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방산 이어 반도체 노리는 한화…TC본더 특허 소송에 베테랑 CEO 내정도

허인회 기자 2025. 10. 29.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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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장비업체 한화세미텍, 한미반도체 상대 특허 소송
새 수장엔 ‘30년 경력’ 반도체 전문가…핵심 장비 시장 잡겠다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한화세미텍이 한미반도체를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사진은 한화세미텍의 TC본더 'SFM5-Expert'. ⓒ한화세미텍 제공

조선·방산 산업에서 호실적을 이어가고 있는 한화그룹이 반도체 사업 부문에 전력을 쏟는 분위기다. 한화그룹 계열 반도체 장비업체인 한화세미텍이 한미반도체를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업계에선 고대역폭메모리(HBM)용 장비인 TC본더 시장의 판을 흔들기 위한 치열한 법적 공방이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이에 더해 한화그룹은 반도체 장비 전문가인 김재현 한화푸드테크 기술총괄을 한화세미텍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30년 동안 반도체 장비기업에서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는 전문가를 새 수장으로 내세우면서 한미반도체가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TC본더 시장에 균열이 일어날지 주목된다.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화세미텍은 최근 TC본더 관련 특허가 침해 당했다며 한미반도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한화세미텍은 한미반도체의 HBM3E용 TC본더에 탑재된 일부 부품이 자사 특허를 불법 활용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세미텍 측은 "장비의 핵심 기술 보호와 기술 탈취 및 도용 등 불법 행위에 대한 강력 대응 차원에서 이번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TC본더는 반도체 칩과 칩 사이에 일정한 열과 압력을 가해 붙이는 기능을 한다. 특히 HBM용 D램을 쌓을 때 칩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게 하는 역할을 하는 핵심 장비다. 인공지능(AI) 인프라 수요가 급증하며 HBM이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TC본더의 중요성도 날로 커지고 있다.

한미반도체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미반도체 측은 "이번 소송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적반하장 소송"이라며 "법적 절차를 통해 정당한 권리를 보호하고, 앞으로도 기술 혁신과 고객 신뢰를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입장을 내놓았다.

양사간 소송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지난해 12월 한미반도체는 한화세미텍이 자사 TC본더 관련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반면 한화세미텍은 이미 널리 알려진 기술로 특허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지난 5월 한미반도체가 보유한 TC본더 관련 특허에 대해 특허심판원에 무효 심판을 청구하며 맞불을 놨다. 한미반도체가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TC본더 특허가 무효라는 점을 입증해 달라는 내용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화세미텍이 또 다른 특허 소송을 제기하며 전선을 넓히고 있는 형국이다. 

두 회사의 앙금은 한화세미텍이 TC본더 시장에 진출하면서부터 시작했다. 한화세미텍은 2020년 TC본더 개발을 시작해 4년 만에 SK하이닉스의 품질 검증 테스트를 통과했다. 지난 3월부터 SK하이닉스에 HBM용 TC본더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SK하이닉스에 독점적으로 TC본더를 납품하던 한미반도체는 밥그릇이 줄어들 위기에 직면하자 장비 단가를 인상하고 상주하던 엔지니어를 철수하는 등 SK하이닉스와 갈등을 빚었다. 한미반도체는 2024년부터 현재까지 엔비디아향 HBM3E용 시장에서 90% 점유율을 차지하는 등 TC본더 시장에서 독점적 위치를 유지해오고 있다. 결국 SK하이닉스가 한미반도체와 추가 공급계약을 맺으며 갈등은 일단락됐지만, 선두업체인 한미반도체와 후발주자인 한화세미텍의 경쟁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김재현 한화세미텍 신임 대표이사 ⓒ한화그룹 제공

새 수장엔 기술 개발 이끌 전문가 내정

한화그룹은 인사를 통해 반도체 장비 시장 진입 의지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지난 28일 수시인사를 통해 반도체 장비 전문가인 김재현 한화푸드테크 기술총괄을 한화세미텍 신임 대표이사로 내정한 것이다.

김 내정자는 30여 년 경력의 반도체 설비 설계 전문가다. 삼성전자를 거쳐 미국 반도체 장비업체 램리서치와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등 글로벌 기업에서 반도체 제조 장비 설계와 기술 개발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이후 국내 반도체 장비 기업 원익IPS에서 반도체연구소를 이끌며 부사장을 역임했다. 한화그룹에는 지난해 10월 합류했다.

당초 한화그룹은 김 내정자 영입 직후 한화세미텍 대표직을 맡기려고 했다. 하지만 직전까지 근무한 원익IPS에서 동종업계 이직 금지 조항을 내걸며 문제를 제기하자 한화푸드테크 기술총괄로 급히 보직을 변경했다. 이후 이직 금지 기간이 해제되는 오는 11월1일을 앞두고 인사를 단행하며 한화그룹의 반도체 사업의 전권을 쥐게 했다.

한화그룹은 김 총괄을 신임 대표로 내정하며 "기술개발과 사업화 경험을 두루 갖춘 인물"이라며 "김 내정자가 하이브리드본더 등 차세대 반도체 장비 기술개발을 이끌 적임자로 평가했다"고 밝혔다.

올 초 한화정밀기계에서 사명을 바꾼 한화세미텍은 2017년 출범했다. 엔지니어 출신 전문가가 회사를 이끄는 건 처음이다. 그만큼 그룹 차원에서 기술 개발 영역에서 기대가 크다는 방증이다. 특히 하이브리드본더는 TC본더보다 한층 업그레이드 된 '꿈의 장비'로, 차세대 AI 반도체에 필수적인 기술로 꼽힌다. 하이브리드본더는 낸드플래시·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만 적용되고 있을 뿐 HBM에선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다. 개발 시점에 따라 본더 시장 판도가 바뀔 수 있는 셈이다.

김 내정자의 책임감도 막중할 것으로 보인다. 김 내정자의 당면한 과제는 한미반도체와의 소송전이다. 소송 결과에 따라 실질적으로 매출을 내는 TC본더 사업에 직접적인 영향이 미칠 수 있어서다. 동시에 한미반도체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신기술 개발에도 속도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업계에선 전문가가 이끌 한화세미텍의 향후 사업 전략 방향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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