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신학을 본격 형상화한 첫 한국 드라마
※이 칼럼에는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다 이루어질지니’는 한국 드라마로는 거의 최초로 이슬람 신학을 본격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드라마는 이슬람의 사탄과 고려 소녀를 만나게 하여 이슬람 신학과 환생이라는 이질적인 두 세계관을 결합한다. 최초의 인간 남자 아담에게 머리 숙이기를 거부했던 오만한 이블리스가 의로운 고려 노예 소녀를 만나 사랑하고 존경하여 머리를 숙이고 마침내 죽는다. 이런 극한의 신학적이고 실존적인 아이러니를 판타지 로맨스 코미디로 만들어 전세계 관객들에게 보여주었다.

‘다 이루어질지니’는 김은숙 작가의 신작 넷플릭스 드라마다. 판타지, 슬랩스틱, 로맨스가 버무려진 드라마로 호불호가 엇갈린다. 주연을 맡은 김우빈과 수지가 매력적이고, 특수효과가 환상적이며, ‘램프의 요정 지니와 사이코패스의 목숨 건 내기’라는 설정이 흥미롭다. 여기에 초반의 속도와 말맛을 높인 코미디도 신선감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산만하고 불균질한 전개는 몰입을 방해했다. 주인공들끼리 혹은 주인공과 신이 겨루는 내기의 규칙이 다소 복잡한 데다, 또 다른 이야기가 가지를 치고, 새 인물이 끼어드니 따라잡기 힘든 것이다. 중반 이후 안정이 되었지만, 텐션은 떨어졌고, 막판에 가서는 줄초상이 나면서 슬픔이 휘몰아쳤다. 지금껏 코미디로 즐기고 있던 관객은 당황스러운데, 그런 관객을 위해서인지 급조된 듯한 해피엔딩이 따라붙었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으로 난삽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기대했던 것과 다르고, 매끄럽지 못하다. 그러나 독특하고 괴상하면서 나름 완결적인 드라마임을 인정하게 된다.
‘다 이루어질지니’의 만듦새가 얼마나 좋은가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다 이루어질지니’는 한국 드라마로는 거의 최초로 이슬람 신학을 본격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드라마는 이슬람의 사탄과 고려 소녀를 만나게 하여 이슬람 신학과 환생이라는 이질적인 두 세계관을 결합한다. 최초의 인간 남자 아담에게 머리 숙이기를 거부했던 오만한 이블리스가 의로운 고려 노예 소녀를 만나 사랑하고 존경하여 머리를 숙이고 마침내 죽는다. 이런 극한의 신학적이고 실존적인 아이러니를 판타지 로맨스 코미디로 만들어 전세계 관객들에게 보여주었다.

