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고 시게노리 또는 박무덕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인 1945년 9월2일 일본 도쿄 앞바다. 그곳에 정박한 미 해군 함정 ‘미주리’ 갑판 위에서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 일본의 항복 문서 조인식이 열렸다. 일본인으로선 대단히 치욕스러운 임무를 띠고 미주리함에 오른 이는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 당시 외무상이었다. 그는 1932년 4월2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가 일본 군부 및 정부 인사들을 겨냥해 던진 폭탄의 파편에 맞아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의족과 지팡이에 의존하는 시게미쓰가 절뚝거리며 항복 문서가 놓인 책상까지 이동한 다음 선 채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자필 서명을 하는 동안 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미군 원수는 차가운 눈으로 그 일거수일투족을 응시했다. 시게미쓰는 일왕이 항복을 선언한 직후인 1945년 8월17일 이른바 ‘패전 처리’를 위해 급하게 외상에 임명됐다. 그 전임자인 도고 시게노리(東郷茂徳) 외상이 “종전으로 내 역할은 모두 끝났다”며 사임 의사를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1930년대 독일은 일본의 동맹이었다. 덕분에 독일어가 유창한 도고는 외무성에서 승승장구했다. 주(駐)독일 대사를 거쳐 소련(현 러시아) 주재 대사까지 지내고 1941년에는 외무상으로 입각했다. 오늘날 극우 세력은 바로 이 점을 들어 “일본에 조선인 차별은 없었다”며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도고가 일본 외교를 책임지고 있던 1941년 12월7일 일본 군부가 하와이 진주만 공습을 단행하며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다. 공교롭게도 일왕이 항복 의사를 밝힌 1945년 8월15일 당시의 외상도 도고였으니 일본 제국주의의 발흥과 몰락 둘 다 바로 곁에서 지켜본 셈이다. 미군이 일본을 점령한 뒤 전범 혐의로 기소돼 징역 20년형이 확정된 도고는 도쿄의 한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1950년 7월23일 68세를 일기로 옥사(獄死)했다.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고 하겠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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