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 혈통 두 학자, 예술로 세계와 만나다

장윤 기자 2025. 11. 1. 16:1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최초 ‘바사리 평전’ 번역한 이근배 전 조선대 교수와 그를 되살린 데이비드 영 킴 美 펜실베이니아대 교수
2025년 10월 24일 오전 경기도 성남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데이비드 영 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미술사학과 교수가 강의를 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낮에는 과학 연구로 전후 한국을 재건하고 밤에는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을 번역하며 삶의 의미를 탐색한 겁니다. 지성으로 예술을 창조하는 화가들에 몰입하며 그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전쟁으로 무너진 한국도 견뎌낼 수 있었을 겁니다.”

이북 출신 2세로 르네상스 미술사를 연구하는 데이비드 영 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미술사학과 교수(48)는 지난달 21일과 24일 이화여대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열린 강연에서 역시 북한 출신인 고(故) 이근배 전 조선대 의대 교수(1914~2007)를 이렇게 소개하며 눈물을 흘렸다. 킴 교수는 “이 교수와 나는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모두 북에 뿌리를 둔 사람으로서 언어와 정체성의 경계를 넘으려 했다”고 했다.

킴 교수는 “이 교수가 동아시아 최초로 조르조 바사리의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을 완역하며,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이 근대 지성의 세계로 들어섰다”고 했다. 바사리는 16세기 이탈리아 화가이자 건축가로, 1550년 동시대 예술가 200명의 생애와 작품을 정리한 ‘평전’을 펴냈다. ‘르네상스(rinascita, 고대의 재생)’ 개념이 처음 등장한 이 책은 서양미술사의 출발점으로 꼽힌다. 19세기 독일의 역사학자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는 “바사리가 이 책을 저술하지 않았다면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미술사를 연구하는 사가들은 아직 암흑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시대로 평가받는 르네상스는 바자리의 책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영 킴 교수가 이근배 교수의 아들 이영민씨로부터 받은 이 교수의 번역 노트./데이비드 영 킴 교수

평양 출신인 이 교수는 일제강점기 나가사키 유학 시절부터 낮에는 생화학을 연구하고 밤에는 번역에 몰두했다. 일본어·독일어·프랑스어를 익혀 근대 학문을 접했고, 프랑스 학자 모리스 쿠랑의 ‘한국서지(韓國書誌)‘를 번역하다 일제 경찰의 수색을 피해 중국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광복 후 귀국한 그는 한국원자력연구소 생물학연구실에서 근무하며 과학자로서 전후 복구에 힘썼다.

이 교수는 1960년대 하버드 의대 유학 중 2000쪽 분량의 가스통 드 비어가 번역한 영어판 바사리 평전을 구했다. 그는 귀국 후 18년에 걸쳐 완역 작업을 이어갔다. ’돈이 되지 않는 연구서‘라는 출판사들의 거절 속에서 번역을 묵히던 중, 탐구당이 1986년 세 권짜리 초판 500부로 이 교수의 번역을 출간했다. 2018년 한길사는 컬러 도판을 첨부해 이 교수의 번역을 재출간했다. 번역 강국으로 자부하는 일본은 2022년에야 ’평전’ 완역본을 출간했고 중국은 아직 번역 작업이 진행 중이다.

탐구당이 1986년 3권으로 출간한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 가격은 당시 돈으로 7만5000원이었다./이영민

킴 교수도 이 교수와 같이 이북 출신으로, 이곳 저곳을 떠돌며 공부하고 번역하던 이 교수에게 쉽게 공감했다고 한다. 킴 교수의 외가는 북한 대지주 출신으로 공산당에 재산을 몰수당한 뒤 6·25 직전 서울로 피란했다. 이후 킴 교수의 부모는 돈을 벌기 위해 브라질 상파울루로 이주하고 다시 미 미시건으로 이주해 킴 교수를 낳았다.

당시 이주 한인들 중 다수는 스스로가 한국인임을 부정하던 시절로, 킴 교수의 아버지도 “한국어는 필요 없다”며 어린 킴 교수에게 사용을 금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킴 교수의 어머니는 영어가 서툴러 가족 간 의사소통도 어려웠고, ‘한국어’는 킴 교수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다고 한다. 킴 교수는 “영어·라틴어·이탈리아어·프랑스어·포르투갈어를 쉽게 배웠지만 한국어만큼은 심리적 스트레스 때문에 잘 배워지지 않는다”고 했다. 킴 교수는 지난 주 한국에서 영어로 강연을 진행하면서 “내가 한국어로 이 강연을 진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며 가슴을 치기도 했다.

이근배 전 조선대 의과대학 교수의 생전 모습./데이비드 영 킴

킴 교수가 이 교수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2002년, 박사과정 입학을 앞두고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던 시기였다. 외삼촌이자 이 교수의 동료였던 이창건 전 한국원자력문화진흥원장의 서재에서 이 교수가 번역한 ‘평전’을 발견한 것이다. 킴 교수는 그해 3월 외삼촌과 함께 이 교수를 만났던 일을 이렇게 기억한다. “과학자인 당신이 왜 그렇게 절박하게 바사리를 번역했는지 너무나 묻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어를 잘 못한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고 바닥만 보고 있었지요. 지난 23년간 그 질문은 계속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이제야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 같아요.”

킴 교수는 1999년 미국 엠허스트대에서 어문학 학사, 2009년 하버드대에서 미술사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펜실베이니아대 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4년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여행하는 예술가’로 미 의회 선정 ‘올해의 책’과 랄프 왈도 에머슨 도서상 후보에 올랐다. 그는 곧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지원으로 이근배 연구가 포함된 ‘다국어 번역을 통해 본 글로벌 미술사’를 출간할 예정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