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문학으로 이끈 힘은?”…2025 신춘문예 당선자에게 듣는 ‘습작의 기억’

내년 서른번째 봄을 맞는 본지 신춘문예 공모가 한창 진행 중이다. 부단한 노력 끝에 작가로 설 수 있게 된 2025년 당선자들에게 물었다. “당신을 문학으로 이끈 힘은 무엇이었나요?”고등학교 교사, 60대 주부 그리고 마술사인 이들은 어떻게 신춘문예 등단이라는
꿈을 이룰 수 있었을까. 그리고 내년, 그 무대의 주인공은 당신이 될지도 모른다.
다시 쓰기 시작한 삶


이야기하기 좋아하던 나
담임선생님이 글짓기반으로
손가락에 굳은살 박이도록
하염없이 써 내려가
◆ 오재아 (단편소설 ‘블러드 문’ 당선)
어린 시절의 나는 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모아놓고 무아지경에 빠져 막 떠들어댔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나를 글짓기반으로 이끌어주셨다. 그날부터 나는 3년간 방과 후에 매일 새로운 글을 썼다. 늦은 시간까지 연필을 움켜쥐고 뭔가를 하염없이 써 내려갔던 기억은 오른쪽 세번째 손가락에 굳은살이 되어 남아 있다.
청년기의 나는 먹고살기에 바빴다.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교사가 되었고, 그 일을 잘 해내기 위해 다른 것을 돌아볼 여력이 없었다.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허기와 일상에서 켜켜이 쌓인 스트레스를 밤마다 소설을 읽는 것으로 해소했다. 거의 유일한 취미였다. 기기묘묘한 이야기는 언제나 고단함을 잊게 해주었고 지친 영혼을 위로해주었다.
지천명을 앞두고 ‘스토리텔링 입문’이라는 줌 강의를 들었다. 문지혁 선생님께서 진행하신 수업이었고, 교재는 데이먼 나이트의 ‘단편소설 쓰기의 모든 것’이었다. 두달 과정을 마쳤을 때 단편소설 하나를 완성했고, 단정한 글이라는 평을 들었다. 용기를 얻어 퇴근하고 소설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밤늦게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면서도 피곤한 줄 몰랐다. 그렇게 3년의 습작기를 거쳐 ‘농민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게 되었다.
나의 이야기에 대한 연심은 역사가 길다. 이제 글로 풀어낼 시간이다. 소설가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생업에 치여 쓰지 못하는 날이 더 많다. 그래도 하루를 버티어낸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글을 상상한다. 내가 잘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정교하게 만들어 세상에 내어놓아야 한다는 마음을 되새기며 살고 있다.
나의 첫 문장


◆ 양점순 (필명 양사강·시 ‘모란 경전’ 당선)
어린 시절 “밥 먹자”는 엄마 말
온기 어린 시처럼 내 안에 들어와
늦은 나이 창작 시작, 방황의 시간도
“문학은 자기 자신과 오래 마주 앉는 일”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젖은 종이 냄새, 언제 불러도 다정한 이름의 냄새와 어떤 목소리를 쫓다가 순간 문장을 놓쳤다.
어린 시절 부엌에서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며 “밥 먹자” 하시던 그 말이 시처럼 들렸다. 흔한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온기가 있었다. 아마 문학은 그때 이미 내 안으로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나는 글과는 먼 일을 하며 살았다. 새해 첫 신문에 실린 신춘문예 난을 펼칠 때면 괜히 설렜다. 구독하지 않는 신문사의 당선작이 궁금해 출근길 가판대에서 신문을 사서 읽었던 기억.
늦은 나이에 서울 용산도서관의 시 창작반 문을 두드렸다. 방향 없는 글은 합평 시간마다 너덜너덜해졌지만, 그 부끄러움이 이상하게 즐거웠다. 그러나 그 즐거움도 잠깐이었다. 쓰면 쓸수록 작아지는 내 시를 보며 독자로 남기로 하고 한동안 떠나 있었다.
여행과 자격증 취득, 먹어도 허기가 졌다. 시 창작반에 다시 돌아왔을 때 이승희 선생님은 내 이름을 거론하며 “목표가 있어야 계속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오기와 용기가 뒤섞여 열에 들뜬 얼굴로 돌아오던 밤, 자다 일어나 문장을 고치고 또 고치며 나는 서서히 알아갔다. 문학은 자기 자신과 오래 마주 앉는 일이라는 것을.
2025년 ‘농민신문’ 신춘문예와 김유정 신인문학상 당선. 도서관 입구에는 축하 현수막이 걸리고, ‘용산을 품은 시인과의 시 토크’가 열렸다. 시 토크가 ‘한국강사신문’과 ‘서울교육소식’에 소개되면서 잡지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서 인터뷰도 제의받았다. 일상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낯선 격려가 찾아왔다. 그러나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나 자신이었다. 문학 앞에서 한결 겸허해지려는 마음,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다짐.
지금도 용산도서관에 적을 두고 시를 쓴다. 어렵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 도서관 길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면 신춘문예를 향한 문청(文靑)들의 희망과 절망의 계절도 시작된다. 얼마 전 떠나신 엄마, ‘자고 가는 저 구름아’를 낭랑하게 읽으시던 그 밤 그 목소리가 진하게 그리운 밤이다.
그 부름의 소리, 그 소리의 냄새가 내 문학의 첫 문장이 되었던 것일까?
낙타의 광합성


