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로 떠나는 성지순례] 산 자도 떠난 이도 소슬한 바람에 흔들리는 꽃이더라


◇소멸과 생성의 교차로, 장흥 청련사의 가을


◇생멸의 경계를 넘어, 무형의 가치로 피어난 '예수재'
생멸의 불이(不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청련사에서는 이와 무관치 않은 의식, '생전예수시왕생칠재(生前預修十王生七齋)'를 매년 가을 봉행한다. 예수재는 말 그대로 미리(預) 닦을(修) 수 있는 재(齋)를 의미한다. 즉 살아있는 사람이 미래의 죽음을 준비하고 앞날의 과보를 미리 닦아 훗날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공덕을 쌓는 불교 의식이다. 크게 보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한 의식(수행)으로 번뇌를 소멸하고 해탈에 이르러야 한다는 불교의 가르침에 준하는 의식이라 할 수 있다.
매년 음력 9월 9일, 중양절 전후로 봉행하는데 올해는 지난 9월 11일 입재식을 했고 10월 29일에는 회향식을 치렀다. 청련사 예수재는 단순한 종교의식을 넘어 예술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66호로 지정될 만큼 독특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960년대부터 전통 방식으로 반세기 넘게 보존 · 전승됐고, 특히 서울 경기지역에서 발달한 불교 악가무(범패)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불자들에게는 내세를 위한 가장 중요한 공덕을 닦는 행위이자 일반 대중에게는 불교 음악, 춤, 의례가 결합한 우리나라 무형유산으로 의미가 있다.

◇안정사 천년 인연, 장흥 개명산에 피어난 상서로운 연화
태고종 청련사의 첫인상은 사찰인 줄 모르겠는 네모반듯한 회색빛 현대식 건물(선양원)이라 다소 삭막하게 느껴질 수 있다. 건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에 해당하는 4층에 오르면 비로소 '절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건물의 옥상이 곧 절마당이요, 가람은 그 옥상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산기슭으로 이어져 크고 작은 전각들이 들어차 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현대식 건물이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현세이고 옥상의 전통 가람은 생사를 초월한 극락과 깨달음의 세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산세에 안긴 청련사, 호작도 인연으로 닿다
옮겨온 절에도 작은 폭포가 떨어지는 연못이 있다. 연못 중앙에는 약사여래불이 서 있고 그 옆으로 윤장대가 자리한다. 물소리를 들으며 드르륵, 드르륵 윤장대를 돌릴 때 마음은 평안하고, 4층 높이의 절마당에서 내려다보는 장흥관광지 일대는 계곡을 중심으로 일영봉과 개명산으로 이어지는 산세에 둘러싸여 골짜기의 푸근한 정취를 자아낸다. 그 자체로 한바탕 소풍 같은 풍경이다.

◇천년고찰 명맥 잇는 조선 후기의 성보들
너른 마당에서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과 원통보전, 명부전, 삼성전 등 청련사의 주요 전각들이 단차를 두고 자리한다. 각 건물에는 청련사의 성보들이 봉안돼 있다. 청련사가 서울에서 경기도 양주로 절집을 옮길 때, 비록 이건된 옛 전각은 없었으나 천년고찰의 명맥과 정신을 가시적으로 증명하는 성보들은 여러 점이 옮겨졌다. 청련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물, 청련사 관음보살좌상 및 복장물, 청련사 현왕도 등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이 11점, 청련사 아미타불회도, 청련사 석조여래좌상 및 복장물 등 경기도문화재자료가 4점으로 총 15점의 성보가 있다. 생전예수시왕생칠재는 경기도무형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이들 문화유산은 모두 조선 후기에 제작됐다.

◇떠난 것이 아니라 변한 것일 뿐
절 곳곳에는 불자들이 시주한 석등과 꽃나무들이 고요하고 또렷하게 존재한다. 10월까지도 꽃송이를 놓지 않은 대웅전 앞 배롱나무는 떠난 가족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수년 전 기증했다. 여름 내내, 1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계속 꽃을 피우는 나무라 해서 목백일홍이라고도 불리는 배롱나무의 꽃말은 '떠나간 님에 대한 그리움'이다.
몇 년 전 배우 조현철 씨가 백상예술대상 조연상을 수상하며 남긴 소감이 소소하게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는 시한부 아버지를 향해 "죽음은 단순히 존재 양식의 변화일뿐"이라는 용기와 위로를 전했다. 그의 말대로 흙 한 줌, 나무 한 그루, 떨어지는 빗방울 등 우리 주변의 자연 만물은 변화한 존재의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청련사 주변, 곳곳이 소풍 명소
청련사를 떠나온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으로 향한다. 과거 가족 피서지, MT와 수련회 장소로 인기 있었던 장흥관광지는 이제 문화예술단지로 명성을 굳힌 지 오래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우리나라 구상조각 1세대 조각가인 민복진 작가의 작품을 다룬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과 정원을 공유하고 있다. 한국현대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두 예술가의 웅숭깊은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어 시간을 넉넉히 잡고 가야 한다.
이들 미술관 정문에서 750m 거리에 가나아트파크가 있다. 가나아트파크에 위치한 통나무 산장 스타일의 스타벅스 또한 장흥의 명소인데 미술관 카페답게 내부에도 현대미술 갤러리가 마련돼 있다. 가나아트파크 길 건너편에는 배우 임채무 씨가 운영하는 어린이 실내테마파크 두리랜드가 있다.
역사적 명소로는 권율장군묘도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조선왕릉 42기 중 하나인 온릉 또한 가까운데 솔숲 산책하기 좋은 장소다. 온릉은 중종의 원비 단경왕후 신씨의 묘다. 장흥에는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아서 청련사와 함께 하루 나들이로 찾기 좋다. 조금 거리는 있지만 10월 말까지 천일홍과 코스모스가 한창인 양주 나리공원도 양주가 자랑하는 가을 명소다.
글·사진 = 유승혜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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