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런베뮤 직원 “사람 아닌 매장 빛내줄 오브제였다”

이주빈 기자 2025. 10. 31. 16:1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직원들 “표정·말투·걸음걸이까지 회사 규제 받았다”
런던베이글뮤지엄 인스타그램 갈무리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직원은 사람이 아니라 매장을 빛내줄 오브제였어요.”

‘20대 직원 과로사 의혹’이 제기된 유명 베이커리 ‘런던베이글뮤지엄’ 한 지점에서 매장 관리자로 일했던 ㄱ씨는 30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런던베이글뮤지엄과 런던베이글뮤지엄 운영사인 엘비엠 관계사(아티스트베이커리, 아티스트컴플렉스, 레이어드, 하이웨스트 등)에서 근무했던 직원들 5명의 말을 종합하면, 이들은 표정, 말투, 걸음걸이 하나까지 회사의 규제를 받았다고 한다.

런던베이글뮤지엄 특유의 경쾌한 매장 분위기는 직원들의 업무 강도를 높이는 요인이었다. ㄱ씨는 “정아무개 이사는 ‘안녕하세요의 요 음을 더 높여서 외쳐라, 발걸음을 더 통통 튀게 걸어라, 손님에게 스몰토크를 걸어라’라고 요구했다”고 했다. ㄱ씨는 “이아무개 이사는 음료를 완성했을 때, 베이커리를 매대에 진열할 때, 수프 제조가 끝날 때 종소리를 5번 울리라고 지시했다. 종소리를 3번만 울렸다는 혼난 직원도 있었다고 들었다”고 했다.

이들은 외모 규제도 과도했다고 입을 모았다. ㄱ씨는 “‘이 이사가 런던에서 영감 받았다며 긴 머리 여성 직원의 경우 무조건 양갈래로 땋거나 묶은 머리를 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ㄴ씨는 “이 이사가 온다는 공지가 온 날이면 직원들은 화장을 고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이 이사의 남편인 또다른 이아무개 이사는 여성 직원들의 옆구리를 꼬집으며 살을 빼라는 압박을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엘비엠의 ‘과잉 관리’는 이뿐 아니다. ㄷ씨는 “‘이 이사는 흰옷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성실함’이 중요하다며 상·하의, 앞치마 모두 흰 옷을 입도록 했다. 식품을 다루는 데다가 바빠서 오염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조금이라도 오염이 생기면 본사 직원에게 경고받았다”고 했다. ㄱ씨는 “생리대를 교체할 시간도 없어서 흰 바지에 생리혈이 묻은 채 일하기도 했다”고 했다. ㄴ씨는 “지난 2023년 런던베이글뮤지엄 제주점 외부에서 웨이팅을 관리하는 직원들이 폭염으로 고통을 호소했으나, 이 이사가 에어컨을 두면 매장 외관을 해친다며 승인해 주지 않은 적도 있다”고 했다. ㄴ씨는 “결국 직원이 쓰러지자 외부용 코끼리 에어컨이 배치됐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런던베이글뮤지엄 안국점 모습.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직원들은 갖가지 이유로 시말서를 썼다. 이들 설명을 종합하면, 2번째 지각부터는 1분이라도 늦을 시 시말서를 써야 했다고 한다. 이 외 시말서 사유는 시재금 오류, 지시불이행, 베이글 누락, 오결제, 발주(오발주, 발주누락, 과발주) 등이다. 카카오톡 메시지를 제때 확인하지 못해도 시말서를 써야 했다고 한다. 이들은 카페 관련 단체대화방만 20개가 넘었다고 입을 모았다. 단체대화방 종류는 전직원방, 매장관리자방, 매출보고방, 굿즈요청방, 시시티브이방, 매장별 단톡방, 일일보고방, 발주담당자방, 유지보수방, 분실물방, 아침조회방, 컴플레인방 등이다. ㄷ씨는 “확인을 못 하고 업무를 놓치면 시말서를 써야 했다”고 말했다. 여러번 시말서를 쓰면 징계위원회가 열리고 감봉, 진급누락, 강등 등의 페널티를 받는다고 한다. 일정 기간 내 몇 번 이상 시말서를 쓰면 명절 상여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들은 연장근무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한겨레가 입수한 엘비엠의 ‘신규 직원 입사 가이드’를 보면, △개인의 업무 역량 부족으로 인해 예정된 시간 내 업무를 완료하지 못한 경우 △동료 대비 업무 처리 속도가 느려서 연장 근무한 경우 △자발적으로 출퇴근 시간 외 근로를 한 경우 등은 연장근로수당이 지급되지 않는다고 돼 있다. 장종수 노무사(직장갑질119 온라인노조 사무처장)은 “자의적 해석의 여지가 많아 보이는 조항일 뿐 아니라, 근로기준법은 원칙적으로 제공한 근로시간에 따른 임금 지급이 원칙”이라고 지적했다. 장 노무사는 “개인의 업무능력의 차가 있더라도 그건 사업주가 업무배정·훈련 등을 통해야 해결해야 할 일이지, 직원 개인에게 임금 차등을 통해 책임을 전가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엘비엠의 ‘신규 직원 입사 가이드’

