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 문안 드리듯 정성 다해”···트럼프·시진핑 얼굴 새겨진 ‘APEC사과’ 키운 박인수씨

김현수 기자 2025. 11. 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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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고온에 가을장마까지
2500개 중 900개만 납품
절반도 못 건졌지만 뿌듯해
APEC에 제공된 문자사과
경북지역 5개 농가가 참여
고당도·특유 장미향 등 호평
APEC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건네진 ‘문자사과’를 만든 박인수씨(64). 박씨 제공

“두 번 다시는 못 하죠. 너무 힘들었어요.”

경북 경주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마지막날이었던 지난 1일. 경북 문경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박인수씨(64)가 휴대전화 너머로 손사래 치며 말했다.

올해 그가 키운 사과는 여느 사과와 다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각국 정상 얼굴이 새겨진 ‘문자사과’를 키워냈다. 사과 중엔 첨성대, APEC 등이 새겨진 문자사과도 있다. 행사장 주변 ‘K-푸드 스테이션’에서 선보여 화제가 된 바로 그 사과다.

20년 넘게 사과 농사를 지어온 박씨에게도 ‘문자사과’를 만드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약 6300㎡ 규모의 과수원에서 ‘양광’과 ‘감홍’ 품종을 따로 관리했다. 정상회의 일정에 맞춰 수확할 수 있는 품종이기 때문이다.

5월 사과에 봉지를 씌우는 작업을 시작으로 9월초 봉지를 벗긴 뒤 검정 문자 스티커를 붙였다. 약 한 달간 착색 과정을 거치는데, “비바람이 불면 스티커는 속절없이 떨어져나갔다”고 한다.

경주 APEC 국제미디어센터 부근에서 운영된 ‘K-푸드 스테이션’에서 경북도 농업기술원이 선보인 사과. 강정의 기자

박씨는 “스티커로 가려진 부분은 붉게 익지 않아 문자가 남는 원리다. 그렇다 보니 스티커가 떨어지면 재빨리 다시 붙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며 “매일 아침, 오후마다 문안 인사를 드리러 가야 할 정도 였다”고 말했다.

잦아진 이상기후도 애를 먹였다. 경북지역은 올해 3월 말~4월 초 최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봄철 저온 현상이 일어났다. 7월부터는 이상 고온현상이 지속되면서 사과가 커지는 시기를 놓쳤다. 일교차도 크지 않아 색깔까지 고르게 입혀지기 힘든 기후였다.

박씨는 “가을장마까지 오면서 배수가 안 돼 낙과가 많이 생겼다”며 “2500개에 스티커를 붙이고 세심하게 생육환경을 조성했지만 납품된 건 900개 정도다. 절반도 못 건진 셈”이라고 말했다.

온갖 고생을 했어도 문자사과를 수확하면서 뿌듯했다고 했다. “사서 고생을 하냐”던 이웃들도 ‘2025 APEC KOREA’란 글자가 선명해 새겨진 사과를 보고 부러워했다고 박씨는 전했다.

경북지역 5개 농가가 만든 문자사과는 정상회의 기간 회의장과 APEC 경제전시관, 국제미디어센터 등에서 21개 회원국 정상과 대표단, 기업인 등에게 제공됐다. 붉고 선명한 색상, 17브릭스 이상 높은 당도와 특유의 장미향 등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 경북도의 설명이다.

박씨는 “우리나라가 개최하는 국제행사에 일개 농부인 내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면 자부심이 든다”며 “대통령이 먹든, 동네 사람이 먹든 늘 정성을 다해 국민 밥상을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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