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의 대격변··· 일본 정치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일본 자민당의 새 총재로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장관(64)이 당선됐다. 당초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장관(44)이 우세할 거라는 관측이 많았으나 결과는 달랐다. 다카이치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노선을 계승하는 인물이다. 이번 총재 선거에서 나라 공원의 사슴을 발로 차는 외국인 관광객이 있다고 주장했으나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과거 각료로 재직하던 중에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반복했다. 지난해 총재 선거에서는 “총리가 되어서도 참배하겠다”라고 말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적시에 적절하게 판단하겠다”라고만 했다.
자민당은 왜 ‘강경파’로 꼽히는 다카이치를 선택했을까.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 표’와 당원·당우(자민당 후원 정치단체 회원)들이 뽑는 ‘지방 표’의 합산으로 치러진다. 1차 투표의 국회의원 표는 고이즈미가 80표, 다카이치가 64표로 고이즈미가 앞섰다. 그런데 당원·당우 표에서는 다카이치가 119표, 고이즈미가 84표였다. 올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참패하고 ‘일본인 퍼스트(우선)’를 내세운 참정당이 선전했는데, 이 때문에 “당원들이 보수 리더를 원했다”라고 고이즈미를 지지한 한 중의원 의원은 〈아사히신문〉에 말했다. 보수색이 강한 다카이치를 내세워서 이탈한 보수 지지층을 되찾아야 한다고 당원들이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는 ‘당원들의 의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의원들의 심리로 이어져 결선투표에도 영향을 미쳤다. 동시에 “파벌·구 파벌의 셈법과 알력이 뒤얽히며 만들어진 결과(〈요미우리신문〉)”이기도 했다. 당내 유일하게 남은 파벌인 ‘아소파’(43명)를 이끄는 아소 다로 전 총리가 ‘결선투표에서는 당원 표가 많은 쪽에 투표하라’고 소속 의원들에게 지시한 게 결정적이었다. 아소 전 총리는 아베 전 총리와 동맹관계를 구축해 아베 정권을 떠받친 인물이다. 그가 의원 표 흐름을 만들며 결선에서의 국회의원 표는 다카이치 149표, 고이즈미 145표로 역전됐다. 결선에서의 지방 표(도·도·부·현 표)도 당원·당우 표가 많은 후보에게 배분되면서 다카이치 36표, 고이즈미 11표를 기록했다. 결과는 다카이치의 승리였다.
여기까지도 이변이었는데 더한 일이 벌어졌다. 다카이치를 총재로 선출한 시점에서, 자민당은 196석으로 24석의 ‘공명당’이라는 정당과 연립정권을 이루고 있었다. 공명당은 ‘창가학회’라는 종교 단체를 지지 기반으로 ‘깨끗한 정치’ ‘대중 복지’ ‘평화’를 기치로 활동하는 정당이다. 그중에서도 정치와 돈에 대한 엄격한 태도를 강조해왔다. 그런데 다카이치는 정치자금 보고서에 거액의 돈을 기재하지 않아 당내에서 징계를 받은 인물인 하기우다 고이치 전 자민당 정조회장을 간사장 대행이라는 요직에 앉혔다. 이는 지난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과 공명당이 참패한 원인이 된 자민당 일부 파벌의 ‘비자금 스캔들’을 가볍게 다루는 태도로 공명당에게 받아들여졌다. 공명당은 기업·단체 헌금 규제를 강화하자는 제안을 자민당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10월10일 연립정권에서 이탈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26년을 이어온 자민당·공명당 연립정권이 붕괴했다.
다카이치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자민당 총재인데 총리로 지명되지 못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일본 총리는 중의원(하원)·참의원(상원) 양원 선거로 뽑는다. 양원이 서로 다른 사람을 지명하면 중의원 의결이 우선이다. 중의원에서 자민당 196석과 공명당 24석을 합하면 220석으로 과반(233석)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다수이므로 결선투표에서 총리를 선출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공명당이 이탈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입헌민주당 148석, 국민민주당 27석, 일본유신회 35석을 더하면 자민당의 196석을 넘는 210석이어서 이론적으로 ‘정권교체’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자민당이 아닌 당이 정권을 잡은 것은 1993년 호소카와 내각, 그리고 2009년 민주당(현 입헌민주당)·사민당·국민신당의 3당 연립정권 두 번뿐이다.
