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니아' , 지구와 영화를 지키는 명장 요르고스 란티모스

아이즈 ize 권구현(칼럼니스트) 2025. 10. 31.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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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켜라!’의 리메이크를 넘어선 완벽한 재해석

아이즈 ize 권구현(칼럼니스트)

사진제공=CJ ENM

지구는 병들고 있고, 벌들이 사라지며, 인류는 고통받고 있다. 거대 바이오 기업의 물류센터 직원인 '테디'(제시 플레먼스)는 이 모든 것이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는 안드로메다 외계인의 지구 침공 계획 때문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외계인은 바로 사장 '미셸'(엠마 스톤)이다. 이에 테디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 사촌동생 '돈'(에이든 델비스)과 함께 미셸을 납치한다. 그런데 갖은 고문에도 불구하고 미셸은 자신은 외계인이 아니라 주장한다.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라면, 맞다. 영화 '부고니아'는 2003년 개봉했던 장준환 감독이 연출한 '지구를 지켜라!'의 리메이크다. 개봉 당시 큰 흥행을 했던 건 아니지만, 마니아들의 입소문 속에 작품성을 인정 받으며 명작의 반열에 오른 영화다. 그 작품이 지금 2025년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손을 거쳐 재탄생했다. '더 랍스터'로 칸 심사위원 대상, '킬링 디어'로 칸 각본상,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로 베니스 은사자상 심사위원대상, '가여운 것들'로 베니스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명장의 터치다.

사실 리메이크에 있어 원작 수정에 대한 부담은 필연에 가깝다. 허나 '부고니아'는 올바른 리메이크의 정답을 제시한다. 원작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더욱 부각시켰고, 표현 방식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만의 색채로 채워넣었다. 날것의 이미지와 폭력의 리듬으로 전개됐던 원작은, '부고니아'에서 세련된 이미지와 정중동의 리듬으로 재해석된다. 육체의 가학을 덜어내고, 서로의 사상을 부딪히는 설전으로 긴장을 조율한다. 나아가 오마주를 통한 원작에 대한 존중도 잊지 않는다. 

사진=CJ ENM

무엇보다 캐릭터의 성별 변화가 변주의 핵심이다. 원작의 조력자였던 '순이'(황정민)가 '부고니아'에선 '돈'으로 치환됐다. 성별을 남성으로 바꾸면서 주인공과 이뤄졌던 감정 소모를 덜어냈다. 피해자를 여성으로 설정한 것도 영리하다. 제시 플레먼스와 엠마 스톤의 피지컬 차이는 폭력의 수위를 조율하는 장치다. 직접적인 충돌이 없이 같은 공간에 두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충분히 전달된다. 또한 원작의 백윤식이 나쁜 사람의 이미지로 벌을 받는 느낌이 강했다면, 엠마 스톤은 확연한 피해자로 동정심을 유발한다.

스토리에도 개연성을 더했다. 원작이 영화적 허용을 바탕으로 급격하게 이야기가 진행됐다면, '부고니아'는 테디의 심적 변화, 그로 인한 태세 전환에 이유를 부여한다. 그럼에도 묘사하는 캐릭터 수는 대폭 덜어내며 선택과 집중을 했다. 감독은 돈의 비중마저 줄이면서, 테디와 미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다소 중구난방이었던 원작의 전개를 간결하게 정리했기에, 관객은 보다 수월하게 몰입하며 작품을 따라갈 수 있다.

세세한 설정엔 세월의 간극을 적절히 반영했다. 일례로 양봉을 하는 테디는 벌이 사라지는 '벌집 군집 붕괴' 현상을 외계인의 지구 침공으로 해석한다. 이는 현재 인류 멸종의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언급되는 환경 문제다. 이런 설정은 '부고니아'라는 제목까지 이어진다. '부고니아'란 죽은 소의 사체에서 벌이 생겨난다고 여긴 고대의 잘못된 믿음 또는 벌을 얻기 위한 의식을 가리키는 그리스어다. 테디의 맹목적인 사고에서 시작된 이 영화를 잘 나타내는 단어이자, 제작진의 센스를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사진제공=CJ ENM

하지만 기본 설정은 고스란히 따라간다.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다. 원작이 개봉한 지 22년이 지났지만, 오히려 그때 제기했던 문제들이 더 실감되는 현재가 됐다. '지구를 지켜라!'가 '시대를 앞서 태어난 작품'이라는 평가가 있었던 이유기도 하다. 세월의 흐름 속에 영화 제작 기술의 발전을 느낄 수 있는 리메이크 작품이건만, 시대상은 오히려 나쁜 쪽으로 기울었음에 쓴 웃음을 감출 길이 없다. 그래서 '부고니아'는 현 시점에 더 의미있는 영화가 됐다.