‘연장근로수당이 지급되는 경우’에 속하더라도 본사 팀장의 승인이 없으면 수당을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ㄹ씨는 “매장이 너무 바빠 제시간에 마감 업무를 끝내지 못할 것 같아 연장근로가 필요한 경우, 이 상황을 본사 팀장에게 보고하고 허락받아야 근태관리 앱(원티드스페이스)에 올릴 수 있었다”고 했다. ㅁ씨는 “위생점검 조치로 인한 연장은 본사 측에서 ‘매장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벌’이라 표현하며 연장수당 신청 안 된다고 했다고 했다”고 말했다. ㄹ씨은 “본사에서 허락하지 않으면 무급으로 일하는 것”이라며 “매출이 낮다거나, 다른 직원들은 그냥 한다는 이유로 거절이 계속되다 보면 직원들도 자연스럽게 ‘이 정도는 허락을 못 받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애초에 연장근로 신청을 하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일하던 20대 노동자가 주 80시간에 가까운 노동에 시달리다 지난 7월 숨졌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엘비엠 쪽은 “고인의 13개월 동안 평균 주당 근로시간은 44.1시간으로 확인됐다”며 ‘과로사’라는 유족 쪽 주장을 부인한 바 있다. 퇴직자들은 이런 연장근로 관행 탓에 숨진 노동자도 인정받은 연장근로가 짧았을 수 있다고 봤다. ㅁ씨는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숨진 20대 노동자도 실제로는 장시간 근무를 했지만 공식 기록에는 그만큼 등록이 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ㄱ씨는 “연장이 잦은 매장의 경우 매출 대비 인건비가 높다며 승인받지 못한 적도 있다”고 했다.

이뿐 아니다. 이들은 회사의 수당제도가 최대한 돈을 적게 주는 식으로 설계돼 있었다고 말했다. 사전보고 여부와 상관없이 1분만 지각해도 15분치 시급이 깎였고 반면 연장근무는 15분 단위로만 인정됐다는 것이다. 한겨레가 입수한 ㄷ씨의 2024년 급여명세서를 보면, 근태공제에 ‘–2476원’이라고 적혀있다. ㄷ씨는 “1분 지각하면 15분치 시급이 깎이고, 16분 지각하면 30분치 시급이 깎였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연장근무는 15분이 넘어야 인정됐다고 한다. 15분 이상 초과로 일해야만 연장근무 수당을 받을 수 있고 29분을 일해도 15분치 시급만 받을 수 있는 구조다.

런던베이글뮤지엄 직원 ㄷ씨의 월급명세서 중 일부. ㄷ씨 제공

ㅁ씨는 “‘그 나이에 어디서 이 돈 받고 일할 수 있을 것 같냐’ ‘이것도 못 하면 어딜가도 아무것도 못 한다’는 말을 듣고 일했다. 무리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걸 이겨내지 못하면 패배자가 된 것처럼 이야기해서 쉽게 그만둘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ㄴ씨는 “브랜드와 함께 성장하기를 꿈꾸는 청년들의 노력이 미련하다고 치부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30일 서울 종로구 런던베이글뮤지엄 안국점 앞에서 정의당 관계자들이 청년 노동자 과로사 규탄 및 책임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대해 엘비엠 관계자는 “연장근로를 거절한 사례가 없다. 앱을 통해 신청하고 승인되면 월말에 연장근로를 합쳐 월급을 주게 돼 있다”고 했다. 지각으로 인한 수당 삭감에 대해서도 “월급제인데 시급을 깎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그게 가능한가. 전수조사를 했는데 그런 일은 없다고 한다”며 “어느 매장인지 알려주면 주의를 주겠다”고 했다. 시말서 작성에 대해서는 “사전 통지 없는 지각, 지시불이행, 제품누락, 결제 오류 시 시말서를 작성하게 한다. 직원 스스로가 오류를 인식해 재발 방지를 하기 위한 것”이라며 “인사나 급여상 불이익은 없지만 누적될 경우 인사위원회를 통해 심의하고 징계가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누군가가 회사에 대해 악의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회사 주인이 바뀌고 개선할 거 개선하는 과정에서 이 사건이 터진 것이다. 성장하려는 상황에서 (이 사건에) 발목이 잡혀 새 주인도 괴로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조금 불합리한 것 같은 과거의 업무절차 등을 조속히 개선하고자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은 지난 7월 사모펀드 제이케이엘(JKL)파트너스에 2000억원 규모로 매각됐다. 매장 운영은 엘비엠이 계속 맡고 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