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민의 와인프릭] "스페인산 수입 중단하라"… 프랑스 거리에 쏟아진 '레드 와인'

2016년 4월 스페인과의 국경에서 불과 10㎞ 남짓 떨어진 프랑스 남부 소도시 르불루. 자연적으로 발생한 유황과 염분 덕분에 고대 로마 시대부터 유명한 온천이 소재해 '치유의 도시'라 불린 이 작은 동네 길거리가 피 칠갑을 한 듯 붉게 물들었습니다. 테러라도 벌어진 걸까요?
이날 거리를 붉게 물들인 액체의 정체는 다행히도 피가 아닌 와인이었습니다. 프랑스 와인 생산자들이 자국보다 생산 기준이 느슨하고 저렴하기까지 한 스페인 와인의 수입에 반발하며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탱크로리를 통해 육상 운송되던 스페인 와인을 길에 쏟아 버린 것이죠.
길에 버려진 와인의 양은 약 7만ℓ. 750㎖ 와인병 기준으로 9만3000병 분량인데요. 프랑스 와인 생산자들은 와인 운반 차량 탱크에 '부적합한 와인'이라는 문구를 크게 적은 뒤에야 차량들을 풀어줬다고 합니다. 프랑스 포도 농민들의 이날 시위는 세계적으로 꽤 유명해졌습니다.
스스로 와인 종주국임을 자처하는 프랑스 내 많은 와인 생산자들은 이날 시위가 자국 내 농업 보호와 유럽연합(EU) 자유무역 정책 간의 갈등을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재밌는 사실은 이 사건이 발생한 프랑스 남부 랑그독 지역에선 100여 년 전에도 '와인'을 매개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때는 단순히 와인을 버리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생산자들의 집회·시위를 반란으로 규정했고, 군대가 출동해 진압하는가 하면 유혈사태도 발생했거든요. 프랑스 역사책에도 기록된 1907년 랑그독 와인 반란 사건입니다.

운하 개통으로 와인 산업 '활짝'
우선 랑그독 지역이 왜 이토록 타국 와인 수입에 민감해하는지부터 알아봐야겠습니다. 스페인과 국경을 맞댄 프랑스 남부 와인 산지인 랑그독루시용 지역은 피레네산맥을 따라 남동쪽 국경부터 북쪽과 동쪽으로는 론강까지 뻗어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지역에서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지금까지 매우 오랜 기간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양조해왔습니다. 자연스레 이 지역은 와인에 대한 자부심도 높죠. 하지만 자부심에 비해 와인의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북쪽의 보르도, 동쪽의 론 밸리, 북동쪽의 부르고뉴, 샹파뉴와 같은 오래전부터 더 유명한 생산지가 다수 존재하는 까닭에 그들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 지역 와인이 타 지역에까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후반 지중해에서 내륙으로 파고든 미디 운하가 개통하면서입니다. 운하는 대서양에서 내륙으로 파고드는 보르도의 가론 운하와 연결돼 북유럽과 지중해 간 무역 루트를 크게 단축했습니다. 이 획기적인 루트에 물동량이 몰리면서 운하가 속한 랑그독 지역의 상업이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됐고요. 이런 분위기를 타고 지역 혹은 국가 내에서 주로 소비되던 랑그독 와인 역시 유럽 전역으로 확산합니다.
하지만 1860년대 포도나무의 흑사병이라 불리는 필록세라가 창궐하면서 겨우 꽃피우기 시작한 랑그독 와인 산업은 순식간에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와인의 원재료인 포도나무가 뽑혀나가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양질의 와인을 대체하기 위해 저질 와인이 등장했고, 양조에 사용된 포도의 품질이 좋지 않다는 점을 가리기 위해 건포도 와인이나 기타 불순물을 섞은 당도가 높은 와인이 생산·유통되기 시작하는데요. 이 문제는 랑그독 와인에 치명적이었습니다. 후폭풍으로 랑그독 와인의 시장 점유율이 급락하고 이 지역 와인 산업의 생존권이 위협받게 됐습니다.