개인 미디어의 발달로 각종 가짜뉴스가 판을 친다. 예전엔 한 명의 헛소리로 치부됐던 음모론을 비롯해 자기중심적인 상식만 늘어놓는다 해도 좋아요와 구독설정과 함께라면 국가 전복까지도 도모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빈부의 격차는 더욱 벌어져 양극화가 심화됐고, 그만큼 사회적 주류와 비주류의 정서적 거리도 멀어졌다. 이에 계층 간의 혐오 역시 사회에 만연하고 있으니, 테디와 미셸의 대립이 더욱 개연성을 가진다. 

테디의 행동은 그릇된 사상이 사람을 어디까지 망칠 수 있는지를 시사한다. 특히 그 신념이 본인을 넘어 타인에게 전염됐을 때 더 위험하다는 것을 여실없이 보여준다. 테디는 돈에게 자신의 생각을 주입하고, 행동을 제어한다. 모든 것은 돈을 위한 행동이라 말하지만, 이는 결국 극단적인 가스라이팅으로 귀결된다. 돈의 행동에 본인의 의지가 어느 정도가 들어 있었는지를 헤아렸을 때, 영화는 그 답을 관객에게 명확히 제시한다.

사진제공=CJ ENM

나아가 미셀을 겁박하는 테디의 태도는 현 시대에 울리는 경종이다. 자신의 상식을 맹목적으로 밀어붙이는 일이 허다한 우리 사회다. 그 신념에 반하는 타인을 혐오하는 세태가 전 세계적으로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미셸을 외계인이라 말하며, 납치하고 고문하는 테디의 상식이 집단을 이루고, 힘을 갖출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영화를 통해 가늠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1명을 향한 범죄로 표현됐지만, 현실에서는 전쟁으로 번질 수 있는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반대 입장인 미셀의 자세도 이 사회의 고민을 반영한다. 미셀의 포지션은 기득권이자 다수의 입장이다. 납치 피해자인 미셀의 시선을 따라가는 관객이라면 테디의 주장은 그저 미치광이의 망설로 들려올 터, 하지만 진실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저 다수의 의견이 소수를 무시한 것에 동참하고 있을 따름이다. 사회가 품은 표준의 상식을 AI처럼 쏟아 내는 미셀의 언행에 쓴웃음이 터지는 때가 누구나 약자의 입장에 놓여있음을 인지하는 순간이다.

사진제공=CJ ENM

'부고니아'가 품은 아이러니의 미학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백한 상황이지만, 그 경계가 모호하다. 가해자가 더 슬퍼 보이고, 피해자는 오히려 당당하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외계인을 공부했지만, 미치광이의 음모론으로 치부되고,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가 말하는 기업 복지 정책은 그저 자기 만족의 처세가 된다. 그리고 그 미학은 엔딩에서 절정을 이룬다. 원작이 가지고 있던 반전을 넘어,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을 풍자한다.

그렇게 '부고니아'는 원작을 넘어 완벽한 초월을 이뤄낸다. 하여 원작을 보지 않은 관객이 오히려 더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을 듯 하다. 원작을 본 관객이라면 자신도 모르게 원작과 비교해 가며 작품을 소화하기 때문이다. 특히 반전이 대단한 매력으로 평가받은 작품인 만큼, 원작 관람자라면 커다란 감상 포인트 하나를 내려놓고 갈 수밖에 없다. 다행인 건 원작이 22년 전의 작품이라는 것. 하여 새롭게 이 영화를 접할 관객이 대다수일 것이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영화 '부고니아'는 오는 11월 5일 개봉한다. 118분. 청소년관람불가.

권구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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