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정의선의 지구 한 바퀴…글로벌 현장 누빈 이유

백유진 2025. 10. 30.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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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부터 빈 살만·젠슨 황까지…글로벌 광폭 행보
통상 리스크 현실화에 '기술·현장'으로 해법 모색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사실상 지구 한 바퀴를 도는 강행 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골프 회동을 가진 뒤 곧바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났고, 귀국하자마자 경주 APEC CEO 서밋에 참석합니다.

이어 30일에는 서울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의 회동도 예정돼 있습니다. 불과 열흘 남짓한 일정이지만 각 행선지는 모두 현대차그룹의 핵심 사업 축과 맞닿아 있죠.

美관세 리스크 정면 대응

이번 일정의 첫 공개 행보는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 주재 비공식 행사였습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주선한 자리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을 비롯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참석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 총수들과는 직접 골프를 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집니다. 미국 정부 인사와 기업인들이 조를 이뤄 약 7시간가량 골프를 함께했다고 전해지는데요.

그럼에도 재계에서는 이번 회동을 단순한 친목 행사로 보지 않습니다 미·한·일·대만 주요 기업 총수들이 한자리에 모인 만큼, 통상과 투자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을 것이라는 거죠. 특히 당시 트럼프 행정부가 복귀 후 한미 무역협상에서 3500억달러(약 50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이행을 관세 인하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한 상황이라, 각국 기업들이 자국 내 생산 확대나 공동 투자 방안을 논의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재계의 관측입니다.

정 회장은 이 자리에서 "한국 방문에 대해 모두의 기대가 크고, 모두가 합심해 준비를 잘하고 있다"고 말하며 한미 통상 현안 해결의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기도 했죠.

골프 행사 이후에도 정 회장은 곧바로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 머물렀는데요. 한미 통상 환경 대응, 북미 공장 가동 점검, GM 협력, 보스턴다이내믹스 로봇 사업 등 여러 현안을 직접 챙기려는 현장 행보로 풀이됩니다.

특히 정 회장은 플로리다로 향하기 전 조지아주 서배너에 있는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먼저 찾았다고 하는데요. 최근 인근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이 미국 이민 당국의 현장 조사를 받은 만큼, 정 회장이 대응 상황을 직접 점검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사우디 방문…중동 확장 시동

미국 일정을 마친 정 회장은 사우디아라비아로 향했습니다. 킹 살만 자동차산업단지에 들어선 HMMME(현대모터 매뉴팩처링 사우디아라비아) 공장 건설 현장을 직접 점검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산업단지는 사우디 정부가 자동차 산업을 키우기 위해 조성 중인 전략 클러스터로, 현대차그룹은 이곳에 중동 첫 생산거점을 세우고 있습니다.

정 회장은 26일 신공장 건설 현장을 방문해 공정 진행 상황을 점검했는데요. 정 회장은 "사우디아라비아 생산 거점 구축은 현대차가 중동에서 내딛는 새로운 도전의 발걸음"이라며 "고온과 사막 등 다른 시장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고객 기대를 뛰어넘는 모빌리티를 적기에 공급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이후 현대차·기아 현지법인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과 함께 임직원들을 격려했죠.

정의선 회장이 HMMME 신공장 건설현장에서 직원들을 격려한 후 공장으로 이동하고 있다./사진=현대차

다음 날인 27일에는 리야드 리츠칼튼 호텔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만나 자동차산업과 스마트시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은 의견을 교환했는데요. 정 회장과 빈 살만 왕세자는 2022년 빈 살만 왕세자 방한 당시와 그 이전까지 두 차례 만난 바 있지만, 단독 면담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정 회장의 이번 사우디 방문은 현장 점검을 넘어 전략적 협력 관계를 굳히기 위한 행보였습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의 단독 면담이 성사되면서, 현대차그룹의 중동 사업이 한 단계 더 확장될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사우디는 지난해 기준 중동 전체 자동차 판매의 3분의 1 이상이 집중된 최대 시장으로, 현대차그룹에겐 사실상 중동 사업의 관문입니다. 현대차(9만8530대)와 기아(5만1074대)는 올해 1~9월 기준 총 14만9604대를 판매하며 시장 점유율 30%를 기록했습니다. 토요타를 바짝 추격하는 수준이죠. 현대차그룹은 HMMME를 사우디 현지뿐 아니라 중동 전역과 북아프리카까지 잇는 수출 거점으로 삼을 계획입니다.

