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전국 시도교육청 “4·7세 고시, 법으로 금지 찬성“
전국 시도 교육청이 영어 유치원과 초등 영어 학원에서 원생을 선발하기 위해 치르는 4세·7세 고시 등 ‘선발용 레벨테스트(레테)’ 금지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레테에 합격하기 위해 이를 준비하는 학원에 다니고, 개인 과외를 받는 등 과도한 영유아 사교육 열풍을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교육청들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29일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본지 취재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은 유아 대상 선발용 레테를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진 의원실이 전국 시도 교육청에 ‘4세·7세 고시 등 유아 대상 선발용 레테를 학원법으로 금지하는 것에 교육감 및 교육청은 동의하는지’ 물었는데, 한 곳도 빠짐없이 “동의한다”는 의견을 밝혀왔다.
교육청들은 영유아 정서 발달 저해와 교육비 부담 증가 등의 이유를 들며, 4세·7세 고시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북교육청은 “영유아에게 과도한 경쟁심과 학습 불안감을 유발하고, 이에 대비하기 위한 추가 사교육 수요를 초래해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을 늘리고 있다”며 “영유아의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위한 ‘필수적인’ 조치”라고 했다. 충북교육청도 “유아기는 정서적으로 매우 민간함 시기”라며 “시험 경험으로 자존감 하락과 학습 불안 등이 우려되고, 과도한 사교육 조장으로 교육 격차와 저출산 등 사회 문제를 심화시켜 적정한 규제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4세·7세 고시를 영유아 학대와 인권 침해로 보는 교육청도 있었다. 강원교육청은 “선발용 레테를 대비하는 선행 학습은 영유아에게 인지적, 정신적 학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금지하는 것에 동의한다”고 했다. 경기교육청도 “선발용 레테는 불안감과 경쟁을 조장해 유아가 발달 단계에 맞게 성장하고 쉴 권리를 침해한다”며 “누가 오든지 학생 수준에 적합한 교육으로 수준을 끌어올린다는 학원의 기능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서울교육청 역시 “과도한 조기 사교육과 아동학대가 우려되는 평가는 금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부산과 충남, 경북 등 교육청 3곳은 4세·7세 고시 금지에 동의하면서도 “사교육 시장의 음성화와 학부모의 교육 선택권 제한 등의 문제를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전국 시도 교육청 가운데 유아 대상 선발용 사전 레테 금지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서울교육청이다. 서울교육청은 지난 15일 열린 수도권 교육감 간담회에서 4세·7세 고시를 학원법 개정을 통해 금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고, 경기와 인천교육청도 이에 찬성했다. 서울과 경기는 영어 유치원에 따른 영유아 조기 사교육 열풍이 가장 심한 지역이다. 강남과 분당 지역 일대 학부모 온라인 커뮤니티엔 “6살 아이, 레테 과외 선생님 찾는다” “내년에 영어 유치원 보내려는데 알파벳밖에 몰라서 걱정된다. 레테 준비 어떻게 하는 거냐” 등의 글들이 많다. 지난 5월 기준 전국 820개 영어 유치원(반일제 영어 학원) 가운데 64%가 서울(249개)과 경기(273개)에 몰려 있었다.
서울교육청은 전국 시도 교육감 협의회에도 유아 대상 선발용 레테를 학원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자료를 제출할 예정이다. 시도 교육감 협의회 총회 때 4세·7세 고시 금지 안건이 올라가 통과되면,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이 유아 대상 선발용 레테 금지 내용이 담긴 학원법 개정안을 만들어 교육부에 법령 개정을 요청하게 된다.
현재 국회에도 유아 대상 선발용 레테를 규제하는 학원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지난 9월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것인데, 해당 개정안은 선발용 레테뿐 아니라 반 배정을 목적으로 하는 시험이나 평가까지도 금지하고 있다. 또 이를 위반하면 영업정지 처분이나 과태료 부과 등을 할 수 있고, 영어 이외 다른 과목에도 적용되도록 했다.
교육청들은 학원에서 반 배정 목적의 시험이나 평가까지 못하게 하는 건 어렵다는 분위기가 크다. 4세·7세 고시는 이를 대비하는 또 다른 사교육이 성행해 사회적으로 문제가 크지만, 반 배정은 수준별 교육을 위해 필요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부산교육청 관계자는 “알파벳만 아는 아이와 회화가 되는 아이가 한 반에 있으면, 두 아이 모두 자신에게 필요한 수업을 듣지 못해 피해를 입는다”며 “학교에서도 수준별 수업을 하는데, 학원에만 반 배정 평가를 하지 말라고 할 근거가 없다”고 했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도 “수준별 교육을 위한 분반 시험까지 막는 것은 과한 규제”라고 했다.
진선미 의원은 “영유아들이 학원에 가기 위해 추가로 개인 과외를 받고 프렙학원을 다니는 현실은 선발용 레벨테스트 금지를 통해 가능한 빨리 해결돼야 한다”면서도 “학원에서의 반 배정 시험과 평가까지 금지하는 건 사교육 음성화와 학부모 반발 등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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