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이 뜬다'… 간척의 땅은 어떻게 'AI·미래 에너지' 도시됐나

곽지혜 기자 2025. 11. 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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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기반에서 관광레저 산업 시도
에너지 산업으로 부활, 태양광 도시
넓은 부지·전기·물 등 인프라 최적
삼성SDS·오픈AI 눈독 들이며 부상
전라남도 해남군 솔라시도 태양광발전단지. 전남도 제공

논과 염전이 펼쳐졌던 땅이 태양광 패널로 뒤덮이더니 이제는 대한민국 인공지능(AI) 산업의 심장으로 뛰고 있다. 관광레저도시를 꿈꿨던 개발의 흔적 위에서 해남군은 에너지와 AI 산업이 융합된 새로운 형태의 산업도시로 진화 중이다.

최근 삼성SDS 컨소시엄이 정부의 국가 AI컴퓨팅센터 후보지로 해남 '솔라시도'를 제안하며 국가 AI 인프라의 핵심 거점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오픈AI와 SK 데이터센터, RE100 국가산단 등 국내외 굵직한 기업과의 프로젝트에도 잇따라 이름을 올리며 부상하고 있는 '땅끝 해남'은 어떻게 이러한 변화들을 이끌어 왔을까.

농업에서 관광으로…'J프로젝트'의 시작과 좌초
해남군 일대의 간척지는 1970~80년대 영산강 4단계 간척사업으로 조성된 곳이다. 바다를 막아 얻은 3000여㏊의 새 땅은 오랜 기간 전남 서남권의 식량기지이자 농업 기반으로 기능했다. 해남은 벼와 보리, 마늘, 양파 등 대규모 농작물이 재배되며 '땅끝의 곡창지대'로 불렸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농산물 가격 하락과 농촌 고령화로 생산성이 낮아지며 점차 유휴지가 넘쳐나게 됐다.

이에 전남도는 2000년대 초반 농업 중심의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서남해안관광레저도시 개발계획', 이른바 'J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한국형 복합관광도시를 표방한 이 사업은 골프장과 마리나, 리조트 등 고급 관광 인프라를 대거 유치해 서남해안을 '한국의 플로리다'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하지만 면적 2000만평, 총 사업비 30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계획은 환경 훼손 논란과 투자 부진, 인근 새만금 사업과의 경쟁 속에 표류했고, 중앙정부의 정책 우선순위까지 바뀌며 자금줄이 막히자 사업은 사실상 중단됐다. 간척지 위에는 미완의 기반시설이 남았지만, 결과적으로는 현재 해남이 '에너지와 AI 산업의 거점'으로 다시 태어나는 토대가 됐다는 평가다.

재생에너지로 되살아난 간척지, '솔라시도'의 탄생
사업이 멈춘 간척지에는 2010년대 중반 새로운 방향이 제시됐다. 전남도는 간척지의 넓은 면적과 일조량, 바람을 활용해 태양광·풍력 중심의 에너지 도시로 전환을 추진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솔라시도(SOLASIDO)'다. 태양(solar), 바다(sea), 전남도의 도(do)를 결합한 이름처럼, 태양과 바람이 에너지의 원천이 되는 도시다.

2010년 정부의 개발계획 승인을 받은 후 2013년 본격적으로 착공한 솔라시도는 공유수면 토지화를 2018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도시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2019년에는 98MW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가 준공되면서 '국내 최대 민간 태양광 단지'가 가동되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전남 최초의 정원형 식물원인 산이정원이 개장했으며 정원형 주거지와 친환경 레저단지도 조성 중이다.

전남개발공사와 BS그룹, 전남도가 참여한 특수목적법인 서남해안기업도시개발㈜이 사업 시행을 맡고 있으며, 2030년까지 도시 인프라와 산업용 부지를 단계적으로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인공지능 산업 결합…국가 AI 거점·글로벌 투자 허브로
간척지 위에 세워진 태양광 패널은 앞으로 데이터센터의 냉각수를 식히고, 산업 전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솔라시도는 신재생에너지 중심지에서 한발 더 나아가 국가 AI 인프라의 핵심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삼성SDS를 주축으로 한 컨소시엄은 해남 솔라시도 부지를 '국가 AI컴퓨팅센터 구축 사업' 후보지로 낙점했다. 해당 사업은 2028년까지 GPU(그래픽처리장치) 기반 대규모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하는 국가 프로젝트로, 정부의 'AI 고속도로' 전략의 핵심 사업으로 꼽힌다.

전남도는 이와 함께 글로벌 자본 유치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의 자회사 뷔나(VENA)그룹이 'AI 데이터센터와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을 위한 20조원 규모 투자 의향서(LOI)'를 정부에 제출했으며, 관련 후보지 중 솔라시도가 가장 유력한 지역으로 거론되고 있다.

오픈AI와 SK가 공동 추진 중인 AI 전용 데이터센터 구축 프로젝트에서도 솔라시도가 검토 대상지로 포함됐다. AI 모델 운용에 필수적인 안정적 전력망과 RE100 기반의 친환경 인프라가 이미 갖춰져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평가된다.

왜 해남인가…'전기·물·땅'이 만든 최적지
이처럼 해남이 국내를 넘어 글로벌 기업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이유는 '전기·물·땅'이라는 3가지 핵심 인프라를 모두 갖춘, 전국에서도 드문 지역이기 때문이다. 

먼저 간척지로 조성된 평탄한 대지 덕분에 50만평 규모의 대형 데이터센터 부지가 이미 확보돼 토지 보상이나 환경 훼손 부담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재생에너지 기반 또한 풍부하다. 해남은 연중 일조량이 높고 풍속이 일정해 태양광·풍력 발전에 최적지로 꼽힌다. 98MW 규모의 태양광 단지가 가동 중이며, 5.4GW급 발전단지와 연계돼 있다. 전남도에 따르면 인근 금호호·영암호에서 하루 수천톤 규모의 산업용수 공급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는 데이터센터의 냉각수 확보에 유리한 조건으로, 향후 AI 데이터센터의 핵심 인프라인 전력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154kV급 변전소 신설 계획도 추진 중이다.

광주~완도 고속도로(2026년 개통 예정), 광주~영암 초고속도로(2027년 착공 예정) 등 서남권 교통망이 계획대로 확충된다면 수도권 등과의 접근성도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해남군 관계자는 "해남은 재생에너지 잠재력이 전국에서도 가장 풍부한 지역으로, 전국 유일하게 즉시 착공이 가능한 부지를 확보하는 등 정부 AI 3대 강국 실현을 확실하게 실현할 수 있는 모든 준비가 돼 있는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며 "풍부한 태양광·풍력 자원, RE100 국가산단과 특구 지정이라는 제도적 기반까지 갖춰 글로벌 기업이 가장 선호하는 투자처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남도 관계자는 "솔라시도는 단순한 산업단지가 아니라, 재생에너지와 AI가 결합한 새로운 성장 모델"이라며 "해남을 비롯한 서남권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미래형 산업 생태계를 실현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