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세상 밖으로 꺼내준 엄마… 그 발자취를 따라 갑니다[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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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어머니의 합작품인 나는, 오랜 시간 병상에서 긴 시간을 누워 지내시다 어머니의 병간호를 받다 명을 다하신 아버님에 대한 죄인이다.
고희의 언저리에 얻어맞은 바람으로/ 귀도, 입도 얼어붙은 그에게/ 고적이라는 낱말조차 죽어 버렸다// 어떤 바람에도 꺾일 것 같지 않던/ 청청이 뻗어 온 아비는/ 시름시름 수액 흘리며 말라 간다// 천근의 여닫이 힘겹게 열면/ 섬뜩하게 쏟아지는 백치의 미소로/ 문지방은 허물어지고// 온갖 세월 흘려보낸 등은/ 푸석푸석 무너져 내리며 기억의 저 켠으로 멀어진다// 제멋대로 늘어진 하루는// 면벽의 손가락 꼽으며// 더해 가는 어둠을 찌르고 있겠지// 흐려진 정신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어둠의 깊이는 햇살마저 튕겨 버리고/ 음습한 곰팡이 피워 올린다// 곰실곰실 피어오르는 포자 틈에서/ 난무하는 환영들이 시신경에 꼽히고/ 떨어져 나간 아버지의 방/ 선명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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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어머니의 합작품인 나는, 오랜 시간 병상에서 긴 시간을 누워 지내시다 어머니의 병간호를 받다 명을 다하신 아버님에 대한 죄인이다. 바쁘다는 빈곤한 사유로 출퇴근 시 문지방도 넘지 못하고 여닫이문을 빼꼼 열고 고개를 까닥임으로 자식의 도리를 대신하였다. 어머니의 지극한 병간호가 나의 부덕함을 채워주었기에 치졸함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으리라.
고희의 언저리에 얻어맞은 바람으로/ 귀도, 입도 얼어붙은 그에게/ 고적이라는 낱말조차 죽어 버렸다// 어떤 바람에도 꺾일 것 같지 않던/ 청청이 뻗어 온 아비는/ 시름시름 수액 흘리며 말라 간다// 천근의 여닫이 힘겹게 열면/ 섬뜩하게 쏟아지는 백치의 미소로/ 문지방은 허물어지고// 온갖 세월 흘려보낸 등은/ 푸석푸석 무너져 내리며 기억의 저 켠으로 멀어진다// 제멋대로 늘어진 하루는// 면벽의 손가락 꼽으며// 더해 가는 어둠을 찌르고 있겠지// 흐려진 정신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어둠의 깊이는 햇살마저 튕겨 버리고/ 음습한 곰팡이 피워 올린다// 곰실곰실 피어오르는 포자 틈에서/ 난무하는 환영들이 시신경에 꼽히고/ 떨어져 나간 아버지의 방/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버지의 방 전문)
2017년 4월 첫 시집 ‘맥킨토시와 성황당’에 아버지를 회억하는 시 ‘아버지의 방’ 한 꼭지를 넣었다. 아버지의 길과 엄마의 길이 중첩되는 것 같아 알싸하기만 하다. 한때 죽음에 대한 막연했던 두려움이 희석되면서 이제는 어찌하면 당당하게 죽음을 받아들일까를 상정하게 된다. 자연으로의 회귀, 새로운 의식으로 갈아탐 등등.
돌연사나 사고사가 아니라면, 나도 엄마가 걸어온 길을 걷게 되겠지. 서산대사는 “눈 덮인 들판을 밟아갈 때도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럽게 하지 말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취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리라”고 했다. 선택지가 없는 죽음을 앞두고 걸음이 정갈하거나 어지럽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담담하게 나의 길을 가면 그만인 것을. 다만, 자연연령이 늘어나 고령화 시대를 살아가면서 젊은이들에게 추한 걸음은 보여주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어른다운 어르신으로 대접을 받아야 할 일이다.
진도에서는 고인을 묻기 전날 밤이나 매장 당일 새벽 무렵 마지막 의례로 ‘다시래기’를 한다고 한다. 다시래기는 죽음의 슬픔을 마무리하고, 고인을 즐겁게 저승으로 보내기 위하여 사물을 치면서 노는 놀이다. 문화재청에서는 “상가(喪家)서 이틀 곡하고, 셋째 날 밤 되면 상여꾼들이 모여 다시래기 놀음 허지. 슬픈 노래하다 웃음으로 끝내야 죽은 이도 편히 간다 아이가”라는 진도 의신면 구자도마을 어르신 구술 기록을 가지고 있다. 다시 태어남을 축복하는 의미와 함께 산 사람은 슬픔을 털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정화시키는 사람들의 행위는 불교의 윤회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살아가기 위한 지혜가 반짝인다.
삶과 죽음은 모래시계에 갇힌 모래알처럼 자리바꿈인 것이다. 흘러내림을 다하면 정지되는 화면으로 막은 내려지는 것. 아직 엄마의 모래시계는 먹고, 자고, 배설하는 등 커다란 막힘 없이 내림을 하고 있다. 엄마의 모래시계가 끝난 후일, 어떤 어머니의 방을 그리게 될까. 나를 세상 밖으로 꺼내준 엄마에게 한 말씀 올린다.
감사합니다.
박주순(시인·도서출판 글담화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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