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에 십자가 대신 창문…'너머를 보라' 작은 교회 큰 울림

2025. 11. 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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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익의 인생 공간] 오스트리아 잘겐로이테 교회
오스트리아 잘겐로이테 교회 내부. 정면에 성모 마리아상을 두는 대신, 창을 내어 나무를 바라 보게 만들었다. [사진 bernardobader.com]
차를 몰고 벌써 세 바퀴째 주변을 빙빙 돌고 있는데 진입로를 찾을 수 없었다.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크룸바흐. 이 마을의 교회 ‘잘겐로이테(Kapelle Salgenreute)’를 찾아 두 시간이나 달려왔다. 드디어 저 멀리 언덕 위에 서 있는 교회를 발견했지만 가까이 다가갈 진입로가 보이지 않았다. 마침 근처에서 일하던 농부 한 분에게 길을 물었더니 이런 철학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차에서 내려요. 그러면 길이 보일 거예요.”

좌석 24개…마을 사람 하나로 엮은 교회
이 무슨 선문답인가, 의아해하며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앞에 길이 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길이 아니었다. 먼저 이 교회를 찾아온 누군가가 풀을 밟고 간 흔적이 남아 있었고, 그것이 하나의 길이 되어 있었다. 필자 역시 교회로 걸어가며 다음에 올 사람을 위해 길을 내주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길을 만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건축가는 일부러 진입로 없는 교회를 만든 것이 아닐까.

마음을 움직인 인생 공간 중에는 종교 건축이 많다. 특정 신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 공간에 가면 속세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깨우침을 하나 얻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 틈으로 비추는 햇빛을 보며 삶의 진리를 깨닫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로 치솟은 원형의 돔, 그리고 거기서 한 줄기 내려오는 장엄한 빛을 보고 있으면 우리 마음속에는 어느새 일상에선 깨닫지 못했던 감정이 살아난다. 자신에 대한 겸손, 타인에 대한 배려 같은 감정 말이다.

세속에서 잠시 벗어나 신성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공간이 생추어리(sanctuary)다. 안식처 또는 피난처라는 뜻인데, 그저 싫은 것을 피한다는 소극적 의미가 아니다. 안도감을 가지면서도 정신을 깨어있게 만드는 곳이 생추어리다.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책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지금, 종교 신자의 비율은 줄어들고 있지만 종교가 가르쳐주는 덕목이 필요한 사람은 훨씬 많아진 시대라고. 종교 의례에 기대지 않고 이타심, 공동체 정신, 자아성찰의 장점을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일. 알랭 드 보통은 건축과 공간이 그 역할을 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무신론자라 하더라도 내면에 경종을 울려주는 생추어리 한 곳을 알고 있다면 삶의 덕목을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베르나르도 바더는 어느 날 설계 의뢰를 받는다. 마을에 200년 된 교회가 낡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으니 새로운 교회를 지어달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불과 2000명 남짓 거주하는 이 작은 마을에 교회를 지을 충분한 예산이 없다는 점이었다. 바더는 마을 주민이 직접 짓자는 제안을 했다. 자신은 공사장의 리더를 맡았다. 전문가가 아닌 마을 사람들의 힘으로 교회를 지으려면 복잡한 건축물은 곤란했다. 지역의 헛간이나 창고를 짓는 평범한 방식으로, 지역 재료인 돌과 나무만 사용하기로 했다.

오스트리아 알프스 언덕 위의 작은 교회 잘겐로이테. [사진 bernardobader.com]
주민들은 땅을 다지고 기둥을 세웠다. 교회의 종은 마을의 오래된 장인에게 의뢰했다. 건설 과정은 마을 사람들을 한 마음으로 모으는 구실을 했다. 함께 먹고 마시며 교회를 짓고, 완성된 교회에서 첫 기도를 함께 올렸다. 마을 사람들에게 언덕 위 교회는 단순한 종교 공간 이상의 의미가 됐다. 이웃을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공동체의 생추어리가 된 것이다.

건축가라면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 색다른 작품을 남기고 싶은 욕심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베르나르도 바더는 건축가로서의 욕심을 버리고 어찌 보면 평범해 보이는 교회를 지었다. 그랬더니 오히려 큰 울림을 주는 공간이 생겼다. 때로는 자신의 주장과 욕심을 내려놓고 이웃을 위해 일 하라는 것. 이 교회가 주는 또 하나의 메시지다.

