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남의 이별을 두 번씩이나 엿볼까? [복길의 방송일기]
편집자주
복길 대중문화평론가가 화제의 방송을 깊게 들여다봅니다.

김기태의 소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 수록된 ‘롤링 썬더 러브‘는 가상의 연애 프로그램 ‘솔로농장‘에 출연한 맹희의 이야기다. “아무리 피부과 의사여도 저 키는 남자로 안 보임” “늙고 직업도 별로면 노력이라도 해야지” “눈만 높은 흔한 여자 공무원”… 맹희는 자신과 출연자들을 멋대로 재단하는 댓글을 읽고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나이와 직업과 외모를 초월한 사랑이 더 진실하다 여기면서도 정말 그것들을 초월하려고 시도하면 자격을 물었다. 인생을 반도 안 산 사람에게 어떻게 ‘도태’되었다는 표현을 할 수 있는지, 596명이나 거기에 추천을 누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의아했다.”
맹희가 의아하게 여겼던 바로 그 세상의 596명 중 하나로 살고 있는 나는 올해도 어김없이 ‘환승연애‘ 시리즈를 시청 중이다. 헤어진 연인들이 한 집에서 생활하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옛 연인과의 재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이 작품의 포맷은 연애 리얼리티라는 장르 안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선점해 벌써 네 번째 시즌을 맞았다. 전 시즌과 크게 달라진 점은 없지만 이번 시즌에서 유독 돋보이는 경향이 있다면, 이 작품을 함께 보면서 코멘트를 하는 ‘리액션 콘텐츠’가 유튜브에서 성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송 시청을 통해 이미 출연자의 감정을 한 차례 따라갔음에도, 리액션 콘텐츠를 보며 타인의 이별과 재회를 반복해서 관찰하는 이 현상은 대체 무엇을 의미할까?

출연자의 행동을 부분적 서사에 따라 편집하는 연애 리얼리티의 비선형적 편집은 시청자에게 일종의 왜곡을 느끼게 하고, 이는 작품을 끊어가며 분석을 덧붙이는 리액션 콘텐츠의 원동력이 된다. 리액션 콘텐츠는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는 출연자들의 숨겨진 감정과 의도를 짚으며 편집된 서사 너머의 진실을 파악했다는 만족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 이중 관찰 시장의 중심에는 ‘환승연애’를 비롯한 연애 리얼리티 출연 경력자들이 포진해 있다. 그들은 자신이 대중의 무차별적인 판단 대상이 되어본 경험이 있기에 비난 대신 공감과 정교한 심리 분석에 초점을 맞추는데, 시청자들은 이들의 경험과 해석을 현재 방송되는 출연자의 서사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공적 가치로 주목하게 된다.
‘환승연애‘와 같은 연애 리얼리티 쇼의 출연을 이후 파생될 인기와 인지도를 얻기 위한 ‘연애 노동’으로 간주할 수 있다면, 전 출연자들이 만드는 ‘내부자 시점’ 리뷰 콘텐츠 역시 자신들의 영향력을 자본으로 지속시키기 위한 또 다른 노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노동은 삶의 가장 사적인 ‘관계’를 자원화하여 ‘진정성’이라는 가치를 창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관계 맺기에 대한 불안을 가진 청년 시청자층은 이들의 ‘진정성’에 기대 관계의 정답과 실패를 안전하게 학습할 수 있다는 만족감을 얻는다.

그러나 연애 리얼리티의 본질은 결국 ‘타인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간섭’이다. 개인의 사생활 자체가 콘텐츠이자 노동이 된 사회에서 출연자와 시청자는 종종 착취를 낭만과 혼동하곤 한다. ‘인플루언서’의 지위와 사생활 침해는 교환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님에도, 사람들은 모두 그 영향력이 창출하는 경제적 대가에 윤리적 책임을 전가해 대중의 가학적인 개입을 정당화한다.
연애 리얼리티와 리액션 콘텐츠가 이미 ‘연애 노동’이라는 아이러니를 만들고 심화시키는 시장을 형성했다면,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게 만드는 그 환경에 대한 비판 역시 지속해야 할 것이다. 타인의 연애를 관찰하고 또 다른 타인의 해석을 끌어들여 끝없이 관계의 실체를 파악하려는 이 순환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영원히 ‘리뷰 가능한 콘텐츠‘로 전락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타인의 연애에서 얻는 잠정적 깨달음을 넘어, 우리가 갈망하는 관계의 진정성과 개인의 성숙은 나만의 경험과 해석에서 비로소 발견되는 것이다. 사랑은 결코 하나의 정답을 도출할 수 없는 모호한 개념이기에, 이 고통스러운 연애 노동을 집요하게 관찰하는 행위로 진실을 얻을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가 몰두해야 하는 과제는 그 어떤 자본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우리의 미숙함을 직시해, 이 가혹한 시장 안에서 우리의 사랑을 스스로 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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