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남, 이들에게도 해방이 필요하다 [김명인 칼럼]


김명인 | 문학평론가·인하대 명예교수
캄보디아에서 우리나라 청년들이 납치 감금되어 보이스피싱, 로맨스 스캠, 주식 리딩방 등 각종 악성 온라인 금융 범죄에 강제로 동원되고 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런 일도 간혹 있으려니 싶었다. 얼마 전에 보이스피싱 피해 여성이 중국에 날아가서 보이스피싱 조직을 일망타진하고 납치된 한국 청년을 구한다는 내용의 ‘시민 덕희’라는 영화를 보았던 터라 그저 그런 종류의 사건으로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사건이 우연한 소수의 피해가 아니라 매우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피해이며, 납치·감금 등의 이례적 계기로 일어난 일들이 아니라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또 대규모로 캄보디아행을 선택해서 벌어진 일종의 노동이민에 가까운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캄보디아 몇몇 도시에는 거의 공식화한 반합법 범죄조직 단지가 존재하고 이 단지에서 수많은 한국 청년들이 각종 온라인 금융 범죄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납치이거나 취업 사기인 경우도 많지만 상당수는 자발적인 취업이었으며 그 숫자도 2천~3천명에까지 이른다는 사실을 전해 들으면서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처음엔 그 청년들 탓을 했다. 제정신이라면 캄보디아에서 월 천만원짜리 일자리가 있다는 말을 믿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되는 보도 내용을 접하면서 극히 일부지만 고수익자들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초반의 고난(?)을 잘 견뎌내고 범죄에 깊숙이 간여하며 서열이 상승할수록 고수익을 얻게 될 텐데 그런 부류들이 모집책이 되어서 자기 경험을 과장하여 유혹을 한다면 쉽게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강제성과 자발성이 뒤섞인 고통스러운 입사식 끝에 얼마간의 수익을 얻는 단계가 되면 비참한 피해자에서 자발적 범죄자가 되어 이제 그 세계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구성원으로 자리 잡게 되고, 그 입사식에서 탈락하면 처참한 노예 신세로 전락하거나 탈출하느냐,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어두운 지하 범죄 세계에 멀쩡한 청년들이 상당 부분 자발적으로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의 지옥도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전세계가 선망하는 케이(K)컬처의 나라에서 수천명의 청년들이 유학도 워킹 홀리데이도 아닌 온라인 범죄조직의 하부 조직원으로 팔려 간다는 게 믿을 수가 없다. 이건 아니다. 신규 일자리의 진입장벽은 점점 높아지고 질 좋은 평균 이상의 일자리는 금수저들에게 대부분 돌아가는 것이 현실인 줄은 알았어도 우리 청년들이 이처럼 명백한 위험에 도박하듯 삶을 내맡길 정도인 줄은 몰랐다. 금융자본주의가 자본주의 말기 증상이라면 이처럼 창궐하는 온라인 금융 사기는 자본주의의 막장 중에서도 최악일 터, 이 지옥도에 선뜻 몸을 던지는 것은 어떤 강제에 쫓긴 결과일까. 이 정도라면 캄보디아행을 택한 그들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이들 대부분이 20대의 청년 남성들이라는 사실이다. 바로 문제의 ‘이대남’들이다. 지난 20대 대선에서 윤석열을 당선시키고 이번 21대 대선에서도 여전히 내란 세력에 더 많은 지지를 보냄으로써 한국 극우세력의 주요한 지지 세력으로 떠오른 이대남. ‘일베’의 중심 세력이자 같은 세대의 여성들에게는 루저, 잠재적 성범죄자, 스토커, 데이트 폭력범, 책 안 읽는 무뇌충, 연애도 결혼도 꿈도 못 꾸는 인셀 등으로 기피당하고 멸시당하기 일쑤인 이대남. 특히 지난 1월에 있었던 서울서부지법 폭동 가담자 중의 절반이 2030 남성들이라는 사실은 이들이 조만간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은 한국적 극우 파시즘의 주력부대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수긍할 만한 추단으로까지 이어졌다. 어느 사이에 이들 이대남들은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천덕꾸러기처럼 되어 버렸다. 얼마 전에 내가 냈던 책을 두고 작은 북토크 자리가 있었는데 90%가 여성이었던 그 자리에서 어떤 중년 여성 독자가 했던, 도대체 책도 한줄 안 읽는 그 이대남들을 어떻게 하면 좋아요, 하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그런데 그 천덕꾸러기 문제 세대로 낙인찍힌 그 이대남들 중에는 이런 비참한 지옥도에 빠져드는 부류들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이대남을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가 필요함을 느낀다.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캄보디아에서 귀국하는 특별기에서 내리자마자 요구호자에서 피의자로 신분이 바뀌어 티셔츠에 반바지, 슬리퍼 차림으로 줄줄이 경찰서로 압송되어 들어가는 60여명의 청년들의 모습을 보며 쓰라린 비애감을 느꼈다. 그들은 선진국 한국 사회가 내다 버린 또 다른 ‘호모 사케르’들이었다. 내 머릿속에서 그들의 모습은 디스토피아 에스에프(SF)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지하 세계 거주민들의 이미지와 오버랩되었다. 젊은 나이에 인생의 막장으로 자기 자신을 내몰아 푼돈에 영혼을 파는 패배자이자 범죄자로 낙인찍혀 버리게 된 그들에게 정상적인 인생 경로를 가르치고 정치적 올바름을 교설하고 젠더 감수성을 요구하고 혐오놀이를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사치일 것이다.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도태된”(배수찬, ‘2030 영혼의 연대기’) 존재들이고 우리 시대의 또 다른 타자들이고 또 다른 소수자이며 약자들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해결책을 알지 못한다. 신자유주의 양극화의 극단을 가는 한국 사회의 탓이라고 말하는 것은 쉽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전반에 걸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도 공허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들이 더 이상 이런 식으로 버림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안다. 여성들에게,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성적 소수자들과 장애인들과 이주민들에게만이 아니라 이들에게도 해방이 필요하다. 지상에서 내몰리는 소수자들을 위한 싸움은 결코 ‘을’들 사이의 제로섬 게임일 수 없다. 이들 중 누구도 패배해서는 안 된다. 이 새로운 소수자 집단이라고 할 불행한 남성 청년들을 공동체의 언어, 문화, 양식에서 배제된 또 하나의 거대한 ‘서발턴’(Subaltern·배제된 집단)으로 남겨둘 수는 없다.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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