문화적 전유가 아닌 근원적 구현
‘다 이루어질지니’의 예고편이 공개되었을 때, 지니가 자신의 이름을 ‘이블리스’ 라고 하자, 이슬람 문화권 관객들의 항의가 잇달았다. ‘이블리스’는 신에게 불복종하여 쿠란에 이름이 박제된 유일한 사탄인데, 어떻게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으로 삼아 낭만화할 수 있냐며 분노를 쏟아냈다. 타 문화의 전통에 대한 존중 없이 요소나 상징만 적당히 빌리거나 왜곡하는 짓을 ‘문화적 전유’라 하는데, 그런 혐의가 짙다며 항의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드라마는 이슬람 문화나 종교를 이미지적으로 차용한 게 아니었다. 이슬람의 정신을 근원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드라마는 시작하자마자 “나는 연기 없는 불로부터 창조된 정령 지니이고…인간을 유혹해서 지옥으로…”라는 지니의 독백이 나온다. 쿠란에 근거한 이야기다. 쿠란에서 이블리스는 ‘진’(Jinn)으로 밝히고 있는데, ‘진’ 이 ‘아라비안나이트’를 서구 언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지니’가 되었다. 이블리스가 (타락)천사가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 이슬람 신학에서 천사는 신의 명령을 수행할 뿐이며, 자유의지가 없어서 타락할 수가 없다. 진과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는 존재로 순종도 반항도 선택할 수 있으며, 심판의 대상이 된다. 드라마에서 천사 이즈라엘보다 이블리스가 훨씬 매력적이고 오히려 선하게 보였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즈라엘은 신이 이블리스를 몇번이고 용서하고 인간을 유혹할 기회를 주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투덜대는데, 쿠란과 하디스(예언자 언행록)에 나오는 천사와 진과 인간의 존재론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이슬람의 선악관
이슬람은 기독교와 뿌리가 같지만, 교리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첫째 원죄는 없으며, 따라서 대속은 필요 없다. 둘째 예수는 신의 아들이 아니라 선지자다. 따라서 삼위일체는 인정하지 않는다. 셋째 구원은 믿음이 아닌 행위를 따른다. 각자 행위에 책임을 진다. 요컨대 인간은 선하게 태어난다. 유혹을 받아 죄를 지을 수 있지만 회개하면 신은 몇번이고 용서해준다. 인간은 행위를 통해 구원받기에, 정갈한 음식을 먹고 하루에 다섯번씩 기도하는 등 규율에 맞춰 살아야 한다. 오래 살수록 선행하고 참회할 기회도 많기에 죽지 말고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다. 이것이 이슬람 신학의 선악관이다.
드라마 속 가영의 삶을 보자. 고려 시대의 가영은 두개의 소원을 남을 위해 쓰고, 마지막 소원조차 자기 행위에 벌을 받겠다고 한다. 이후 두번의 생도 모두 의로운 삶을 살고, 네번째로 천성이 가장 악하다고 손가락질받는 사이코패스(기가영)로 태어나서도, 할머니의 가르침대로 “인간은 선하다”고 믿으며, 빽빽한 루틴(규율)을 지키며 산다. 다만 공격욕을 참으며 사는 것이 재미없어 할머니가 죽으면 자연스레 따라 죽을 생각이었다.
기가영은 ‘모든 인간은 타락한다’는 이블리스에게 5판 3승 내기를 한다. 그 과정에서 강아지는 주인만을 사랑하고, 마트 노동자는 마트 바깥을 사유할 수 없으며, 대부분 첫번째 소원을 보완하는 데 두번째 소원을 써버리는 등 어리석은 군상들을 보여준다. 드라마에서 처음엔 중요할 것 같았던 5판 3승의 승패가 별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데, 이는 이슬람의 선악관과 일치한다. 이슬람에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하며, 때로는 유혹에 빠져서 일시적으로 거짓말, 분노, 탐욕 등의 죄를 저지르지만, 참회하면 신의 용서를 얻는다. (신과 선지자를 모독하는 대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된다.) 5판 3승 내기에서 승패보다 중요하게 다루어진 것은 지니와 기가영의 개입으로 좋은 결과가 생긴 것이다. 강아지는 새 주인이 생기고 유기견 탐정이 탄생했다. 은행원은 자신이 기가영을 시기해왔음을 고백한다. 유튜버 남자가 반성하고 마지막 소원을 빌어 장인의 암이 나았다. 실종자는 범죄를 면하고 살인자는 잡혔다. 기가영도 지니를 만난 후 더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슬람의 선악관을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은 이블리스다. 그는 처음 신이 불순종한 진들을 천사를 시켜 제거할 때 신을 거역하지 않아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신이 인간을 만들어 최초의 인간 아담에게 머리 숙이라고 하자, 거부한다. 불순종의 죄로 천국에서 쫓겨나면서, 인간을 유혹하겠노라 맹세하여 신의 허락을 받는다. 그는 인간의 욕망을 이용하여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에 확신을 느껴왔으나, 고려 소녀가 죽어가면서 빈 의로운 소원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 20년이 지난 후 고려 소녀와 재회하여 사랑하고 그를 잃은 후, 이것이 20년간 유예되었던 벌임을 깨닫는다. 고려에는 환생이 있다는 소녀의 유언에 따라, 이블리스는 “어떤 벌도 달게 받겠으니 그녀의 생에 한번만 가닿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사랑했던 기억을 잃은 채 980년간 램프에 갇혀있다가 21세기 기가영에게 발견된다. 다시 사랑하고 서로 목숨이 양립할 수 없는 내기를 한다. 기가영은 이기적인 소원으로 이블리스를 살리고자 하나, 기가영의 이타심에 이블리스가 머리를 숙이고, 천년의 약속대로 천사의 칼에 목이 잘린다. 드라마에서 이블리스는 자유의지를 가진 피조물로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고, 신과의 관계가 다이내믹하다. 이슬람에서 모든 인간은 신과 중재자나 대속자 없이 일대일로 대면한다. 자신이 행한 모든 죄를 오직 자신이 짊어지며, 신의 뜻은 천년이 흘러도 그대로 이루어지되, 구원은 숙명적으로 예정되어 있진 않고, 최후의 순간까지 인간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

