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아의 부활: 스마트폰 패배자에서 AI 슈퍼사이클 승자로[딥다이브]
오라클, 델, IBM. 한물간 ‘왕년의 스타’ 같던 미국의 오래된 IT 대기업들이 요즘 인공지능(AI) 관련 기업으로 재평가되는 분위기이죠. 그 대열에 합류하려는 유럽 통신 대기업이 있습니다. 핀란드 노키아(Nok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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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는 10년 만에 최고치
10월 28일 핀란드 헬싱키거래소에서 노키아 주가가 20% 넘게 급등했습니다. 주가는 2016년 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죠. 잠잠했던 노키아 주가의 폭등을 이끈 건 엔비디아가 노키아에 10억 달러(1조4300억원)어치 지분 투자를 한다는 발표였습니다. 이 투자로 엔비디아는 노키아의 2대 주주(지분율 2.9%)로 올라서게 되죠.

아니, 노키아가 언제부터 그런 기업이 됐느냐고요? 11년 전, 그러니까 2014년 노키아 휴대전화 사업부가 마이크로소프트(MS)에 팔리던 시점부터 변화가 시작됐는데요.
대변신 이야기에 앞서, 그 이전에 노키아가 망한 스토리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핀란드 전설적 산업의 종말
사실 노키아의 몰락은 워낙 유명한 얘기라서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마치 공룡의 멸종 같은 이야기이죠.
한때 전 세계를 주름잡았던 ‘휴대전화의 제왕’ 노키아. 2007년 애플의 아이폰 출시와 함께 스마트폰 시대가 열렸지만, ‘스마트폰은 틈새 상품’이란 오판에 초기엔 외면했고요. 뒤늦게 2009년 ‘아이폰 킬러’랍시고 출시한 신제품 ‘N97’은 노키아 소프트웨어의 총체적 부실을 드러냅니다.

2011년 2월, 엘롭 CEO는 직원 대상 비공개 행사에서 그 유명한 ‘불타는 플랫폼’ 연설을 합니다.
“저는 우리가 불타는 플랫폼 위에 서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애플은 시장 판도를 바꿨고, 오늘날 애플은 고급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드로이드가 있습니다. 심비안은 북미 같은 주요 시장에선 경쟁력이 부족합니다. 기기 경쟁은 이제 생태계 경쟁으로 바뀌었습니다. 노키아, 우리 플랫폼이 불타고 있어요!”
노키아가 절체절명 위기에 처했다며 절박감을 강조한 극적인 연설이었는데요. 이 내용이 언론에 새어나가면서 투자자들은 화들짝 놀랐고요(‘뭐? 그 정도로 심각했어?’라는 반응). 며칠 뒤, 엘롭 CEO가 충격적인 대책을 발표했죠. 바로 MS와의 전략적 제휴. 노키아가 MS의 윈도우 OS를 채택하기로 한 겁니다. 기존 심비안 OS는 완전히 포기하고 말이죠. 그리고 이때부터 노키아는 진짜로 불길에 휩싸이게 됩니다.
노키아와 MS가 공동 개발한 윈도우폰 ‘루미아’는 처절하게 실패했습니다. 윈도우 모바일 OS는 독특한 UI 때문에 사용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고요. 무엇보다 윈도우 생태계가 형편없었거든요. 앱을 만들 개발자를 전혀 끌어들이지 못했습니다.

2014년 4월 노키아는 결국 막대한 적자를 기록한 휴대전화 제조 사업에서 손을 뗍니다. 사업부 전체를 MS에 72억 달러에 팔아넘겼죠. MS에서 디바이스그룹을 이끌게 된 부사장은? 노키아에서 자리를 옮긴 스티븐 엘롭이었습니다.
물론 그도 오래가진 못했어요. 이듬해 MS가 휴대전화 사업 철수를 결정하면서 엘롭은 MS에서도 해고됐는데요. 엘롭 CEO 시절 노키아가 어떻게 망해갔는지를 파헤친 핀란드 책 ‘오퍼레이션 엘롭(Operation Elop)’은 이렇게 일갈합니다. “스티븐 엘롭은 세계 최악의 CEO 중 한 명이었다.”
엘롭 CEO의 임기 동안 노키아 시가 총액은 295억 유로에서 111억 유로로 추락했고, 누적 적자는 49억 유로에 달했고, 직원 2만명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무엇보다 전설적인 핀란드의 휴대전화 산업은 종말을 맞이했죠.
5G 선점 위한 과감한 투자
노키아 이야기는 보통 여기에서 끝내는 경우가 많은데요.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입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2014년 엘롭의 뒤를 이어 취임한 라지브 수리 CEO이죠.

