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범이 지도자 행세하며 현장을 누빌 수 있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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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완(가명)에겐 '이쁨조'가 있었다.
그가 감독을 맡고 있는 중학교 여자축구팀 선수들이다.
그러면서 성적과 진로, 경기 출전 기회 등을 거머쥐고 선수들을 조종한다.
성폭력을 저지르면서 "선수 하나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쉽다"고 협박했다는 한 대학 여자축구부 감독의 말은 이런 권력관계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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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강지완(가명)에겐 ‘이쁨조’가 있었다. 그가 감독을 맡고 있는 중학교 여자축구팀 선수들이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이 선수들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고, 기숙사 문 앞에서 한 명씩 볼에 뽀뽀를 하고 밖으로 나가도록 시켰다. 급기야 마사지까지 하게 했다. 다시 말하지만, 13~15살 정도 된 중학교 여자축구팀 선수들이다. 문제가 불거졌지만 학교와 학부모들은 강지완이 조용히 학교를 그만두는 걸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강지완은 2년 뒤 다른 지역의 중학교 여자축구부 감독으로 부임했다. 이전 학교에서의 일이 소문으로 돌았지만, 학부모들은 ‘성적을 내준다면’ 개의치 않았다. 한동안 조심하던 강지완은 다시 같은 짓을 반복했다. 그가 두 번째 학교를 떠나게 된 것은 성폭력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한 선수를 종지 그릇으로 폭행했다. 또 한 번 조용히 떠나는 걸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또 2년을 쉰 강지완은 다시 지역을 옮겨 고등학교 여자축구부 감독을 맡았다. 이번에도 비슷한 성폭력을 저질렀고, 법정에 서게 됐다. 법원은 강지완이 ‘초범’이라며 징역형에 집행유예를 선고해줬다. 조용히 떠나는 걸로 마무리됐던, 앞서 벌어진 두 사건이 강지완이 상습 성폭력 범죄자라는 사실을 은폐한 것이다. ‘강지완들’이 지금도 스포츠 지도자랍시고 현장을 누빌 수 있는 까닭이다.
여자축구계는 물론이거니와 스포츠계 전반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강지완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실력을 키운다는 명목 아래 엄격한 규율로 학생 선수들을 강하게 통제하고 지배한다. 때로는 물리적 폭력도 행사한다. 그러면서 성적과 진로, 경기 출전 기회 등을 거머쥐고 선수들을 조종한다. 성폭력을 저지르면서 “선수 하나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쉽다”고 협박했다는 한 대학 여자축구부 감독의 말은 이런 권력관계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이에 학생 선수들은 성폭력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점차 자기 확신을 잃고, 판단력과 자존감을 상실하며, 저항해도 소용없다는 학습된 무기력 상태에 빠진다. 스포츠계 성폭력이 유독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건 이런 구조 탓이다.
실제 한겨레21이 만나거나 전화 통화한 여자축구 관계자 8명에게 ‘지금 성폭력을 경험하거나 목격한다면 이를 신고할 것인지’를 물었는데 “부모님께 말하면 부모님이 신고하실 것 같다”고 말한 1명을 제외하면 모두 “신고하지 않겠다”거나 “축구를 그만둘 생각을 하면 신고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응 방법을 모르거나 보복에 대한 두려움도 신고를 피하게 만들었다.
2025년 9월 128쪽짜리 제1578·1579호 통권호(한 권 전체를 하나의 주제 기사로 채우는 잡지)를 만들기 위해 전국의 여자축구 현장을 종횡무진 누볐던 박수진·류석우 기자가 발굴한 ‘강지완들’의 문제를 이번호 특집에 빼곡히 담았다. 이것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더라도, 한겨레21은 계속 쓰고 또 고발한다. 쓰고 고발하는 것만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기 위한 우리의 저항이기 때문이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한겨레21 채윤태·박준용·김완 기자가 제1580호 표지이야기로 쓴 ‘권성동의 필리핀 농단’ 보도가 한국기자협회의 제421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습니다. 한겨레21은 더욱 탁월한 저널리즘을 구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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