◆ 김영곤 (시조 ‘어떤 광합성’ 당선)
어린이책 집필, 6개월 만에 3000부 팔려
늦깎이 대학원생 돼 문학 석사 학위 취득
무거운 것 견디는 ‘낙타’ 문학하는 나와 닮아
마술사·일용직이지만 “시는 내 앞길의 빛”
누구에게나 ‘첫’이 있다. 첫 글짓기는 경북 청도 동곡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추워서 불을 쬐었다. 그래도 자꾸 추워서 내 손을 불에 넣었다. 앗 뜨거워!”
순식간에 친구들이 까르르 웃었다. 얼마나 유치한 글인가. 그러나 니체의 말처럼 순진무구한 아이들은 ‘신성한 긍정’이기에, 내 이야기를 창조적 놀이로 즐겨준 것 같다.
영어영문학을 전공했지만 문인이 되리라는 생각은 없었다. 어린이를 위해 쓴 책이 6개월 만에 3000부가 팔리는 경험도 있긴 했지만…. 그러던 어느 날, 공연하러 경남 통영 바닷길을 지나던 중에 갑자기 뜨거운 불길이 느껴졌다. 시동을 끄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받아쓰기하는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문학의 싹이 자라기 시작했다. 늦깎이 대학원생이 되어 문학 석사 학위도 받았는데, 논문 준비 과정은 혹독하지만 매혹적인 문학적 수련의 통로였다.
주로 오전엔 마술 공연을 하고 오후엔 도서관으로 향한다.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품 ‘어떤 광합성’도 도서관에서 6년간 담금질한 끝에 나왔다. 신춘에 당선되다니! 막연하게 도전해왔지만 막상 되고 나서는
의문이 생겼다. ‘왜 나를?’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더욱 정진하고 있다. 신춘 등단 이전엔 가도 가도 끝없는
터널이었지만, 이후엔 많이 달라졌다. 비로소 사람들이 고개 들어 나를 주목해준다. 원고 청탁이 오기 시작했다. 공무원들의 문학축제인 공직문학상 심사위원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곧 창간될 문학지에 상임이사 겸 편집위원으로 내정되어 어깨가 무거워졌다.
니체는 인간이 자아를 형성해가는 과정을 무거운 것을 견디는 ‘낙타’, 기존 가치를 부정하는 ‘사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인 ‘어린아이’로 표현했다. 주로 학교나 유치원에서 마술 공연을 하기 때문에 방학철은 비수기다. 문학 활동을 하기엔 최적이지만 난 아직은 낙타다. 그래서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용직 알바를 뛴다. 공연 암흑기였던 코로나 때도 상자를 지고 날랐는데 시가 내 앞길의 빛이 되어주었다. 그 기록물이 바로 시집 ‘존재의 중력’, 산문집 ‘상자의 중력’이다. 나는 사자였다가 어린이였다가 낙타가 되어도 감사하다. 낙타일 때가 오히려 가족간의 광합성이 최고조가 되기에. 그러므로 아픔이여, 혼돈이여, 춤추며 오라. 난 언제나 사막 위의 문장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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