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니아', 백윤식 지운 엠마 스톤… 사라진 유머대신 진화한 광기 [리뷰]

신영선 기자 2025. 10. 3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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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동료나 이웃이 외계인이라면, 영화 'E.T.'처럼 친절한 이웃이 될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없어지면 인류가 4년 안에 멸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만일 꿀벌의 멸종 위기 원인에 외계인이 있다면, 지구인들은 공생체계를 위태롭게 하는 불순분자를 제거해야 한다고 여길 것이다.

영화 '부고니아'는 거대 바이오 기업 CEO '미셸'이 지구인을 위협하는 외계인이라고 믿게 된 남자 테디의 이야기다.

그리고 기업의 CEO인 미셸은 인류를 위협하는 외계인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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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신영선 기자]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동료나 이웃이 외계인이라면, 영화 'E.T.'처럼 친절한 이웃이 될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없어지면 인류가 4년 안에 멸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만일 꿀벌의 멸종 위기 원인에 외계인이 있다면, 지구인들은 공생체계를 위태롭게 하는 불순분자를 제거해야 한다고 여길 것이다.

영화 '부고니아'는 거대 바이오 기업 CEO '미셸'이 지구인을 위협하는 외계인이라고 믿게 된 남자 테디의 이야기다. 양봉을 부업으로 하는 테디는 꿀벌이 사라지는 군집 붕괴 현상의 원인이 자신이 근무하는 바이오 기업 탓이라고 의심한다. 그리고 기업의 CEO인 미셸은 인류를 위협하는 외계인이라고 믿는다. 망상은 곧 실행으로 옮겨진다. 테디는 약간 모자란 사촌 동생 돈과 은밀한 준비 과정에 돌입한다. 목표는 성공한 CEO인 척 지구를 활보하는 외계인 미셸 납치하기. 테디는 집 안에 인류저항군본부를 차리고 훈련에 매진한다. 어딘가 어설픈 맨손 운동에 뉴런 컨트롤까지 두 사람의 훈련은 점점 광기를 띠어간다. 드디어 개시된 납치 작전 역시 어설펐지만 우여곡절 끝에 성공하게 되고, 미셸은 그의 집 지하실에 감금된 채로 의문의 대면을 시작한다.

그러나 납치 이후에도 현실감 없는 광기는 계속된다. 테디는 '미셸이 왜 외계인이냐'는 돈의 질문에 자신만의 구분법이 있다며 발볼이 좁은 칼발, 약간 튀어나온 앞니, 숱 많은 머리 등 지극히 평범한 특징들을 꼽는다. 그러고는 "우리가 당한 모든 일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외계인 미셸에게 전기고문을 가한다. 고통 속에서 자신은 외계인이 아니라고 끝 없이 외치는 미셸은 이들 납치범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진짜 외계인은 존재할까?

'부고니아'는 한국 영화 '지구를 지켜라'를 각색한 리메이크작이다. 22년 전 개봉한 '지구를 지켜라'는 평단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7만 명의 관객에 그치며 흥행에서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시네필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비운의 명작'으로 회자된다. 장준환 감독은 이 작품으로 신인감독상을 받았고, 제25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 감독상과 제22회 브뤼셀판타스틱영화제 금까마귀상을 수상하며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부고니아'는 원작의 굵은 뼈대를 유지하면서도 인물 구성을 과감히 바꿨다. 여자친구는 사촌 동생으로, 외계인으로 의심받던 남성 강사장은 여성 CEO 미셸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주변 인물의 서사를 덜어내며 이야기의 광기 어린 에너지와 집중도를 높였지만, 원작이 지녔던 기이한 매력과 풍자는 다소 옅어져 아쉬움을 남긴다.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엠마 스톤의 화끈한 열연이다. 미셸 역의 엠마 스톤은 냉철하면서도 강단 있는 연기로 영화를 이끈다. '라라랜드'에서의 사랑스러움은 완전히 지우고, 과감한 삭발 투혼으로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나홀로 튀기 쉬운 캐릭터를 탁월한 연기력으로 설득력 있게 소화하며, 한정된 공간이 주는 답답함을 오히려 긴장감으로 전환시킨다. 납치당한 여성에게 부여되던 전형적 수동성을 벗어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인물로 그려낸 점이 돋보인다.

테디 역의 제시 플레먼스는 특유의 광기 어린 눈빛으로 극의 불안을 극대화한다. 그의 일그러진 신념과 흔들리는 감정선을 따라가며 영화는 묘한 긴장감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린다.

초반에는 세 사람의 진실공방이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하고, 중반 이후에는 예기치 못한 반전이 전개되며 서사는 급격히 흡입력을 얻는다. 원작을 보지 않았다면 더욱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전개다. 스포일러 하나로도 재미가 반감될 수 있는 작품이니, 사전 정보 없이 보는 것을 추천한다. 11월 5일 개봉. 러닝타임 119분.

 

스포츠한국 신영선 기자 eyoree@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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