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서 ‘고려 왕실 청자’…“충렬왕 행궁 터 가능성”
[KBS 창원] [앵커]
창원 도심에서 발굴된 고려시대 유적지가 단순한 절터가 아닌 왕이 머물던 행궁 터였을 가능성이 제기됐습니다.
특히, 왕실 상징이 새겨진 희귀 청자가 발견되면서, 유적지의 역사적 가치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보도에 이대완 기자입니다.
[리포트]
창원 도심의 한 아파트 공영주차장입니다.
3년 전 확장 공사 도중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 유구가 대거 쏟아졌습니다.
부분 조사만으로도 명문 기와와 청자 대접 등 64점이 발굴됐는데, 가장 눈길을 끈 건 '청자 구룡형 연적'입니다.
머리 부분이 파손됐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이 단 한 점만 소장하고 있는 국내 유일 '청자 구룡형 연적' 형태와 문양이 거의 동일합니다.
'구룡'은 고려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전설 속 동물!
등껍질 전체에는 '왕(王)' 자가 촘촘히 새겨져 있습니다.
이 유적의 주인이 왕실이나 최상위 지배층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김윤희/국가유산청 문화유산감정위원 : "이 연적은 왕실의 권위와 신성한 정수와 학문의 연속성이란 두 가지 상징적 의도를 결합한 형태로 문방으로서의 정체성을 극대화한 조형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고려 최변방인 창원에서 왕실 물건이 나온 걸까?
학계는 문헌 기록을 근거로, 이곳이 고려 충렬왕의 행궁 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1281년, 여·몽 연합군의 2차 일본 원정을 앞두고 충렬왕이 지금의 의창구 일대에서 약 3개월 머물렀다는 기록이 여러 사서에서 확인되기 때문입니다.
[천신우/해동문화유산연구원장 : "(창원은) 군사 도시로서의 면모를 그 당시에 갖췄을 것으로 추정이 되고요. 충렬왕이 3개월간 머물렀던 군사 독려 기간 고려의 임시 수도와 같은 역할도 충분히 수행하였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발굴은 일부 조사 뒤 다시 흙을 덮는 방식으로 마무리되면서, 유적지의 정확한 성격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진 상태, 학계는 유적의 정확한 성격을 규명하기 위해서 추가 발굴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대완입니다.
촬영기자:김대현/그래픽:박부민
이대완 기자 (bigbow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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