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하학’ 웃는 바흐·오케스트라 케이크 칼…기상천외 ‘굿즈의 세계’ [IP비즈니스]

고승희 2025. 10. 31.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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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B급 스티커·케이크 칼·펜 트레이
티셔츠·에코백은 기본 기상천외 굿즈 등장
공연 굿즈 기본은 정체성·활용성·친환경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만든 바흐 스티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바흐가 익살맞은 표정으로 웃는다. 웃음소리마저 음악 같다. ‘바하학’, 슬픈 일이 있을 땐 ‘바흐흑’ 하며 침울해진다. 그러더니 한 마디, “외계인 침공 시 클래식 안 듣는 사람이 먼저 잡아먹힌다”는 경고.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음악의 아버지’의 축하 인사가 담긴 스티커를 만들었다. 국립심포니관계자는 “아이디어를 내고 일주일 만에 제작한 굿즈”라고 귀띔했다.

티셔츠와 에코백은 기본, 엄숙하다고만 생각했던 클래식 음악에 B급 정서를 더해 기발한 스티커도 만들었다. 도통 ‘이런 물건이 왜 나왔을까’ 싶은 굿즈까지 등장한다.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전략이 아닌 것이 없다. 굿즈의 일대 전환이라 할 만하다.

정체성·활용 가능성·친환경…공연 굿즈는 이렇게

‘넘사벽’ 스타 마케팅, 로고 하나로 정체성 살린 ‘정석’ 굿즈까지….

지난달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서울아트굿즈페스티벌. 50여개의 공연기획사, 영화사, 출판사를 비롯한 예술단체와 브랜드가 총출동했다. 세종문화회관이 국내 최초로 기획한 ‘굿즈’ 페스티벌은 지난달 13~14일 이틀간 무려 2만명의 방문객이 찾아 지금까지도 회자하는 행사다.

이미 탄탄한 팬덤이 구축된 뮤지컬계에선 작품마다 스티커, 티셔츠, 볼펜, 에코백, 포토카드 등 다양한 굿즈를 팔고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서울시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등 국공립은 물론 민간 예술단체까지 나서 공연장 밖에서 굿즈를 선보인다.

이틀간의 페스티벌 중 13일엔 공연기획사 EMK뮤지컬컴퍼니 제작 ‘팬텀’에 출연한 가수 박효신의 굿즈가, 14일엔 서울시발레단의 티셔츠가 가장 많이 팔렸다. 강력한 티켓 파워를 지닌 스타를 활용한 굿즈가 인기를 끄는 것은 인지상정인데, 2일 차 매출 1위에 오른 서울시발레단의 티셔츠는 의외라는 반응이다. 서울시발레단은 지난해 창단돼 역사가 짧다보니 이미 강력한 팬덤을 확보한 국립발레단, 유니버셜발레단과 비교하면 약체일 수밖에 없어서다.

서울시발레단 굿즈 [세종문화회관 제공]

인기를 끌었던 서울시발레단 티셔츠는 지극히 심플한 디자인의 제품이다. 기본형 티셔츠에 영어로 서울시발레단(Seoul Metropolitan Ballet)이라고 적혔을 뿐이다. 단순한 디자인으로 서울시발레단을 부각하되, 기본에서 ‘가지치기’하며 변형할 수 있도록 한 제품이다. 서울시발레단 관계자는 “갓 창단한 단체이기에 발레단의 정체성을 담는 것을 가장 고려했다”면서 “‘컨템퍼러리’의 세련되고 중성적인 이미지를 담으면서도 그 속에서도 ‘발레’ 자체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나마 눈에 띄는 건 티셔츠의 활용도가 높다는 점이었다. 서울시발레단 관계자는 “발레 공연의 주요 관객층과 굿즈 구매 타킷층을 염두해 일차적으로 취미 발레를 하는 사람들이 운동할 때 무용수들처럼 웜업용으로 입기 좋은 재질과 디자인을 고려했다”며 “그러면서도 요즘 트렌드인 ‘애슬레저’(가벼운 운동을 하기에 적합하면서 일상복으로도 입을 수 있는 옷) 티셔츠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서울시발레단의 굿즈인 티셔츠는 무용수들처럼 웜업용으로 입기 좋은 재질과 디자인을 고려해 제작됐다. 실제로 발레단 단원들은 연습 때마다 착용 중이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공연계 굿즈에서 눈에 띄는 트렌드는 ‘가치 소비’다. 친환경 소재와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 ‘착한 굿즈’로 MZ(밀레니얼+Z)세대가 중요시하는 ‘소비 트렌드’를 겨냥했다.

서울시발레단은 수건부터 티셔츠 굿즈까지 ‘친환경’을 고려해 오가닉 소재를 사용했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에선 2022년부터 업사이클링 굿즈를 선보이고 있다. 폐현수막 220㎏, 폐악보 1000장, 폐플라스틱 54㎏ 등을 재활용해 스마트폰 스트링백, 카드지갑, 친환경 우산, 키링 등을 제작했다. 이런 시도는 국내 오케스트라 최초다.

