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신라 금관, 세계를 맞다

정달식 2025. 10. 29.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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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황금의 나라였다. 뛰어난 금세공 기술로 금관과 금귀걸이, 금허리띠 등 찬란한 장신구를 만들어 냈고 그 명성은 국제사회로 퍼졌다. 아랍 지리학자 이븐 쿠르다드비는 〈왕국과 도로총람〉에서 신라를 ‘금으로 가득한 나라’라 기록했고, 〈일본서기〉도 ‘황금이 넘치는 나라’로 묘사했다. 〈삼국유사〉에는 경주에 금으로 장식된 저택, 이른바 금입택(金入宅)이 39채나 있었다고 적혀 있다. 신라 왕실의 시조 김알지가 금궤 속에서 태어났다는 전설 또한 그 상징성을 더한다. 신라는 황금이 일상과 권력, 신화의 언어로 통하던 나라였다.

1920년대 일본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경주의 무덤들은 그야말로 황금의 보고였다. 경주 땅을 파면 황금이 쏟아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금목걸이, 금반지, 금허리띠 등 찬란한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 유물들은 신라인의 세련된 미의식을 증명했다. 그중 백미는 단연 금관이었다. 현존하는 고대 금관은 전 세계적으로 10여 점에 불과한데 그 가운데 6점이 신라의 것이다. 1mm도 되지 않는 얇은 금판을 두드리고, 미세한 금 알갱이를 정교하게 붙인 세공술은 오늘날에도 감탄을 자아낸다. 예술성과 보존성 면에서 이토록 완벽한 금관을 남긴 왕조는 세계사에서도 신라가 거의 유일하다.

신라 금관은 4세기 중엽에서 6세기 초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는 왕의 칭호가 ‘이사금’에서 ‘마립간’으로 바뀌며 왕권이 강화되던 때였다. 그 증거가 바로 경주 대릉원의 고분군과 그 안에서 발견된 화려한 금관이다. 대부분 관테 위에 나뭇가지 모양의 세움 장식을 한 금관은 굽은옥과 금제 달개를 매달아 그 찬란함을 더한다.

이들 금관이 내달 2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신라 금관, 권력과 위신’을 통해 사상 처음 한자리에 모인다. 전시 일반 개관에 앞서,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에는 세계 각국 정상들이 신라 황금문화의 정수를 직접 마주하는 뜻깊은 자리도 마련된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9일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박물관을 찾아 함께 신라 금관을 관람하며 신라의 황금문화를 공유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반가사유상 전시로 세계를 감동하게 했듯이 이번엔 국립경주박물관이 신라 금관의 황금빛 위용으로 세계 정상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을 차례다. 1500여 년 전 신라가 그러했듯, 오늘의 한국도 그 찬란한 금빛처럼 세계 무대에서 다시 환하게 빛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