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부모처럼 힘든 일 하라”…내몰리는 이주배경 학생들

이준희 기자 2025. 10. 29.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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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의 아이들 ③ - 불평등의 늪
자이언 국제 상호문화 대안학교 학생들이 10월1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에서 이웃에게 나눠줄 러시아식 만두를 들어 보이고 있다. 류우종 선임기자 wjryu@hani.co.kr

“엄마, 나 왜 여기서 살아야 해. 돌아가고 싶어.”

우즈베키스탄 출신 김알료나(43)는 큰아들이 했던 말을 또렷이 기억한다. 12살. 아들은 한국에 온 지 석달 만에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아이는 밥도 먹지 않은 채 방에 앉아 있었다. 아이는 우즈베키스탄 심리상담사에게 온라인 상담을 받은 뒤에야 상태가 나아졌다. “아이보다 내가 더 울었어요.” 알료나가 눈물을 글썽였다.

알료나 가족은 희망을 찾아 한국에 왔다. 우즈베키스탄에선 열심히 일해도 삶이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빚까지 생겼다. 남편이 2009년 먼저 한국에 들어왔다. 약 1년 뒤 알료나가 9살·2살 아들을 둔 채 한국으로 향했다. 부부는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에서 밤낮으로 일했다. 아침 8시부터 밤 8시. 혹은 밤 8시부터 아침 8시. 12시간씩 이어지는 고된 노동이었다.

원룸에서 살던 부부는 가족이 살 거처를 마련한 뒤 3년 만에 자녀들과 재회했다. 첫째 아이는 이미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다. 러시아어로 공부해온 아이는 한국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은 알료나도 학교에서 이중언어 강사로 일하며 이주배경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피부로 느끼지만, 그때는 아이가 겪는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학부모님들과 연락이 안 돼요.” 학교 현장에서는 이주배경 학생 학부모의 ‘무관심’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공통으로 나온다.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학부모가 아이들 성장을 방해하는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외국인 부모는 아이 교육에 관심이 없다”는 말도 흔하게 나온다.

문화적 차이가 없지는 않다. 무엇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교육열이 강하다. 학부모가 학교에 대해 갖는 지나친 관심이 사회 문제가 될 정도다. 반면 외국에서는 아이를 학교에 맡기면, 학교가 책임지고 교육한다는 정서가 강하다. 정영순 인천대 객원교수는 “(이주배경 가정) 학부모들도 한국 교육 문화를 이해하고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주배경 학생들이 10월1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자이언 국제 상호문화 대안학교에서 영어로 공부하고 있다. 류우종 선임기자 wjryu@hani.co.kr

그러나 문제를 문화적 차이로 환원할 순 없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상가 3층에 있는 자이언 국제 상호문화 대안학교에는 200명 가까운 이주배경 아이들이 공부한다. 이 학교에는 교사와 학부모가 참여하는 단체 대화방이 있다. 대화방에선 등교부터 하교까지 아이들 상황이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이곳 학교 교장인 최혁수 이주민 시민연대 사회적협동조합 대표는 “학부모들이 워낙 바쁘다 보니 저희가 돌봄 역할까지 맡고 있다”고 했다.

안산시에는 이주배경 밀집학교가 13곳(2024년 기준) 있다. 이 중 9곳은 반월국가산업단지를 감싸는 단원구 신길동, 원곡동, 선부동, 와동에 있다. 나머지 4곳은 상록구 이동, 사동, 건건동에 있는데 이들 학교도 안산 반월도금일반산업단지 인근이다. 최 대표는 “학부모 대부분이 인근 공단에서 일한다”며 “이들 부모의 무관심은 사회적으로 강제된 측면이 크다”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는 가장 열악한 노동 환경에 놓여 있다. 학부모는 아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어가 서툰 상태로 일터에서 장시간·고강도 노동을 해야 한다. 학교에선 교사들이 아이들을 공정하게 대하려 노력하지만, 일터에선 노골적인 차별도 숱하게 일어난다. 지난 2월 전남 나주시 벽돌 공장에서 벌어진 스리랑카 노동자 지게차 가혹 행위 사건은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사범대를 졸업했고 한국어도 비교적 빨리 익힌 알료나도 공장에서 일할 땐 아이들 교육 문제를 챙기기 어려웠다. 대신 알료나는 내일이라도 해고될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렸다. 알료나는 “아이들이 힘들어해 선생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도 일 때문에 학교를 찾기 어려웠다”며 “회사에 그런 이유로 휴가를 내면 ‘잘릴 각오’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사회 분위기도 문제다. 한국 사회는 이주민을 힘든 일을 대신 해줄 노동력으로만 바라본다. 이주민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 보니 교육 정책도 아이들 강점을 살리는 대신 결손을 보충하는 쪽에만 맞춰진다. 최 대표는 “사회 전반 분위기가 ‘너희가 부모님 대를 이어 우리가 하기 싫은 일을 계속했으면 좋겠다’는 것에 가깝다”며 “이런 사회에선 부모들도 아이들이 커서 공장에서 일하는 것 이상을 생각하기 어렵다”고 했다.

