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와 그 무게 보존하는 일…기억과 마음을 모았다

“명복·RIP 상투적 표현 아래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이 담겨”
유가족·생존자·외국인·시민
많은 추모 체감토록 ‘아카이빙’
젖은 메모지 얼려서 습기 제거
필압 흔적은 따로 손글씨 복원
“시민들 볼 수 있게 공개 예정”
디지털화 참여한 시민들
지난 3년간 이태원 참사 현장을 찾은 시민들은 발자국처럼 메모를 남겼다. 시민들이 메모지에 꾹꾹 눌러쓴 글귀에는 마음의 무게가 실렸다. 눈, 비, 바람과 함께 사계절이 3번 지났다. 어떤 메모지는 찢어졌고, 어떤 글자는 습기에 번졌다. 필압의 흔적만 남은 메모도 있다.
시민들의 마음을 지키고 싶은 이들이 모였다.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피해자권리위원회는 참사 직후부터 지난해까지 시민들이 현장에 남긴 추모 메시지를 모으는 ‘기억담기’ 활동을 했다. 올해는 모인 추모 메시지를 디지털화했다.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남기겠다는 취지에서다. 초기부터 최근까지 아카이빙에 참여한 양진영씨(27), 정준현씨(48·가명)와 프로젝트를 담당한 박이현 문화연대 활동가(37)를 지난 24~26일 인터뷰했다. 이들은 ‘아카이빙’이 시민들이 남긴 추모의 ‘무게’를 보존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명복을 빕니다” 상투적 말에 담긴 마음
박 활동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메시지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다. 박 활동가는 아카이빙을 시작하면서 ‘Rest In Peace’ 같은 흔히 쓰는 표현들이 담긴 메모가 많은 것을 보고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박 활동가는 스스로 추모 메시지를 남기기 위해 참사 현장에 선 순간에 왜 그런 메시지가 많은지 알 수 있었다. 박 활동가는 “내가 쓰려고 하니 5분 동안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며 “상투적으로 보이는 말 아래 어떤 마음들이 있었을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씨와 양씨는 희생자의 유가족이나 지인이 남긴 메시지가 가슴에 박혔다. “엄마의 꿈에 나와주세요” “혜리야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끝내지 못한 졸업 작품도 너무 멋졌어 230903” 같은 메시지를 여전히 기억한다. 생존자의 메시지도 아팠다. “먼저 구조받아 죄송합니다” “같은 자리 있었는데 살아남아서 미안해요. 열심히라는 말이 맞을지 모르지만 살면서 기억할게요” “불과 몇분 전 제가 지나갔던 거리라서, 그 숨 막히는 느낌을 느껴서 얼마나 힘드셨고 고통스러웠을지 공감합니다” 등의 메시지였다. 참사 현장에 출동했던 공무원이 남긴 “사람들을 지키고 싶어서 경찰의 길을 선택했지만 어떤 도움도 드리지 못해 한없이 죄송하다”는 글도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기억담기 활동을 한 이들은 아카이빙 된 메모지를 “물성이 있는 추모 기록”이라고 부른다. 추모 메시지는 총 3만여건이다. A4 종이에 4~5개씩 붙여 200장씩 보관한 서류 보관함이 24개가 넘는다. 온라인 뉴스에 달린 악성 댓글과는 달리 인간성이 가미된 기록들이다. “네 잘못이 아니다. 우리의 잘못이다” “다시 이런 세상에 놀러오지 말아요. 오고 싶다면 세상을 바꿔놓을게요” 같은 기록을 보면 희망을 느낀다고 했다. 정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에게서 참사의 기억이 옅어지는 느낌을 받는다”며 “참사 현장에 있던 3만여개의 추모 기록 아카이브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추모했는지 체감케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추모의 마음, 무게로 남기다
시민대책회의는 참사 발생 다음해인 2023년 3월부터 시민들의 추모 메시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시민 169명이 참여 신청을 했다. 35명은 여러 번 참여했다. 초기에는 월 2회 메시지를 모아서 문화연대 사무실에 보관만 했다. 그러다 어떻게 기록으로 남겨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메시지를 내용에 따라 일반 추모 메시지, 생존자 메시지, 희생자·유가족 호명 메시지, 외국어 메시지로 분류하기로 했다. 이후 보존용 중성지에 겹치지 않게 메모지를 붙여 10·29 이태원 참사 기억·소통 공간 ‘별들의집’에 보관했다.
기억담기에 참여한 시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추모의 방법을 찾았다고 말했다. 양씨는 “비건을 지향해서 이태원에 자주 갔었다”며 “참사 현장에 붙어 있던 포스트잇을 보면서 함께 슬퍼하고 싶었는데, 아카이빙에 참여할 여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정씨도 “참사 후 무력감을 느꼈지만, 유가족을 돕는 직접적인 활동은 막중하게만 느껴졌다”며 “추모 기록을 보존하면서 간접적으로라도 유족을 도울 수 있고, 무력감도 떨쳐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추모 글귀를 남긴 메모지는 시민들의 마음만큼이나 무겁게 다가온다. 따라서 아카이빙은 시민들이 남긴 추모의 무게를 남기는 일로 느껴졌다. 비에 젖거나 찢어진 메모지는 그들의 손을 거쳐 다시 태어났다. 박 활동가는 “손상이 심해 자국만 남은 메모는 따로 손글씨로 최대한 복원했다”며 “비를 맞은 메시지는 얼려서 습기를 제거하기도 하고, 곰팡이로 덮인 메모는 긁어내서 메시지를 최대한 잘 보이게 했다”고 말했다. 지난달부터는 보관했던 기록을 한 장 한 장 스캔해서 모두 이미지로 만들었다.
시민대책회의는 공론장 플랫폼 ‘빠띠’와 함께 스캔한 기록을 텍스트로 만들고 있다. 스캔한 메시지를 텍스트로 변환하는 광학 문자 인식(OCR) 과정을 거친 다음 온라인으로 참여한 시민들이 오탈자를 교정했다. 이렇게 해서 2만1000여건이 디지털 텍스트로 다시 태어났다.
3주기를 앞두고는 참사 현장과 별들의집을 찾은 시민들이 다시 추모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시민대책회의는 올해 생긴 추모 기록도 모을 예정이다. 박 활동가는 “모든 메시지에 시민이 접근할 수 있도록 전자화해서 공개할 생각”이라며 “텍스트 데이터로 만드는 게 끝나면 사회적 자원으로서 학술연구 등에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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