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둘에 투석이라고요?”···‘단백뇨’ 무심코 넘겼다가 ‘화들짝’[메디컬 인사이드]
젊은 층에서 가장 흔한 투석·이식 원인
증상 없고 인지도 낮은 탓에 치료 지연
‘단백뇨 양’이 환자 예후에 결정적 역할
고위험군 조기 선별·적극적 관리 필요

"겨우 서른 두살인데 투석을 해야 한다구요?"
서경제(32·가명) 씨는 “머지 않아 투석을 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는 주치의의 말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3년 전 회사 건강검진에서 '단백뇨 양성'이 나왔지만 별다른 증상이 없다는 이유로 병원 방문을 미뤘던 게 화근이었다. 평소보다 피로감이 심해지나 싶더니 소변색이 콜라처럼 짙어져 부랴부랴 병원을 찾았을 땐 이미 신장(콩팥) 기능이 30% 미만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만성 콩팥병은 콩팥이 1분 동안 깨끗하게 걸러주는 혈액의 양을 의미하는 사구체여과율(eGFR)을 기준으로 1~5단계까지 나뉜다. 가장 심각한 5단계가 되면 투석, 이식수술 같은 신대체요법을 고려해야 한다.
서씨가 앓고 있는 병은 'IgA 신병증'. 이름조차 생소한 이 질환은 국내에서 가장 흔한 일차성 사구체 질환으로 전체의 약 40%를 차지한다. 우리 몸을 지키는 항체의 일종인 면역글로불린 A(IgA)는 정상적으로 세균, 바이러스 같은 외부 침입자를 공격해 면역 반응을 일으킨다. 이러한 면역 체계에 오류가 생겨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상태가 IgA 신병증이다. 전신 홍반성 루푸스, 류마티스관절염 등 자가면역질환과 유사하지만 증상이 신장에 국한된다는 게 특징이다. 김동기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IgA 신병증은 20~30대 젊은 연령에서 투석 및 콩팥 이식의 가장 흔한 원인"이라며 "개인차는 있지만 한국인을 포함한 동아시아인에서 더 많이 발생하고, 백인종보다 진행 속도도 더 빨라 예후가 좋지 못하다"고 설명했다. IgA의 경과는 개인차가 크다. 평생 큰 문제 없이 지내는 환자가 있는 반면 진단 후 몇 년 안에 말기 신부전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소변 단백·크레아티닌 비율(UPCR)이 1.76g/g 이상인 환자가 말기신부전 또는 사망까지 소요되는 시간(중앙값)은 3년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된다. 중증 환자 2명 중 1명은 3년 이내에 투석을 시작하거나 사망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른 나이에 투석, 이식을 받아야 하는 만성 콩팥병 환자가 늘어나면 단순한 의료비 부담을 넘어 국가 생산성 저하와 사회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최보윤 국민의힘 의원실이 대한신장학회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 경제활동인구(15~65세) 중 만성 콩팥병 환자는 2015년 8만 6356명에서 2024년 12만 1821명으로 41.1% 증가했다. 같은 기간 요양급여비용은 7666억 원에서 1조 401억 원으로 35.7% 늘었다. 만성 콩팥병이 고령층 중심 질환에서 벗어나 사회·경제의 핵심축인 청년층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IgA 신병증의 가장 큰 함정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주로 검진에서 우연히 단백뇨나 혈뇨가 발견되는데,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 보니 대부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감염 시 나타나는 콜라색 소변이 환자가 느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증상인데, 이마저도 감기 정도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 김 교수는 "IgA 신병증을 진단하는 검사는 국가검진의 기본 항목인데, 이상이 있다고 나와도 병원 진찰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단백뇨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몇 년씩 방치했다가 만성 콩팥병 4~5기에 이르러 오는 젊은 환자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고 말했다.
소변검사에서 단백뇨가 나오면 즉각 가까운 동네 의원을 방문해 단백 정량검사를 받고, 기준치 이상일 경우 반드시 정밀검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당부다. IgA의 예후에는 발견 당시의 콩팥 기능 못지 않게 단백뇨의 양이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김 교수는 "종전까지는 소변에서 하루 1g 이상의 단백질이 검출되는지를 따졌는데, 최근에는 그보다 더 엄격하게 봐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며 "특히 젊은 환자는 0.5g/day만 넘어도 적극적인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몇년 전까지 IgA 신병증은 안지오텐신 전환효소(ACE) 저해제, 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ARB) 같은 고혈압 약제나 나트륨-포도당 공동수송체-2(SGLT-2) 억제제 등으로 사구체 내 압력을 낮춰 단백뇨를 줄이는 보존적 치료가 주를 이뤘다. 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약제는 전무했다. 다행히 IgA 신병증을 일으키는 기전이 조금씩 밝혀지면서 신약 연구가 활기를 띠고 있다. 국내에서도 원발성 IgA 신병증에 특화된 신약 ‘네페콘’(성분명 부데소니드)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첫 허가를 받았다. 네페콘은 소장의 마지막 부분인 회장의 파이어판(Peyer’s patches)을 타깃으로 설계된 일종의 표적 치료제다. 소장에서 약물이 방출되도록 설계돼 위장관 출혈, 감염, 당뇨, 골다공증 등 기존 스테로이드의 심각한 부작용을 줄이면서도 투석 시작 시기를 유의미하게 늦추는 효과가 입증됐다. 하지만 가격이 비싸 웬만한 환자들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김 교수는 "IgA 신병증은 신장 이식 후에도 재발률이 20~60%에 달하는 난치병"이라며 "특히 젊은 환자들에게는 학업, 경제 활동 뿐 아니라 결혼, 출산 등 모든 인생 설계에 제약이 따른다"고 했다. 이런 환자들도 조기 진단과 치료를 통해 병의 진행을 억제하면 임신과 출산도 가능하다. 그는 "고위험군을 선별하고 적극적으로 치료해 사회로 복귀시키는 것은 사회경제적으로도 중요하다"며 "보존적 치료를 충분히 했음에도 단백뇨가 많이 나오는 중증 환자들만이라도 산정특례 지정을 통해 치료비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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