당장 ‘야 3당(입헌민주당·국민민주당·일본유신회)이 연대할 수 있을지’에 시선이 쏠렸다. 하지만 세 당의 노선이 너무 달라 접점을 찾기 어렵다. 특히 일본의 리버럴 정당인 입헌민주당과, 감세를 통한 실수령액 증대를 내걸어 젊은 세대로부터 인기를 끄는 온건보수 정당인 국민민주당의 차이가 크다. 입헌민주당은 아베 내각이 추진했던 안보 관련 법에 대해 위헌 부분은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국민민주당은 그렇지 않다. 입헌민주당은 ‘탈원전 사회’를 내걸지만 국민민주당은 그렇지 않다. 입헌민주당은 국민민주당 대표인 다마키 유이치로를 총리로 세울 수도 있다며 연대에 적극적 움직임을 보였다. 안보 법제도 즉각 폐지해야 하는 건 아니고, 원전 재가동도 조건부로는 인정한다고 물러섰다. 그러나 재해 시 국회의원 임기를 연장하는 긴급사태 조항을 신설하는 개헌 문제에서 양당은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다당제 안에서의 정치 양극화 가능성”
이런 가운데 35석을 가진 일본유신회가 자민당과 연립정권 구성에 합의하면서 10월21일 다카이치 사나에가 일본의 첫 여성 총리로 선출됐다. 오사카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주의 보수정당인 일본유신회는 ‘육해공군과 그 외 전력을 보유하지 않고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명시한 일본 헌법 제9조 2항을 삭제하자고 주장하는 정당이다. 일본 인구 중 외국인의 비율 상한을 정하자는 배외주의 정책도 내걸었다.
자민당은 이번 연정에 합의하면서 헌법 9조 개정과 관련한 양당 협의회를 2025년 임시국회 중 설치하고, 외국인 수용 수치 목표 등을 포함한 ‘인구 전략’을 2026년도 중 책정하기로 하는 등 일본유신회의 요구를 상당 부분 받아들였다. 방위비 추가 증액을 전제로 한 ‘안보 3문서’ 조기 개정, 수출 가능한 무기의 목적을 5개 유형으로 제한한 규제 폐지에 합의하는 등 안보 관련 매파 성격이 강해졌다. 일본유신회가 연정 조건으로 내건 ‘중의원 정수 10% 감축’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를 목표로 하기로 했지만, 자민당의 비자금 스캔들 이후 일본유신회가 요구했던 ‘기업·단체 헌금 폐지’는 2027년 9월까지인 다카이치 총리 임기 중에 결론을 내기로 하는 데 그쳤다. 다카이치는 첫 여성 총리이면서도 ‘선택적 부부 별성 제도(부부가 원할 경우 결혼 후에도 각각 결혼 전의 성을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에 부정적이며 남성만 황실 왕위를 계승할 수 있다고 본다. 일본유신회도 같은 견해로, 양당은 이런 입장을 담은 법 제정과 황실전범 개정에도 합의했다.

다카이치라는 정치인의 성향과 일본유신회의 노선을 고려하면,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아베보다도 더 우익인 연립여당의 등장으로 귀결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대외적으로는 군사적 대국화 노선을 용인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 대내적으로는 트럼프처럼 자국 내 외국인을 배척하는 정책의 조합을 의미한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굉장히 우려스러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뿐 아니라 일본 안에서도 이런 흐름을 우려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이시바를 끌어내리려는 당내 움직임에 저항하며 이시바를 지지한 시민들이 있었다. 공명당이 당원과 지지자를 믿고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스스로 빠져나오게 만든 것도 결국 그런 힘이 아닐까. 만약 자민당과 일본유신회, 나아가 참정당이 헌법 개정과 외국인 배척을 축으로 하는 ‘매파 연립’을 성립시킨다면 이쪽에서도 그에 대항하는 ‘리버럴 연합’을 조직할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전선이 분명해지면서 중간지대가 사라지는 형태의, 다당제 안에서의 ‘정치 양극화’가 일본에서도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남 교수가 보기에 다카이치 체제의 등장이 곧 일본 민주주의에 대한 사망선고는 아니다. 다만 일본 민주주의가 “거대한 분기점”에 서 있는 건 분명하다. “전반적으로 우경화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일본 리버럴 진영과 시민사회가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의 시민들은 이들과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지 고민할 시점이 아닐까.”