알카텔-루슨트가 좀 생소한가요. 그래도 이건 많이 들어봤을 겁니다. 벨연구소(Bell Labs). 1925년 미국에서 설립된 벨연구소는 지난 100년 동안 소속 연구원이 받은 노벨상만 10개일 정도로 기술 혁신의 상징과 같은 곳인데요. AT&T를 거쳐 알카텔-루슨트가 소유했던 벨연구소가 노키아로 넘어갑니다. 벨연구소의 엄청난 특허(약 3만개)도 함께 말이죠.

아니요. 그 정반대였습니다. 왜? 그의 장담과 달리 5G 시장이 그렇게 금세 열리지 않았거든요. 5G 시장의 성장은 예상보다 더디고 지지부진했습니다.
또 노키아가 알카텔-루슨트를 인수하며 광통신과 고정 광대역 네트워크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게 된 건 좋았는데요. 두 기업의 통합 작업은 쉽진 않았고요. 그 과정에서 원래 주력이었던 모바일 시장(이동통신 기지국 등) 점유율을 경쟁사(에릭슨, 화웨이)에 빼앗기게 됩니다.
주가는 뚝뚝 떨어졌고요. 투자자들은 5G 연구개발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배당금이 줄어든다며 경영진을 원망했죠. 결국 2020년 라지브 수리 CEO는 물러납니다.
적자의 늪에서 죽어갔던 노키아가 되살아나긴 했지만, 다시 도약하기까진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의 사임을 전하며 당시 언론은 이렇게 썼죠. “5G 성장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수리의 예측은 틀린 것으로 판명됐다.”
데이터센터와 6G로 다시 뜬다
통신 장비 시장은 오랫동안 지루했습니다. 대체로 금리의 오르내림에 따라 고객 수요가 줄었다 늘었다 할 뿐, 별로 재미없는 시장인데요.
그런데 분위기가 달라질 조짐입니다. 일단 노키아의 올해 3분기 실적이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었습니다(순 매출 12% 성장). 올해 4월 취임한 저스틴 호타드 CEO는 CNBC 인터뷰에서 노키아가 “AI 슈퍼사이클”에 올라탔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자고로 데이터센터 내부 서버 간 통신엔 구리선보다 빠르고 안정적인 광섬유 통신이 필수인 법. 광통신 장비 분야에서 중국 화웨이의 뒤를 잇는 기업이 노키아입니다. 올해 초 미국 경쟁사 인피네라를 인수하며 2위로 올라섰죠. 즉, 만약 미국과 유럽의 데이터센터가 중국산 장비를 피하고 싶다면, 선택지는 노키아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AI와 6G로의 전환으로 미국이 다시 통신 기술에서 승리하게 할 겁니다. 이를 실현할 훌륭한 파트너를 확보했죠. 노키아.”
왜 엔비디아가 이번에 노키아에 10억 달러를 투자했는지 아시겠죠. 십여 년 전 사망선고를 받았던 노키아는 기어이 살아남았고, 새로운 기회를 잡았습니다.
사실 160년 역사 속에서 노키아는 줄곧 변신을 이어왔습니다. 제지공장에서 고무 회사로, 이후 휴대전화 제조사에서 다시 통신장비 업체로 탈바꿈했죠. 이제 AI 인프라에 미래를 건 노키아. 그 베팅이 이번엔 통할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By.딥다이브
한번 망한 기업을 다시 되살린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그렇기에 왠지 노키아가 반전 드라마를 써주길 기대하게 되는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멸종된 공룡인 줄 알았던 노키아가 AI 붐을 타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엔비디아가 10억 달러의 지분 투자를 결정했죠. AI 시대에 꼭 필요한 통신 인프라를 제공하는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휴대전화 시장의 절대강자였던 노키아. 2007년 애플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내리막을 탑니다. MS 출신 스티븐 엘롭 CEO는 노키아가 ‘불타는 플랫폼’이라며 MS와의 제휴를 밀어붙였고요.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2014년 노키아는 휴대전화 사업을 접어야 했죠.
-라지브 수리 CEO는 노키아의 살길이 5G에 있다고 봤습니다. 경쟁사 알카텔-루슨트를 인수해 벨연구소의 기술력을 흡수했죠. 덕분에 5G 기술을 선도할 수 있게 됐고요. 하지만 시장 성장은 더뎠고,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AI 시대가 되면서 그동안 노키아가 쌓아둔 기술 잠재력이 발휘됩니다. 급증하는 데이터센터 덕을 톡톡히 보기 시작했고요. 2030년 6G 상용화라는 미래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노키아는 AI 슈퍼사이클을 제대로 타고 다시 승자가 될 수 있을까요.
*이 기사는 10월 3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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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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