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 속도] ① “빠른 관광, 멈춘 건설”… 제주의 시계는 서로 다른 속도로 흐른다

섬의 시계가 어긋나기 시작한 순간.
제주는 지금 두 개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공항은 여행객으로 분주하지만, 건설 현장은 불 꺼진 지 오래입니다.
관광은 폭주하고, 건설은 정지했고, 소비는 식었습니다.
[김지훈의 ‘맥락’], 이번 연속기획 [섬의 속도]는 경제지표가 아닌 시간의 불일치, 숫자가 아닌 삶의 리듬으로 제주의 현실을 기록합니다.
1편에서는 산업별로 어긋난 속도의 균열이 어떻게 경제 구조를 갈라놓고 있는지를 다룹니다.

■ “생산은 돌았지만, 소비는 식었다”
1일 국가데이터처 제주사무소가 발표한 ‘9월 제주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광공업 생산지수는 전년 대비 2.2% 상승했습니다.
식료품(21.8%), 의약품(54.0%)이 성장세를 이끌었고, 음료 생산도 8.8% 늘었습니다.
공장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소비는 완전히 다른 속도를 보였습니다.
대형소매점 판매는 15.1% 급감.
의류, 화장품, 가전제품 등 대부분 품목이 줄었고, 음료 재고는 88%, 전자·통신 재고는 425% 폭증했습니다.
“창고는 꽉 찼는데, 손님은 없다.”
제주시 연동에서 식품을 납품하는 한 유통업자의 하소연입니다.
“생산은 늘었는데 출하가 막힌다. 팔릴 줄 알고 만든 물건이 이제는 창고를 막고 있다”라는 업자는, “이건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속도의 문제”라고 진단했습니다.

생산의 시계는 빨라졌지만, 소비의 시계는 멈춰 있었습니다.
제주의 경제는 지금, ‘움직이는 공장’과 ‘멈춘 시장’이 공존하는 구조가 됐습니다.
■ “관광은 폭주, 건설은 정지”
한국은행 제주본부의 3분기 ‘지역경제 모니터링 보고서’는 제주 경기를 “소폭 회복세”로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속도의 격차’가 선명합니다.
내국인 관광객은 1년 만에 증가로 전환(+1.1%)했고, 세부적으로 제주시내권 롯데관광개발이 운영하는 복합리조트 ‘드림타워’의 카지노 매출은 전년 대비 72.1% 폭등세를 기록했습니다.

레저·스포츠 목적 관광객도 14.3% 늘었습니다.
숙박·음식·레저업이 경제를 끌어올리는 모양새입니다.
반면, 건설은 정지했습니다.
착공면적 –31.8%, SOC 예산 –63.0%, 미분양 2,621호.
주거용 착공은 75% 가까이 줄었고, 상업용 공실률은 16.5%로 전국(10.5%) 대비 약 1.6배에 달했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김모(42)씨는 “공항 근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현장은 불 꺼진 지 오래”라며, “통계에선 회복이라지만, 여기선 한참 전부터 ‘정전’”이라고 말했습니다.
‘회복’이라는 단어 아래, 한쪽은 질주하고 한쪽은 멈춰 있었습니다.
제주의 경제가 어긋난 속도로 흘러가기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 “빠른 산업이 끌고, 느린 산업이 버틴다”
관광은 흔히 제주의 성장엔진이라 말합니다.
그렇지만 그 속도는 점점 더 ‘단기 체류형’으로 바뀌었습니다.
숙박업과 카지노는 성장하지만, 도심 소매업은 여전히 코로나 이전 매출의 70%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지역 내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모(47)씨는 “요즘 손님은 ‘머무는 소비’가 아니라 ‘지나가는 소비’”라면서, “한꺼번에 몰려온다고 해도 그때뿐, 체류 시간이 줄면서 번화가인데도 매출은 크지 않다”고 전했습니다.
반대로 건설과 제조는 느리지만, 그 속도 속에 일자리와 생활의 뼈대가 있습니다.
이 산업이 멈추자, 섬의 체온이 함께 떨어졌습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 제주는 돈이 도는 곳과 모이는 곳이 다르다”며, “공항 주변은 과열됐는데, 도심은 식었다”라고 분석했습니다.
빠른 산업이 섬을 끌고, 느린 산업이 섬을 버티는 구조.
지금은 그 균형점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 “그래프는 오르는데, 사람의 시간은 서 있다”
한국은행 제주본부는 이번 보고서에서 “관광 중심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건설 부진이 지속돼 산업 간 온도차가 크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이건 단순히 온도차로 치부할 문제가 아닙니다.
시간축이 어긋난 경제, 즉 산업별 시계가 따로 도는 구조입니다.
공항과 리조트는 오고가는 발길로 분주하지만, 현장은 멈춰 있고, 소비의 체감은 식었습니다.
그래프는 오르는데, 사람의 시간은 서 있습니다.

■ 섬의 시계는 누구에게 맞춰져 있나
제주의 문제는 성장률이 아니라 속도입니다.
같은 섬 안에서도 산업의 시계는 따로 돌고, 그 틈에서 사람의 리듬이 흔들립니다.
이제 제주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지금 제주의 경제는 누구의 속도에 맞춰 움직이고 있는가.”
다음 편에서는 이 속도 차가 만들어낸 결과.
쌓인 재고, 멈춘 소비, 피로해진 삶의 리듬을 다룹니다.
‘정체의 시간’이 된 제주의 현실을 기록합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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