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아버지’ 앨런 튜링이 베어먹은 사과 [아침햇발]

정남구 기자 2025. 11. 2.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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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로고(괄호 안은 사용 연도).

정남구 | 경제산업부 선임기자

인공지능(AI) 산업이 꽃을 피우고 있다. 챗지피티, 제미나이, 퍼플렉시티, 딥시크 등은 이미 놀랄 만한 여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추가 투자가 폭발하면서, 칩 설계의 선두 주자인 미국의 엔비디아는 주식 시가총액이 지난달 29일 세계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5조달러(약 7100조원)를 넘어섰다. 국내총생산(GDP) 세계 3위인 독일의 지난해 지디피(4조6599억달러)보다 많다. 지난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연사로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온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젠슨 황이 ‘치맥’ 파티에서 보인 환한 웃음은 인공지능의 밝은 미래를 상징하는 것만 같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따르는 게 세상 이치다. 대책을 마련해야 할 걱정거리도 적지 않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는 상황이 벌어질 위험이 있다. 인공지능 기술을 비인도적 범죄를 대신 수행하는 데 쓰는 사람이나 집단이 나올 수도 있다. 인공지능의 활용이 인간의 여러 노동능력을 고용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바꿔놓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서 그 이야기는 잠시 제쳐두려고 한다. 그보다 인공지능의 아버지 앨런 튜링(1912~1954)의 생애가 우리에게 아직까지 남겨놓은 숙제부터 거론하려 한다.

영국의 수학자, 암호학자인 앨런 튜링은 ‘현대 컴퓨터 과학과 인공지능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복잡한 계산과 논리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초보적 형태의 컴퓨터 ‘튜링 머신’을 고안하는 등 컴퓨터 과학의 토대를 쌓았다. 기계가 인간처럼 생각하는지 아닌지를 평가하는 ‘튜링 테스트’ 개념도 개발했다. 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암호 해독 기관에서 일하며 독일군의 암호 시스템인 에니그마 해독기를 개발해, 연합군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큰 기여도 했다. 그러나 조국과 인류에 대한 그의 기여가 보상을 받기는커녕, 그는 젊은 나이에 고통 속에 생을 마감했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그에게 가해진 핍박은 가혹했다.

그가 살던 시기 영국에서 동성애는 ‘범죄’였다. 그는 1952년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았다. 감옥에 가거나 여성호르몬 투여에 의한 화학적 거세 가운데 하나를 강요당했다.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화학적 거세 쪽을 선택한 그는 모든 기밀 취급 업무에서 배제되고 외국에도 나갈 수 없게 됐다. 정신과 육체가 무너진 그는 2년 뒤 ‘청산가리’(사이안화 칼륨) 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사망한 현장에서 깨물어 먹다 만 사과가 발견됐다. 애플이 두번째로 만들어 1976년부터 1998년까지 사용한, 한 입 베어 먹은 사과에 무지개색을 입힌 ‘레인보 로고’는 사람들에게 앨런 튜링의 생애를 떠올리게 했다. 비록 애플사는 그런 의미로 만든 것이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했지만.

2013년 말 스티븐 호킹을 비롯한 수만명의 지식인이 그의 복권을 청원했다. 영국 여왕이 특별 사면령을 내렸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9년 만이었다. 영국(잉글랜드)이 1967년 21살 이상 남성 간 동성애를 처벌하는 법 조항을 폐지한 지 46년 만이었다.

우리나라 형법에는 동성애를 처벌하는 조항은 없다. 그러나 군형법은 동성 군인 간의 성행위를 ‘추행죄’로 처벌한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영내에서나 근무시간 동성 군인 간 성행위’는 합의한 관계라도 추행죄 처벌 대상이라고 판결했다. 일부에 한하지만 동성애를 범죄로 삼으면서,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국가가 조장하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앨런 튜링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그렇게 핍박을 당하지 않았다면 세상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챗지피티는 이렇게 답했다. “과학·기술·사회 전반에 매우 큰 변화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의 비극적인 죽음은 인류 과학사에서 ‘잃어버린 가능성’의 상징이기도 하지요.”

개인의 다양한 ‘성적 지향’을 옳고 그름으로 나누고, 찬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잘못이다. 피부색, 혈액형과 마찬가지로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야 한다. 형사처벌뿐 아니라, 모욕과 차별도 금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 임기 안에 이를 담은 차별금지법이 꼭 제정되기를 바란다. 편견이야말로 교정돼야 한다.

작곡가 차이콥스키, 작가 버지니아 울프와 테네시 윌리엄스, 가수 프레디 머큐리,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미셸 푸코…. 살아 있다면 법 제정에 동의했을, 편견에 시달리고 핍박 속에 살다간 유명 인사들의 이름을 늘어놓자면 이 칼럼을 가득 채우고 남을 것이다. 주식 투자자들이 인공지능 기업을 향해 쏘아 올리는 폭죽의 화려한 불꽃 아래서, 앨런 튜링의 명복을 빈다.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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