기능 영상 수술 재활까지 폭넓게 이해하고 필요할 때 각 분야와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구조, 즉 ‘초전문가 중심의 통합형 다학제’가 그 해답이다. 이 방식은 복잡한 조율 과정을 줄이면서도 환자 중심의 치료를 가능하게 한다. 스위스의 포소버 박사는 이러한 모델을 성공적으로 실현했다. 그는 산부인과와 신경외과의 술기를 결합해 신경·골반저 수술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고, 현재 그의 이름을 딴 국제 골반신경센터는 세계 각국의 의사들이 배우러 오는 곳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방향이 필요하다. 고령화로 변비 변실금 요실금 골반통 장기탈출 환자가 늘어나는 지금, 대학병원 중심의 시스템을 넘어 전문병원 중심의 ‘통합치료센터’를 육성하고 해부학적·기능적 이해를 겸비한 초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다학제가 환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진료 체계로 발전하려면 ‘회의형 협진’에서 ‘실행형 통합진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의료의 본질은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정확히 치료하느냐에 있다. 골반저 질환처럼 구조와 기능이 긴밀히 얽힌 분야일수록 형식보다 통합적 사고를 가진 전문가가 필요하다. 그런 전문가가 모여 연구하고 진료할 때, 비로소 우리 의료는 진정한 의미의 다학제를 실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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