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 태평염전, ‘문화유산 지위 스스로 반납’…이유가 뭘까?
신안군 “염전 훼손·멸실 없어 등록 말소 신청 사유 안 돼”
태평염전 “강제노동 논란으로 문화유산 가치 유지 어려워”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강제 노동' 논란에 휘말렸던 전남 신안의 태평염전이 국가유산청에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말소를 신청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등록된 지 18년 만에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위를 스스로 반납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자연재해나 화재 등으로 문화유산이 훼손되지 않았는데도 소유자가 자진해서 등록 말소를 신청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현재 태평염전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 유지가 어렵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국가유산청에 직접 제출하고 문화유산 등록 말소 절차를 밟고 있다. 염전 측은 정신적 가치가 훼손돼 문화재로서 의미를 상실했다며 등록 말소 신청을 유지한다는 입장을 고수한 반면 신안군은 소중한 문화유산인 염전의 가치를 지켜달라고 설득하고 있다.
다만, 단호했던 태평염전 측이 정식 문화유산 등록 말소 절차 추진에 다소 누그러진 '유보적인 입장'을 보여 실제 등록 말소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제 노동' 논란 태평염전…문화유산 등록 말소 신청
30일 신안군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신안 증도에 있는 국내 최대 태평염전은 최근 국가유산청에 염전의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말소를 신청했다. 강제노동 의혹으로 지난 4월 미국 정부가 태평염전에서 생산한 천일염의 수입을 막으면서 문화유산으로서 상징성이 상실됐다는 이유에서다.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지 18년 만이다. 다만, 당초 해당 염전과 함께 석조 소금창고 역시 말소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태평염전 측은 국가유산청에 낸 의견서에서 "태평염전은 일제강점기 이후의 염업 발달을 상징하는 산업유산으로 등록됐으나 강제노동 사건으로 상징성과 사회적 의미가 심각히 훼손됐다"며 "더는 산업의 발전사나 지역 사회의 생활사를 긍정적으로 상징하는 기능을 하지 못해 문화유산의 가치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적시했다.

등록말소 신청을 바라보는 염전 측과 신안군 '입장차'
하지만 '근현대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문화유산이 훼손되거나 멸실되어야 문화유산 등록이 말소된다. 이 때문에 문화유산계는 태평염전의 요청이 즉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신안군도 이를 근거로 태평염전 측의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말소 신청이 요건에 해당하지 않다고 보고 염전 측을 상대로 신청을 취소할 것을 요청했다.
신안군 관계자는 "염전 측은 강제노동 논란으로 문화유산으로서 상징성과 사회적 의미가 훼손돼 말소 신청을 했다지만, 법령상 국가 유산청의 직권 말소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소중한 문화유산인 염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태평염전이 대승적인 결단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태평염전 측은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말소 신청을 번복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태평염전 관계자는 29일 연합뉴스에 "최근 일련의 사건으로 태평염전이 간직해온 정신적인 가치가 크게 훼손돼 문화재로서 의미를 상실했다"며 "문화유산 등록은 말소되지만, 염전 운영은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태평염전이 등록말소 추진하는 이유 '3가지'
태평염전이 등록 말소를 추진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강제노동 의혹으로 미국 정부가 지난 4월 태평염전에서 생산한 천일염의 수입을 금지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미국 관세국경보호청은 신안 일대 염전에서 강제노동이 있었다는 이유로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다.
태평염전은 국가유산청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태평염전의 천일염과 관련 제품에 대해 미국 관세국경보호청이 수입 금지 조처를 내린 것은 국제사회에서 이 문화유산이 인권침해 산업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적시했다.
또 다른 이유는 국가유산 소유자에게 부과되는 관리 리스크다. 수입염 증가 등으로 국내 소금시장이 점차 위축되는 상황에서 관련 법률에 따른 의무가 부담으로 작용됐을 것이란 분석이다.
통상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보조금 또는 시설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태평염전은 관련 지원을 단 한 차례도 받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태평염전은 이날 신안군 관계자와 만난 자리에서 "국가등록문화유산 유지와 관리에 따른 비용과 책임은 컸지만 지원이나 혜택은 거의 없었다"고 서운함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신안군은 "이렇다 할 지원이 없었던 것은 맞다. 다만, 같이 등록 문화유산에 오른 비금도 대동염전의 시설이 워낙 낡아 최근 먼저 보수 정비한 뒤 (지원을) 준비하던 와중에 문제가 터졌다"며 "앞으로 적극적인 지원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천일염 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이 불투명해진 점도 등록 말소 신청 배경으로 꼽힌다. 태평염전 측은 "상당 규모의 염전이 태양광 발전으로 전환되고 천일염 생산량이 급감하며 국내 천일염 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이 불투명해졌다"고 밝혔다.

누그러진 태평염전…말소 절차 '보류 검토'
그러나 실제 등록 말소 여부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절차 위배라는 암초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다. 문화유산 등록 말소는 신청인이 관할 지자체에 접수하면 국가유산청이 최종 판단을 하는 구조다.
그럼에도 태평염전은 신안군에 등록 말소를 신청하지 않고 국가유산청에 직접 신청했다. 정상적인 절차를 거친 신청이 아니어서 말소 절차도 정상이 아닌 셈이다.
이에 국가유산청은 태평염전에 신안군, 전남도와 협의를 우선하라는 의견을 냈다.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말소 여부는 전남도의 문화유산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유산청이 최종 판단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태평염전 측의 완강했던 종전 태도에 변화 분위기도 감지된다. 당초 태평염전이 낸 등록 말소 신청은 신안군의 검토를 거쳐 이르면 내주 전남도에 제출될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러나 태평염전은 이날 오후 등록 말소 신청 철회(?)를 요청하기 찾은 신안군 관계자들에게 대화를 위해 정상적인 등록 말소 신청 접수의 보류를 검토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신안군 관계자는 30일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태평염전 측이 훼손된 염전의 신뢰와 문화유산 가치를 회복해달라면서 말소 절차 진행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며 "향후 대화를 통해 원만하게 문제를 풀어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1953년 증도와 후증도를 잇는 둑 사이 갯벌 위에 만들어진 태평염전은 70년 넘게 천일염을 생산해온 국내 최대 단일 염전이다. 국내 전체 천일염 생산량의 약 60%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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