글로벌 콘텐츠, 김은숙 월드, 이슬람 포비아
누구나 느꼈겠지만 ‘다 이루어질지니’는 ‘도깨비’와 기본 뼈대가 유사하다. 980년간 갇혀있던 지니는 900년간 칼이 꽂혀 있던 도깨비와 상동이고, 소녀가 칼을 뽑으면 죽는 설정과 소녀가 소원을 빌면 죽는 운명과 상동이고, 티격태격 조연인 저승사자와 죽음의 천사는 상동이다. 중반 이후 등장한 ‘파국’ 빌런과 아역 빌런, ‘4번의 생’ 언급 후 죽지만 환생으로 해피엔딩 등도 같다. 또한 드라마 속 수많은 김은숙 작품의 패러디가 그러하듯, 일종의 ‘김은숙 세계관’을 형성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것은 상당히 징후적이다. ‘다 이루어질지니’는 매끄러운 수작은 아니지만, 울퉁불퉁한 야심작이며, 한국에서 검증된 핵심 부품을 바탕으로 글로벌 콘텐츠로 몸집을 키우고 판형을 고쳐서 전세계 시장에 나서겠다는 배포를 드러낸 것이다.

할리우드가 아니면서, 감히 할리우드에서도 하지 못한 쿠란 속 사탄을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으로 삼아, 이슬람 신학에 매우 충실한 드라마로 만든 것도 놀라운데, 이것을 환생이라는 이질적인 세계관과 자연스럽게 엮는다. 이슬람 문화권의 관객들은 2006년부터 ‘겨울연가’ ‘대장금’ ‘주몽’ ‘해신’ ‘상도’ 등을 보며 케이(K) 드라마를 즐겨왔다. 이들이 보기에 ‘다 이루어질지니’가 그리는 종횡무진판-아시아적 상상이 당혹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1500년 전부터 아시아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을 오가며 교류하던 사람들이 있었음을 떠올리며, 종교적 소통을 포함한 문명 간 대화에 서로 마음을 열기 바란다. 무엇보다 인구절벽을 앞두고 새로운 이주민 정책을 고민해야 하는 한국 사회에 작가는 정말 큰일을 하였다. 만연한 이슬람 혐오를 줄이고 이슬람에 대한 순연한 이해를 높이는 콘텐츠를 만들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미스터 션샤인’만한 수작은 아닐지라도, ‘다 이루어질지니’가 향후 한국 사회에 미치는 숨은 파급력은 그에 못지않을 것이다. “멋지다 김은숙!”

황진미 | 대중문화평론가. ‘씨네21’ 영화평론가로 출발하여 티브이 드라마, 예능 등을 두루 평론한다. 인권·역사·여성·장애·인구·성·계급·권력 등 사회과학 전반에 관심이 많다. 원래 전공은 의학·보건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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