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태원에 멈춘 시간···칼로 베듯 아픈 10월이 또 왔다[점선면]

조해람 기자 2025. 10. 2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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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참사 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28일 서울 이태원 ‘기억과 안전의 길’ 추모 공간에 시민들의 추모 메시지와 조화가 놓여 있다. 문재원 기자

159명의 희생자를 낸 10·29 이태원 참사가 오늘(29일)로 3주기를 맞습니다. 많은 이들이 큰 충격과 슬픔을 겪었지만, 누구보다 가장 힘든 세월을 보낸 건 유가족이었습니다. 오늘 레터에서는 지난 3년 동안 유가족이 견뎌야 했던 시간의 무게를 돌아봅니다. 참사 진상규명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도 짚어봅니다.

“우린 항상 그날에 있어요”

3년이 지났지만 유가족의 시계는 그날 그 시간에 멎어 있습니다. 계절이 흐르고 10월은 착실하게도 돌아오는데, 아픔은 세월을 따라 흘러가지 않고 고일 뿐입니다. 김진성씨(50)는 숨진 조카가 선물한 커피 기프티콘 유효기간을 계속 연장합니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가 아물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며 “매년 기일이 다가오면 아픔이 그만큼 누적된다”고 했습니다.

딸에게 ‘서울에서 놀고 돌아오면 꽃게탕을 끓여주겠다’고 약속한 이숙자씨(54)의 냉장고 냉동실에는 꽃게 2마리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10월이면 이유를 알 수 없는 안면마비가 찾아오고 “온몸이 칼로 저미듯” 아픕니다. 그는 “10월이면 사람들이 단풍도 피고 여행도 가지만 우린 그럴 수 없다”며 “우린 항상 그날에 있다”고 했습니다.

일부 정치인과 언론의 ‘2차 가해’는 유가족을 더 아프게 했습니다. 포털 사이트 뉴스 댓글창에도 피해자들을 탓하는 말이 쏟아졌습니다. 사고 이후 정부의 대응이 혼선을 빚으면서 피해자들이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광주에 사는 김영백씨(64)는 직접 구급차를 불러 숨진 아들 재강씨의 시신을 고향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김씨는 아들의 49재 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재강아, 무능하고 무책임한 세상에서 그동안 살아오느라 고생 많았다. 불안전한 이 세상 미련 두지 말고 안전한 곳에 가서 못다 한 꿈 마음껏 펼치거라.”

국가의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유가족은 직접 싸우기로 했습니다. 삼보일배하고, 머리를 밀고, 더 많은 이들에게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 온갖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들을 가로막았습니다. 윤 전 대통령은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이태원 특별법’에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죠. 당시 경찰·소방 총책임자인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어깨를 언론 카메라 앞에서 보란 듯 두드리기도 했습니다.

국가가 외면한 자리를 채운 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위로였습니다. 밤낮으로 분향소를 지키며 손을 잡아 준 시민들, 행인들의 가방에 걸린 보라색 리본들이 유가족들의 버팀목이었습니다. 딸을 떠나보낸 박지연씨(53)는 “시민분들이 기억해주신다는 건 내 안에 우리 아이가 살아있다고 얘기해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참사로 목숨을 잃은 외국인 희생자들의 유가족도 한국을 찾아 한국 유가족과 슬픔을 나누고, 그간의 싸움에 대한 감사를 표했습니다.

유가족이 힘겨운 싸움을 계속해 온 이유는 하나입니다. 떠난 이는 돌아오지 않지만, 다른 이가 억울하게 떠나는 일만큼은 막아보자는 다짐입니다. 유가족은 ‘기억의 힘’을 믿습니다. 참사를 잊어버린다면 같은 비극이 반복될 수 있지만,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생명을 함부로 잃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유가족은 오늘도 온몸으로 외칩니다.

10·29 이태원 참사 3주기를 앞둔 지난 23~26일 서울 종로구 별들의집에서 만난 유가족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임종원씨와 아버지 임익철씨, 권수정씨와 삼촌 김진성씨, 조예진씨와 어머니 박지연씨, 유연주씨와 아버지 유형우씨, 김재강씨와 아버지 김영백씨, 강가희씨와 어머니 이숙자씨. 백민정·우혜림 기자

새 정부가 들어서고 참사 진상규명도 조금씩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지난 6월부터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뒤늦게라도 정부 부처와 수사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에 대해 광범위한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특조위는 내년 6월까지 조사를 마치고 보고서를 냅니다.

특조위 조사가 중요한 건 참사 당시 치안·행정 주요 책임자들의 2심 재판에 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은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이임재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은 금고 3년 형을 받았습니다. 현재 이들에 대한 2심 재판은 특조위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중단된 상황입니다.

특조위 조사와 별개로 새로 밝혀진 것들도 있습니다. 정부는 약 3개월간 진행된 ‘이태원 참사 합동감사’ 결과를 지난 23일 발표했는데요. 지난 정부의 대통령집무실 용산 이전이 참사 당일 경찰 대응력을 약화했다는 것이 공식 확인됐습니다. 대통령실 인근 집회 관리를 위해 경비인력이 집중되면서, 매년 핼러윈 행사가 열려 온 이태원 일대에 경비인력이 배치되지 않은 겁니다. 용산경찰서도 2020~2021년 수립했던 핼러윈 대비 인파관리 계획을 2022년에만 세우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참사 대응과 후속조치에 책임이 있거나 비위가 확인된 공직자 62명을 특정했는데 현재까지 징계를 받은 이들은 9명에 그쳤습니다.

이태원 참사 이후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이 위기관리 책임을 회피하려 한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2023년 3월 대통령실은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이 “국가 위기관리의 컨트롤타워”를 맡는다는 문구를 지침에서 삭제했습니다. 대통령실이 참사 때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대응 능력을 보강하기는커녕 아예 책임 소지를 지워버린 겁니다.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달라’는 유가족의 외침에 응답하는 길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제대로 된 재발 방지 대책일 것입니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공동체가 참사의 슬픔을 나누는 길은 진상을 밝히고 기억해 반복하지 않는 것”이라며 “정부는 참사의 총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끝까지 책임을 묻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픔은 여전히 아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아직 그 골목을 떠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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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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