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도시 포항 수놓은 ‘빛과 쇠’의 예술들

노형석 기자 2025. 10. 30.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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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벗은 알몸의 청년은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동빈문화창고의 전시 1장은 '철, 읽다'라는 제목으로, 소설가 김훈씨의 산문 원고 '영일만의 빛과 쇠', 한글 디자이너 안상수씨의 '오' 감탄사 조형물, 쇠를 사유한 기획자이자 철학자 이섭씨의 논고, 정현·이웅배 작가의 각지고 유연한 금속 조형물들이 '문예철 콜렉티브'를 이루며 빛과 쇠라는 이번 미술제의 개념 틀을 텍스트와 형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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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회 포항 스틸아트 페스티벌 현장
멀리 포항제철소가 보이는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에 설치된 안재홍 작가의 ‘길’(The way) 연작 조형물. 청동 조각들을 대나무 마디처럼 이어 붙여 나뭇가지 같은 모양의 다발들을 만들고 이를 엮은 사람의 형상을 모래벌판에 세웠다. 하늘과 바다 같은 자연과 도시의 문명 사이 흐르는 기운을 인간 존재의 얼개에 담아낸 역작이다. 노형석 기자

발가벗은 알몸의 청년은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는 왼발을 앞으로 디디며 벌린 두 팔을 쭉 뻗어 자기 앞의 허연 벽을 밀어내려 한다. 강하게 힘을 주어 밀어붙이는 손과 손가락 근육의 팽창된 모습. 한눈에도 긴장감이 역력하다.

지금은 반추상 조각을 주로 하는 중견 조각가 정현 작가가 20대 시절인 1985년 만든 청동상 ‘무제’의 모습이다. 전시 공간이 특이하다. 제철 도시 포항의 내항 선착로 포구변에 자리잡은 50년 넘은 옛 얼음창고 통로 공간이다. 이 얼음창고를 개조한 본전시장인 동빈문화창고1969와 북쪽 영일대 해수욕장 등에서 지난 25일 개막한 지역 공공미술제 ‘포항 스틸아트 페스티벌’의 14번째 난장은 공공미술 기획자 박삼철씨가 예술감독을 맡아 기존 조형물 일색의 전시와는 다른 시도를 꾀했다. 소설가 김훈씨가 작명한 ‘빛과 쇠’를 주제로 내세우면서 포항의 상징 쇠철이 인간의 존재, 삶과 어떻게 맺어지는지를 문인·철학자의 글과 작가들의 금속 조형물로 탐구한다.

동빈문화창고의 전시 1장은 ‘철, 읽다’라는 제목으로, 소설가 김훈씨의 산문 원고 ‘영일만의 빛과 쇠’, 한글 디자이너 안상수씨의 ‘오’ 감탄사 조형물, 쇠를 사유한 기획자이자 철학자 이섭씨의 논고, 정현·이웅배 작가의 각지고 유연한 금속 조형물들이 ‘문예철 콜렉티브’를 이루며 빛과 쇠라는 이번 미술제의 개념 틀을 텍스트와 형상으로 보여준다. 석양 녘에는 건물 창밖에 비치는 포구와 하늘 바다의 낙조를 덤으로 보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창고 건물에서 나와 좀더 북쪽으로 가면 영일대 해수욕장에서 전시 2장이 펼쳐진다. 13회까지 미술제를 벌이면서 모은 철조각 200여점의 창작자들을 다시 심사해 ‘올해의 작가’ 14명(강대영·김병철·김상균·김연·김태수·노해율·모준석·박성찬·박은생·신옥주·안재홍·이기칠·정정주·최일)을 뽑고 그들의 근작을 세워놓은 얼개다. 가장 선연하게 눈에 들어오는 작품은 안재홍 작가의 ‘길’(The way) 연작 조형물이다. 청동 조각들을 대나무 마디처럼 이어 붙여 나뭇가지 같은 모양의 다발들을 만들고 이를 엮은 사람의 형상을 모래벌판에 세웠다. 하늘과 바다 같은 자연과 도시의 문명 사이 흐르는 기운을 인간 존재의 얼개에 담아냈다. 조형적 수준 측면에서 편차가 있지만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도 대체로 생명성과 존재에 대한 탐구 등을 표현한 것이 많다. 바로 옆 해변 무대에서 거리 가수들의 트로트 가요 열창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인근 한구석 자리에만 전시 공간을 마련한 조형물들의 모양새가 옹색하고 민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미술제 자체도 쇠에 얽힌 인문적 담론 마당과 이를 고민한 중견·소장 작가들의 수작, 범작들이 한정된 공간에서 상당한 편차를 드러내며 난만하게 섞여 있는 양상을 보여준다. 현재 국내 지방도시 공공미술의 현주소와 현장에서 벌어지는 혁신의 시도와 한계까지 실감하게 하는 난장인 셈이다. 11월9일까지.

포항/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동빈문화창고1969 1층 전시장을 들어가는 통로에 놓인 정현 작가의 1985년작 청동상 ‘무제’. 알몸의 남자가 힘껏 무언가를 밀어붙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노형석 기자
1층 전시장 통로에 놓인 정현 작가의 1985년작 청동상 ‘무제’의 양손 부분. 강하게 힘을 주어 밀어붙이는 팔과 손가락 근육의 긴장된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노형석 기자
본전시가 열리고 있는 포항 내항의 동빈문화창고1969 2층 전시장. 이웅배 작가의 꿈틀거리는 선 모양 조형물이 놓인 창가 너머로 해오름대교와 내항포구의 정경이 펼쳐지고 있다. 노형석 기자
동빈문화창고 1층 전시장 안쪽에 나온 한글디자이너 안상수 작가의 조형물 ‘원 레터 오’의 일부분. 한 자의 감탄사 ‘오~’의 모양새를 통해 작가가 포항에 대해 느끼는 마음을 표현하려 한 작품이다.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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