[일러스트 조성익]
이제 교회 안으로 들어가 보자. 육중한 철문을 열고 들어가니 크림처럼 부드러운 색깔의 나무로 둘러싸인 공간이 등장했다. 뾰족한 천장은 엄숙하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교회를 들어섰을 때 정면에 보이는 것은? 그렇다, 십자가다. 성모 마리아상이 서 있는 경우도 있다. 여기도 그랬다. 시선의 끝에 성모 마리아상이 있긴 있는데, 문제는 이 중요한 것을 중앙에 두지 않고 한켠으로 치워 둔 것이다. 정면에는 생뚱맞게도 유리 창문을 달아두었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흔하디흔한 나무 한 그루였다. 왜 이런 설계를 한 것일까. 건축가는 자신의 작업에 시시콜콜 해설을 달지 않는데, 이곳에 온 사람들이 스스로 답을 찾으라는 뜻이다. 아래 있는 필자의 스케치를 보면서 잠시 그 이유를 생각해보시길.

잘겐로이테의 나무 의자에 앉아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창문 밖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바라보고, 장인이 만든 손잡이를 만져보았다. 바쁘게 여행지를 찍고 다니다가 오랜만에 마음이 평안해졌다. 이런 교회를 지은 마을, 크룸바흐와 마을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예정에 없었지만 마을에 하루 묵으며 내일 한 번 더 교회를 찾아오기로 일정을 바꿨다. 마을 사람에게 호텔을 추천받았는데, 교회 설계자 베르나르도 바더가 디자인한 호텔이었다. 마을과의 우연한 인연을 맺어준 공간. 이런 생추어리가 우리 동네에도 하나 있다면 자주 갈 텐데.

서울 아현동에 있는 동방 정교회 소속인 성 니콜라스 대성당. 오래된 나무가 중정에 그늘을 드리운다. [사진 조성익]
그리고 찾아냈다. 서울 아현동에는 1968년에 지은 성 니콜라스 대성당이 있다. 50년 넘는 세월 동안 복잡한 주거지 한가운데 꼿꼿이 서서 생추어리가 필요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 중정으로 들어설 때 만나는 조용한 첫인상이 좋은 건물이다. 건물로 둘러싸인 작은 마당은 복잡한 속세를 벗어나 성지로 들어가는 문지방이 된다. 니콜라스 성인이 내려다보는 대성당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진한 자줏빛 바닥 위로 부드러운 빛이 쏟아진다. 성 니콜라스 대성당은 국내에 보기 드문 정사각형 십자가 모양의 공간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만나는 교회는 중심부까지 긴 복도를 걸어 들어가는 ‘바실리카 형’ 교회다. 하지만 성 니콜라스 대성당에는 이런 복도가 없다. 들어서자마자 둥근 돔 아래 서게 돼 단숨에 ‘와’ 하는 감탄이 나온다. 돔 아래 서서 자연스럽게 시선을 하늘로 향하면 성인(聖人)들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위대한 성인들의 초상화도 좋지만 필자의 시선을 끈 것은 한쪽 벽에 그려진 벽화였다. 백인, 흑인, 세계의 인종들이 섞인 군상 속에 치마저고리를 입은 조선인 모녀가 서 있는 그림이다. 내 가족, 내 민족만 챙길 것이 아니라 세계를 하나의 이웃으로 생각하며 살라는 메시지다. 성당을 한 바퀴 둘러본 후, 중정 한켠에 있는 오래된 나무 아래 앉아 오후 시간을 보냈다.

아현동 57년 된 성당 벽화엔 조선인 모녀
위에서 낸 성모 마리아와 창문 퀴즈의 답을 찾으셨는지. 정답은 없지만, 이런 의도가 아닐까? 성모 마리아 뿐만 아니라 교회 너머의 세상을 향해 기도하라. 인간이 만든 상징물에 그치지 말고 우주의 섭리가 깃든 자연에서 자신의 신을 찾아라.

잘겐로이테에서 기억해야할 것은 이 작은 공간 하나가 찾아온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농부에게 진입로를 묻고, 서로에게 길을 내주고, 마을 공동체의 추억을 만들며, 동네에 묵어가도록 권유하는 매개체 말이다. 잘겐로이테는 이 시대의 종교 건축이 단순히 신을 향한 성소를 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고 이웃을 발견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신은 믿지 않으면서 공간만 이용하려 한다고? 신의 뜻은 고정되어 있지만 그것을 인간에게 가르치는 방법은 시대와 함께 변해왔다. 마을의 생추어리를 지어 비종교인들에게 삶을 성찰해볼 기회를 주는 것은 이 시대의 종교가 할 수 있는 큰 가르침이다. 누군가를 위해 풀을 밟아 길을 내주는 일이다.

조성익 건축가. 홍익대 교수이자 TRU 건축사무소의 대표 건축가다. 맹그로브 숭인 코리빙으로 한국 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공간과 삶, 그리고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책 『건축가의 공간 일기』를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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