자이언 대안학교는 이런 이유로 아이들에게 대학 진학을 적극적으로 권유한다. 최 대표는 “그래야 선택 폭도 다양해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했다. 10월1일 한겨레가 찾은 자이언 대안학교 아이들은 한국 학교에 있는 이주배경 학생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진지한 눈으로 칠판을 바라봤고, 너나 할 것 없이 손을 들고 일어나 발표했다. 최 대표는 “참관을 온 한국 학교 선생님들이 이 모습을 보면 다들 깜짝 놀란다”고 했다.

한 이주배경 학생(왼쪽 첫째)이 10월1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자이언 국제 상호문화 대안학교에서 러시아어로 발표하고 있다. 류우종 선임기자 wjryu@hani.co.kr

사실 이런 현상은 과거에도 존재했다. 1970~80년대 공장에서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하는 부모는 교육에 관심을 갖기 어려웠다. 이들 가정에선 계급이 대물림되는 일이 흔했다. 사회 불평등은 그대로 둔 채 가장 취약한 자리에 이주민을 채워 넣다 보니, 지금 그들 자녀가 겪는 문제가 마치 ‘외국인 아이들’ 문제처럼 보일 뿐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오히려 ‘공단의 아이들’ 이야기에 가깝다.

현장에선 이런 불평등 구조를 바꾸지 않고 이주민만 확대했을 때 가장 취약한 아이들부터 문제가 드러나게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밀집학교가 우후죽순 늘고 있는 교육 현장은 이런 문제를 더는 이주민 사회만의 문제로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최 대표는 “아이들 교육 문제를 계속 방치하면, 이주민 사회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국가 전체 학력 수준이 낮아지는 현실을 마주할 것”이라고 했다.

정책 기조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 정부는 그간 감시와 통제를 핵심 기조로 이민 정책을 펼쳐왔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노동력만 이용한 뒤, 본국에 돌려보내는 방식이었다. 인구가 급감하고 이주노동자 사이에서 한국에 대한 선호마저 떨어지자 가족과 함께 정주가 가능한 비자를 확대했지만, 정책 기조는 그대로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 김달성 목사는 “지금과 같은 정책으로는 결국 이주민 자녀까지 우리 사회 먹이사슬 밑바닥에 몰아넣게 될 것”이라고 했다.

자이언 국제 상호문화 대안학교에 다니는 이주배경 학생들이 10월1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에 있는 선부2파출소 경찰관들에게 러시아식 만두를 전달하고 있다. 류우종 선임기자 wjryu@hani.co.kr

이주배경 학생 교육 문제를 불평등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일찍이 이주 사회에 진입한 미국과 영국 등은 이주배경 학생 교육 대책을 따로 두지 않는 경우도 많다. 대신 이들을 취약계층으로 분류해 이에 맞춘 정책을 폈다. 아이들이 가진 이주배경이라는 정체성보다는 사회경제적 취약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문화적 차이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불평등에 초점을 맞춘 셈이다.

전문가들은 결국 사회가 함께 이주배경 학생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윤현희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은 “지금은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적응해야 할 과제가 너무 크고 막막하다”며 “학교에만 이 문제를 맡길 게 아니라 법무부·고용노동부·교육부 등 각 부처가 협력해야 하고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이 아이들을 어떤 시민으로 키워낼지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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