성과는 공연장 밖에서도 확인됐다. 서울아트굿즈페스티벌 둘째 날에 마켓 오픈 50분 만에 ‘새활용 악보 지갑’이 모조리 팔려나갔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관계자는 “일부 관객은 전날 굿즈 판매 소식을 듣고 현장을 찾아왔고, 3년 전 전 코리안심포니 시절의 악보 지갑을 가지고 오신 분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굿즈 제작 초창기부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차원의 공익적 접근을 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면서 “공연 현수막이나 연습 악보를 새활용한 굿즈를 통해,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했던 관객들을 다시 연결하는 경험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2000만원 들인 ‘일무’ 굿즈”…브랜드 알리고, 일상에 스미고

공연계에서도 굿즈 제작은 필수 요건이 됐다. 굿즈는 단지 기념품에 그치지 않고, 브랜드를 알리는 첫걸음이자 관객에게 공연의 기억을 남기고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이다. 굿즈를 소비하는 입장에서도 문화예술 굿즈는 일상에서의 활용도가 높다는 이점이 있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만든 폐악보 카드 지갑 [세종문화회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공연계 관계자들은 “굿즈는 관객이 무대 위의 감동과 경험을 오랫동안 간직하면서도 공연과 일상을 이어주는 매개체”라고 입을 모은다.

예술단체들이 부족한 예산에도 다양한 굿즈를 내놓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세종문화회관 산하 단체인 서울시무용단은 대표 공연 ‘일무’를 무대에 올리는 기간 동안 새로 제작한 굿즈를 선보였다. 세종문화회관과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의 협업으로 진행됐다.

뮤지컬계에서 공연 굿즈는 흔하지만, 한국무용이 자체 굿즈를 개발하는 것은 무모한 도전에 가깝다. 세종문화회관이 이러한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일무’라는 콘텐츠의 브랜드 파워가 커졌기 때문이다. ‘일무’는 디자이너 정구호가 연출을 맡고, 안무가 정혜진·김성훈이 함께 한 전통 버전의 ‘메가 크루’로, 세종문화회관을 상징하는 ‘슈퍼 IP(지식재산권)’다. 나흘간의 공연에서 3000석 대극장의 티켓을 삽시간에 팔아치운 작품인 만큼 세종문화회관은 이번에 처음으로 굿즈 제작을 시도했다.

2000만원의 비용을 들여 온지음과 협업한 굿즈는 ‘일무’ 중 문무를 출 때 사용하는 ‘적’의 장식 요소를 모티프로 한 가방, 주머니, 구슬 장식 등의 제품을 만들었다. 수량은 적다. 세종문화회관 관계자는 “수익 창출을 위한 제작이라기보다 서울시무용단과 작품을 관객들에게 더 많이 알리기 위해 품질에 집중했다”며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 정도로 투자한 비용만큼만 팔 수 있는 수량으로 제작해 목표는 달성했다”고 귀띔했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굿즈 펜트레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K-팝 업계나 뮤지컬계는 아티스트와 작품 자체로 다양성과 차별화를 만들지만, 공연 단체나 공연장의 입장에서 새로운 굿즈를 만들어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지난 몇 년 새 가장 눈에 띄는 예술단체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적어도 국내 공연계에선 ‘굿즈의 범주’를 넘어선 굿즈까지 만들고 있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관계자는 “일상에서 오케스트라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로 굿즈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클래식은 아직 어렵고 낯선 장르라, 더 많은 사람이 쉽고 편하고 재밌게 클래식을 접할 기회를 만들고 싶어 다양한 굿즈를 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최근 내놓는 굿즈마다 클래식 애호가 사이에서 화제다. 2022년 초콜릿 브랜드 아도르와 협업한 것을 시작으로 책상 위에 놓는 펜 트레이, 창단 40주년을 기념한 케이크 서버, 하루의 시작과 끝을 여닫는 ‘베스 플레이리스트’ 같은 굿즈를 만들었다. 장장 1~2개월의 기획 기간을 거쳐 6개월가량 제작에 돌입해야 완성되는 굿즈가 바로 펜 트레이와 케이크 서버였다. 일상용품을 연계한 굿즈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만든 케이크 서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국립심포니 관계자는 “국립심포니 굿즈의 출발점은 ‘유연함’”이라며 “발레, 오페라, 교향곡까지 아우르는 국심의 음악적 특성과 연결해, 음악이 흐르는 일상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일상의 클래식을 구현하며, 기념품의 차원을 넘어 클래식과 이상을 잇는 매개로 굿즈를 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예술 굿즈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K-팝 가수나 배우의 굿즈보다 실생활에서의 활용도가 높다. K-팝 업계에서 팬덤을 겨냥하면서도 각종 굿즈에 아티스트의 얼굴이나 그룹명을 노출하지 않고 라이프스타일 전체로 확장한 굿즈를 선보이는 것도 일상에서의 활용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세종문화회관은 문화예술 굿즈의 범용성을 겨냥해, 아예 공연장의 굿즈 제작을 위한 공모전도 열고 있다. 공연장의 건축과 역사, 정체성과 상징성을 담되 세종문화회관 산하 서울시예술단의 스토리텔링 요소를 반영해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굿즈 디자인을 찾고 있다.

관계자는 “세종문화회관을 브랜드화한 굿즈를 통해 문화적 경험과 추억을 확장하고, 공연장의 추억을 ‘소장 가능한 형태’로 전환하는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며 “관객이 일상에서도 세종문화회관에서의 예술적 경험을 이어갈 수 있게 하면서 재방문과 충성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 굿즈인 만큼 이곳을 찾는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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