와인 반란 시위대, 3달 만에 80만명으로
반란의 첫 징후는 1890년대 중반 랑그독 지역의 와인 생산자들이 베지에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당도가 높은 와인, 수입 포도로 만든 와인, 그리고 다른 과일로 만든 와인이 시장에 넘쳐나는 것에 항의하면서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고품질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많은 자원과 노력을 쏟는데, 왜 저품질의 와인을 그대로 보고만 있느냐'는 정부를 향한 불만인 셈입니다.
설상가상으로 1890년대와 1900년대 남부 프랑스에서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이 크게 부상했습니다. 그 영향으로 랑그독 지역 농업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와인에 대해 더 높은 가격을 협상할 수 있도록 와인 협동조합을 발족하고 본격적인 집단행동에 들어갑니다.
1907년 2월 첫 파업이 시작됐습니다. 농민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마르셀랭 알베르는 당시 프랑스 총리였던 조르주 클레망소에게 랑그독 와인 생산자들의 불만을 담은 서한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죠.
결국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907년 3월 11일 랑그독 와인 무역의 쇠퇴를 초래한, 많은 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이해당사자 모임이 아르젤리에라는 작은 마을에서 열렸습니다. 그곳에서 지역 와인 생산자들의 조직을 자체적으로 감독하고 매주 일요일에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아르젤리에 위원회(Comite d'Argeliers)가 구성됐습니다.
위원회가 구성되자 농민들은 곧바로 시위를 조직합니다. 역사에는 3주 뒤인 같은 달 31일 비즈미네르부아 마을에서 600명이 모인 게 공식적인 첫 시위로 기록됐습니다.
참석자는 곧 크게 늘어났습니다. 4월 중순 쿠르상 집회에는 약 5000명이 참석했고, 4월 말 레지냥코르비에르에서 열린 시위에는 포도 농장 농부와 가족·친지 등 2만~2만5000명이 모입니다.
5월 12일에는 랑그독 와인 산업의 중심지인 베지에에서 집회가 열립니다. 15만명이 정부 정책에 항의하며 거리에 나선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베지에로 모이려는 군중이 너무 많아서 거의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이었던 열차가 꽉 찼다고 하네요. 시위의 불길은 들불처럼 번져나갑니다. 5월 19일, 같은 달 26일, 그리고 6월 2일에 페르피냥, 카르카손, 님에서 시위가 열렸을 때는 20만명이 넘는 군중이 참석한 것으로 보고됐습니다. 급기야 6월 9일엔 60만~8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몽펠리에에 모이면서 정점을 찍습니다.

'반란'을 진압하라…계엄령 선포
결국 몽펠리에 시위를 기점으로 중앙정부(클레망소 정부)도 행동에 나섰습니다. 클레망소는 지금까지 지속된 일련의 시위를 '국가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남부 주요 지역에 국지적 계엄령을 선포합니다. 와인 생산자들의 시위를 반란으로 본 겁니다. 보병 2만5000명과 기병 8000명으로 구성된 34개 연대를 계엄군으로 편성해 남쪽 랑그독-미디 지역으로 보내 베지에·나르본·몽펠리에 등 주요 도시에 분산 주둔케 했습니다. 참고로 이후 프랑스가 외환의 위기가 아닌 상황에 국지적으로나마 계엄령을 선포한 것은 1961년 알제리 장교 쿠데타 시도가 유일합니다.
더 이상의 유혈사태를 원치 않았던 시위대와 정부는 결국 6월 22일 파리에서 협상을 벌입니다. 아르젤리에 위원회 소속이었던 마르셀랭 알베르는 직접 파리에 도착해 클레망소 총리와 사태 해결을 위한 협상을 벌였고 여러 결의안에 합의했습니다. 이 합의에는 외국산 와인 수입을 줄이고 포도가 아닌 다른 과일이나 설탕을 다량 첨가한 와인의 광범위한 생산을 억제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소기의 결실을 거둔 것이죠. 그리고 이 합의는 오늘날 거의 모든 나라가 본받아 시행하고 있는 프랑스 와인의 지리적 원산 표시제(AOC) 체계 형성의 역사적 계기가 됐습니다.
와인 반란, 역사에 한 획을 긋다
반란은 어떤 시사점을 남겼을까요? 우선 역사적으로 프랑스 농업 근대화의 분기점으로 평가됩니다. 구조의 불균형, 산업화 과정에서 주변부가 겪은 경제적 소외, 그리고 중앙집권적 시장 질서의 폐해를 환기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사건은 프랑스 농민 운동의 전환점이 됐습니다. 1907년 이후 전국 각지에서 협동조합과 생산자조합 등이 제도권 안에서 조직화되기 시작했죠. 조직된 힘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입니다. 프랑스 남부 농민의 '와인 반란'이 제도적 농업 운동의 씨앗이 된 셈입니다.
다만 오늘날에는 랑그독을 비롯한 프랑스의 거의 모든 와인 산지에서 지역별 생산량 조절 정책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많이 만드는 것'보다 '적절한 양을, 좋은 품질로 만드는 것'에 집중한 결과입니다. 지역 공동체가 스스로의 생존 방식을 찾아낸 것이죠.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전형민의 와인프릭은 우리가 몰랐던 흥미로운 와인 이야기를 재밌고 맛있게 풀어드립니다.

[전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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