10월10일 이시바 총리는 ‘전후 80년 소감’을 발표했다. 그는 과거 일본이 패전할 것이 분명했는데도 무모한 전쟁으로 나아간 이유로, 정치가 군부를 통제하는 ‘문민통제’가 당시 대일본제국 헌법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점, 정부와 의회가 군부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점, ‘전쟁 보도가 팔린다’는 이유로 적극적으로 전쟁을 지지한 언론의 책임을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무책임한 포퓰리즘에 굴하지 않고, 대세에 휩쓸리지 않는 정치가로서의 긍지와 책임감을 지녀야 합니다. (···) 편협한 민족주의, 차별과 배외주의를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 과거를 직시하는 용기와 성실성, 타자의 주장에도 겸허히 귀 기울이는 관용을 지닌 본래의 리버럴리즘, 건전하고 강인한 민주주의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마치 다카이치를 겨냥한 듯한 문장이다.
이시바의 전후 80년 소감을 읽는 법
각의 결정을 거치지 않은 ‘개인 소감’ 형식으로 발표했고, 발표 시점도 일본의 종전 기념일(8월15일)보다 한참 늦춰진 퇴임 직전이었으며, 아시아에 대한 식민지배나 한국·중국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남기정 교수는 “‘일본은 왜 미국과의 전쟁을 피하지 못했는가’에 천착한 이시바의 성찰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과 아시아 침략에 대한 반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이기도 하다. 당내에서 퇴진 압박에 몰린 이시바가 일본의 리버럴 보수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언어를 찾은 것으로 봐야 한다. 식민지 언급이 없다고 해서 이 정도의 견해를 총체적으로 부정해버리면 그 안에 담긴, 일본이 한국을 비롯한 이웃 나라와의 과거사를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마음마저 함께 부정해버리는 꼴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다카이치는 이시바의 전후 80년 담화 발표에 부정적이었다. 아베가 전후 70년 담화에서 “(다음 세대에) 사죄를 계속하는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한 만큼, 새로운 담화는 불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언급한 전후 50년의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 다카이치는 “침략이라는 문구를 넣은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당시의 국가 의지는 자존자위(국가가 자국의 존립을 유지하고 방위하기 위해 벌인 일이라는 의미)”라며 자신이 총리가 되면 해당 담화를 무효로 만들겠다는 뜻을 밝힌 적이 있다. 시마네현 조례로 정해진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각료가 참석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여러모로 다카이치는 이시바와 대척점에 있다.
그럼에도 다카이치 총리 시대가 한·일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으리라는 견해도 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한국에 대한 인식이 가장 좋은 이시바보다는 다카이치가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아무리 다카이치라 해도 한국과 역사 문제 등으로 크게 갈등하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화, 중국의 움직임, 북한 대응을 생각할 때 한·일이 협력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내다봤다. 장기 집권이 어려운 과도정부일 거라고도 전망했다. 자민당과 일본유신회 의석을 합쳐도 중·참의원에서 과반수에는 미치지 못한다. 선거를 다시 치르면 공명당 표를 잃은 자민당의 의석수가 제1 야당인 입헌민주당과 비슷해지리라는 분석도 나온 바 있다. 이번 사건의 여파는 38년간 이어진 자민당 장기 집권에 종지부를 찍은 1993년의 충격과 비견된다. 3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일본 정치가 다시 대격변에 접어들었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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