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만의 소수여당 다카이치, 아베와 비슷한 듯 다른 이유
[오누키의 재팬 워치] ‘일본 첫 여성 총리’ 다카이치 정권 분석
![지난 21일 일본 도쿄 총리실에서 연설하고 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총리. [AP=연합뉴스]](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01/joongangsunday/20251101000314462gaxm.jpg)
별명 아베 후계자, 아베 외교·경제노선 계승
다카이치 총리의 외교적 기본 방침은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주창했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이다. 아베 전 총리의 계승자로서 그의 노선을 따르고 있다. 지난달 28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회담에서도 아베 전 총리와의 친밀함을 내세우며 신뢰 관계를 구축하려 힘썼다. 또한,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선 강력한 의지를 보이면서도 지난달 17~19일 추계 예대제(가을 제례) 참배는 미뤄뒀다. 한국 및 중국과의 관계를 배려한 것이다. 이러한 현실주의적 외교 접근법도 아베 전 총리에게 배웠다.
지난달 24일,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후 첫 국회 연설에서도 아베 전 총리가 즐겨 쓴 ‘강한 (일본) 경제’라는 단어를 여러 번 반복했다. 자신이 ‘아베 후계자’라고 내세우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다카이치 정권은 아베 정권의 2탄이냐’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시대 변화와 여러 요소들을 미루어 볼 때, 필자는 ‘닮은 듯 다르다’는 표현이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모두 참여해 열심히 하지 않으면 일으켜 세울 수 없습니다. 저 자신도 워라밸이라는 말을 버리겠습니다.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하겠습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4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된 직후 열린 양원 의원총회 인사말에서 강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밤새도록 SNS 등에서 찬반 논란이 일었다. 업무량을 조절하고 가정 등 사생활을 충실하게 하자는 아베 전 총리의 ‘일하는 방식 개혁’과 결별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져서다.
아베 전 총리는 한국에서 ‘극우적’ 역사관으로 알려졌지만, 일본 국내에선 사회·복지 분야에서 연정을 구성했던 공명당이나 야당이 주장하는 중도적 정책을 수용한 것으로 인식된다. 그중 하나가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 등을 막기 위한 노동개혁이다. 2019년 4월 시행된 ‘일하는 방식 개혁 관련법’은 일본에서 처음으로 초과근무 시간의 상한을 지정해 월 45시간, 연 360시간만 추가로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정책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지지를 얻었고, 남성들이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흐름으로도 이어졌다.
다카이치 총리는 논란을 의식한 듯 다음날(5일) 기자들을 만나 “여러분은 워라밸을 소중히 해주세요. 저는 지금 열심히 일하겠지만… 오늘은 일요일이네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전날 발언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열심히 일하겠다는 결의를 보였을 뿐이라며 진화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다카이치 총리는 21일 정권 출범 직후, 우에노 겐이치로 후생노동상에게 “심신의 건강 유지와 근로자의 선택을 전제로 하되, 노동시간 규제 완화를 검토하라”고 지시했었다. 저출산 등으로 인력난이 심화하면서 기업에서 규제 완화를 소리 높여 요구하는데 대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역시 다카이치 총리는 국민에게 노동 강화를 요구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했다. 여론의 흐름을 재빠르게 읽는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사흘 후인 24일 “도쿄도는 ‘라이프(Life)가 먼저다’라는 의미에서 ‘라이프·워크·밸런스(라워밸)’로 바꾸었다”고 한 일도 있다. 다카이치 총리와의 차별화였다.
반면, 다카이치 총리의 방침에 찬성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SNS 등에서는 “워라밸 같은 걸 말하면서 성공한 사람은 없다” “워라밸은 개인의 성장 기회를 빼앗고 사회 전체를 약화시킨다”는 게시물이 다수 올라왔다.

![다카이치 총리(첫번째 줄 가운데)와 내각 구성원들. 다양성을 중시한 아베와 달리, 다카이치 총리가 임명한 여성 각료는 2명에 그쳤다. [AP=연합뉴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01/joongangsunday/20251101000317013kptr.jpg)
아베 전 총리는 2019년 10월 국회 연설에서 “새로운 시대의 일본에 요구되는 것은 다양성이다. 젊은이도 노인도, 여성도 남성도, 누구나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1억 총활약 사회’를 만들자”고 말하며 전담 장관을 두었다. 이에 비해 다카이치 총리의 국회 연설에는 ‘다양성’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일본유신회와 체결한 연립정권 합의서에서는 선택적 부부 별성(別姓)제도(결혼 시 부부가 다른 성을 가질 수 있는 제도)에 반대 입장도 명확히 했다.
다카이치 총리와 아베 전 총리의 차이엔 정치적 기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자민당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확보, 안정적으로 집권했다. 보수층의 압도적 지지를 얻었고, 국민 사이에서는 민주당 정권(2009~2012년)이 실패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야당이 약체화되면서, 7년 8개월 동안 ‘아베 1강(一強)’ 체제가 이어졌다. 중도적인 정책도 받아들일 수 있는 배경이었다.
이에 비해 다카이치 정권은 1955년 자민당 창당 이래 처음으로,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 모두 과반에 미치지 못하는 소수 여당 신세다. 물가 상승으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외국인이 급증하는 가운데 기시다 후미오,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의 온건 보수 노선이 4년간 이어지자 보수 핵심 지지층이 이탈했다. 오른쪽에서도 왼쪽에서도 협공받는 처지다.
엔도 겐 도쿄대 교수는 다카이치 정권에 대해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처럼 집권 전 강경한 주장과는 달리 중도 노선을 걷는 것이 최선의 시나리오”라면서도 “중장기적으로는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정치가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더 높다”고 내다봤다. 그는 “유럽도 경제 격차 확대와 이민 증가로 인해 기존의 양대 정당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면서 다당화가 진행됐다”며 “일본의 향후 진로는 영국이 EU 탈퇴(브렉시트)에 이르는 과정이 참고될 것”이라고 했다.
일각 70% 지지율 기반 중의원 해산 전망도
다카이치 정권이 중도 대신 오른쪽을 공략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더 오른쪽의 참정당(参政党)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약진하면서 “자민당이 참정당의 표를 빼앗기 위해 우경화하고, 온건보수층과 분열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다.


오누키 도모코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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