수소에서 AI까지, 현대차의 미래 무대

정 회장은 지난 28일 오후 포항공항을 통해 귀국한 직후 경주로 향했습니다. 29일 개막한 APEC CEO 서밋 참석을 위해서였데요. 이번 회의에는 APEC 회원국 정상과 고위급 인사, 글로벌 주요 기업 CEO 등 2만여 명이 방문했습니다. 

경주예술의전당 앞 중앙마당에 전시된 현대자동차 수소전기차 '디 올 뉴 넥쏘'./사진=현대차

현대차그룹은 이 자리에서 '수소, 모빌리티를 넘어 사회를 위한 새로운 에너지'를 주제로 한 수소 세션을 마련해 수소를 단순한 차량 연료가 아닌 사회 인프라 에너지로 확장하는 비전을 공유했습니다. 또 경주예술의전당에 신형 수소전기차 ‘디 올 뉴 넥쏘’를 전시해 글로벌 정상급 인사들에게 공개했고요. APEC 공식 의전차량도 지원해 한국을 대표하는 미래 모빌리티 기술력을 직접 선보였죠. 

특히 정 회장은 이날 이재용 회장과 젠슨 황 CEO를 함께 만날 가능성이 큽니다. 황 CEO는 이날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엔비디아 그래픽카드(GPU) '지포스' 한국 출시 25주년 행사 참석을 마친 뒤 두 회장과 만찬 일정을 가질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정 회장과 이 회장은 APEC CEO 서밋 공식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이동해 회동에 합류할 예정입니다.

이는 반도체와 자동차, AI를 잇는 '삼자 회동'인데요.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자율주행과 로봇 등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 추진 중인 인공지능(AI) 협력의 연장선입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초 엔비디아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가속 컴퓨팅 하드웨어와 생성형 AI를 차량 소프트웨어와 로보틱스에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만남은 그 기술 협력을 한 단계 확장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현대차그룹이 '소프트웨어 중심 제조업체'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AI 기술을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지 가늠해보는 자리가 될 수 있는 거죠.

실적 부진 돌파구 '기술·현장'

정 회장의 이번 글로벌 행보는 단순한 외교 일정이라고 보긴 어려운 상황입니다. 실적 방어를 위한 '위기 대응'의 성격이 짙죠. 현대차그룹 실적은 올 하반기 미국의 25% 수입차 관세가 본격 반영되면서 휘청이고 있는데요. 

증권가에서는 3분기 현대차와 기아의 영업이익은 1년 전보다 20% 넘게 줄어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현대차의 3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1.6% 감소한 2조4514억원, 기아는 23.4% 줄어든 2조2073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두 회사 합산 영업이익은 4조658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조4622억원)보다 약 27.9% 줄었습니다. 이는 2022년 3분기 세타2 GDI 엔진 리콜 비용이 반영됐을 당시(현대차 1조5518억원·기아 7682억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죠.

상반기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전동화 전환 속도와 환율 효과가 맞물리면서 완성차 부문이 실적 고점을 유지했죠. 하지만 3분기 들어 관세 부담이 현실화되면서 수익성이 급격히 꺾였습니다. 

정의선 회장이 직접 움직일 수밖에 없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통상 리스크가 숫자로 드러난 지금, 수소·AI·전동화 같은 미래 성장축을 다시 점검할 시점인 거죠. 특히 정 회장의 행보는 단기 실적보다 중장기 체질 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관세와 환율 같은 외부 변수 속에서도 현대차그룹의 방향은 여전히 '기술과 현장'에 있다는 메시지로 읽힙니다.

백유진 (by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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